작년 3월 20일 토요일, 작은아들 과학 발명반 시험 보던 날이었다. 오전 수업이 있어 발명반 시험 시간 동안 기다려 줄 수가 없었다. 추적추적 비 오던 날, 낯선 학교에다 열한 살밖에 안 된 아들 덜렁 내려놓고 나는 수업하러 일터로 갔다. 생전 걸어가 본 적 없는 낯선 동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선생님들과 시험 치러 온 낯선 형 누나 친구들. 운동장에서나마 엄마가 기다려 준다면 그 낯선 기분 조금이라도 덜 느끼지 않았을까. 엄마의 욕심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마다 않고 그 모든 낯섦을 받아주었던 아들.
두 시간이 넘는 지필 평가와 면접을 마치고 생판 처음 걷는 길을 터벅터벅 혼자 걸어 엄마의 일터로 오던 그 발걸음이, 그 30분이 얼마나 낯설고 길게 느껴졌을까.
엄마의 일이 끝나고 친구 만날 생각에 설레어 뒹굴거리며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있던 조용한 시간, 엄마의 미안한 마음을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자기는 괜찮았다고,
무섭지도 않았고
낯선 것들이 두렵지도 않았다고,
엄마한테 괜히 걱정만 끼친 것 같아 오히려 마음 쓰는 속 깊은 열한 살 아들.우리 민혁이.
마주 누워 토닥토닥 나를 위로하는 아들에게 나직이 말을 건넸다.
"우리가 이렇게 방에 드러누워 뒹굴거리는 이 순간을 나중에 기억할 수 있을까? 엄만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할 자신이 없네. 민혁이가 기억할래?"
"엄마 요즘 깜박깜박하잖아~ㅠㅠ. 내가 기억할게. 엄만 기억하려고 너무 신경 쓰지 마. 아프지 마. 우리 평생 같이 살자. 엄마 죽지 마~~ㅠㅠ."
울먹울먹. 감수성 예민한 작은아들한테 괜히 말했나.
나한텐 별로 없는 감수성을 누구 따라 갖고 태어났는지 유달리 감성적인 아들이다. 아, 아빠가 좀 감성적이긴 하지.
큰애 6학년, 작은애 2학년 때 깜박증이 좀 심해졌었다. 사춘기가 일찍 온 큰아들과 씨름하느라 신경을 많이 쓴 탓에 건망증이 심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작은아들은 내심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던 거.
큰아들 신경 쓰느라 놓치고 지나갔던 둘째의 마음밭에 혹시나 큰 구멍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 작은아들과는 컴퓨터에 짧은 편지를 쓰며 마음을 확인하곤 했다. 큰아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작은아들은 컴퓨터 한글문서에다 작대기(하이픈)를 연결해서 하트를 그려놓기도 하고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도 적어 놓았다. 형 때문에 자기도 속상하다는 말과 뒷담화도 있었다. 다시 보면 너무 귀여운 글들. 한글 창은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 열어 놓은 것이었지만 소통 창구로 활용한 사람은 거의 우리 둘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아들은 늘 나에겐 딸이다. "에구, 엄마한텐 딸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 더 낳아. 아들은 소용없어~."라는 말 무수히 들었지만 나에겐 이미 있다. 딸이. 나랑 말이 잘 통하는 딸이. 장가갈 때까지만 있어 주더라도 괜찮다. 그동안도 받은 것이 많다.
작은아들은 사춘기 없이 그냥 엄마랑 소통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주길 기도하고 있지만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기에,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매일 크고 작은 선물을 준 사람이니까.
간직하고 싶은 작은 순간들을.
그리고 영원히 남을 우리들의 초상을.
결혼생활 18년 차에 모아둔 일기장 다섯 권, 그중엔 육아 일기도 작은 노트로 두 권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엔 거의 쓰지 못했지만 그마저 안 썼더라면 사라졌을 추억들, 다시금 꺼내보니 어느새 그립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사진에 담아두고 싶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지나고 나면 그립고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가슴 시린 날들. 아이들이 뱉었던 귀엽고 사랑스러운 말들, 날 위로해 주었던 말들 머릿속에 다 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