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논쟁의 이면에는
가치관 차이보다 더 큰 응어리가 있었다.
얼마 전 개그맨 오지헌이 금쪽이가 되어 그의 아버지와 함께 《금쪽 상담소》를 찾아왔다. 보통은 혼자, 혹은 엄마와, 혹은 배우자와 함께 나오는데 이번엔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父子지간. 이들은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을까? 사교육에 대한 찬반 논쟁부터 들어간다!!
<아버지 관점>
오지헌의 아버지는 외아들로 태어나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학원계에서 국사 1타 강사가 되었다. 정상의 위치에서 사교육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만큼 그에게 사교육은 누가 뭐래도 1순위였다.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아이는 부모가 이끌어주는 만큼 성장 발전하고 미래에 더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왜 아들은 능력이 되면서도 아이를 대치동 학원가에 들여놓지 않는 것인지 이해 불가다. 아무리 시대가 많이 변했어도 대치동 학원가는 예나 지금이나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부모 하기 나름이며, 특히 욕심 있는 아이들은 자기보다 더 잘하는 친구들과 경쟁을 시켜서 실력을 더 다질 수 있게 채찍질해 주면 명문대를 들어갈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어쨌든’ 학벌과 지위와 간판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위해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은 방치다.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아이한테 안 주다니!!
<아들의 관점>
오지헌은 반대다. 아버지는 사회적 성공을 중요시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고 자랑스러운 아버지이지만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오지헌에게 성공한 삶이란, 좋은 학교를 나오고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삶이 아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지금, 같이, 행복하게 사는 게 성공한 삶이다. 개인의 성공보다는 가족과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지극히 평범했던 오지헌에게 아버지의 성공가도와 성공에 대한 집착은 강한 압박이고 부담이었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고 결국 고3 때 말도 없이 집을 나가 버렸다. 아버지의 출세 지향적인 사고방식에 더 이상 맞추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던 다툼과, 종지부를 찍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이미 가슴속에 큰 흉터가 남은 후였다.
오지헌은 아이들에게 그런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도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차피 학교에서 선생님들도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은 다 하고 계신다. 따라서 지나친 사교육은 필요치 않다. 중요한 건 학벌이나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가족의 유대감과 행복이다.
<관계 톺아보기>
소통이 없는 가정, 쌍방향 소통이 불가능한 가정은 실로 비극적이다. 겉으로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 놓았다 해도 포장지를 살짝 벗겨내면 그 속엔 그동안 발효된 곰팡이만 무색하게 피어 있다. 성취지향적인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명령하고 지시하며 아이들 강하게 훈육하며 마음을 들쑤셔 놓지만 정작 그것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리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자식이 평생 자신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자식은 부모를 이해하려고 수없이 노력하지만 가슴에 남은 상처는 평생 아물었다가 터졌다가를 반복한다. 이 상처는 부모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때에야 비로소 아문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했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부모님이 자식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각자의 입장에서 해결되지 못한 과제(심리학 용어 : 미해결 과제)를 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미해결 과제는 가슴속에서 응어리로 맺힌다.
고3 때 집을 나간 오지헌은 2년 후에 개그맨으로 성공을 했지만 아버지와 8년 간이나 연락을 두절한 채 지냈다고 했다. 오지헌은 바빠서 연락할 생각조차 못 했고, 아버지 역시 TV로 아들을 보긴 했지만 연락할 생각은 안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오지헌은 자신의 존재와 생각을 깡그리 무시해 온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평생 안 보고 살아도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집안의 독재자였고 외골수였고 본인의 생각만이 옳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능력만큼은 아니어도 평범했던 자신이 이 정도로 유명해지고 성공한 건 스스로 생각할 때 대견한 일이지만 기대치 높은 아버지에게는 인정받기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는 불안정한 개그맨을 높이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굳이 연락해서 비난받을 바에야 연락을 안 하는 게 나았다. 스스로 독립해서 자유롭게 자기 가치관대로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건 무리수였다.
오지헌은 끝끝내 바빠서 연락하지 못한 거라고 거짓말로 둘러댔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뒤에 솔직히 말했다. 개그맨으로 성공한 것을 보았을 때 처음에 괘씸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보고 있을 걸 알면서도 전화 한 통 안 하다니!!
오지헌의 아버지는 자식은 결국 부모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아들은 그 믿음을 깨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분노했지만 시간이 갈라놓은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는 일에는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니가 하나, 내가 하나 보자 하고 두고만 보다 관계의 끈은 거의 끊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오지헌의 할머니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적 갈등이 일어 친구들에게 물었다. 친구들은 아들에게 연락을 해서 할머니 가시는 길을 배웅하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오지헌의 아버지는 8년 만에 아들과 상봉했다. 아버지가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끝끝내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었다.
오지헌에게 아버지와의 재회는 일면 응어리와의 재회였다. 8년이 지났어도 아버지는 여전히 성취 지향형의 독재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과거 자기에게 강요했듯이 손주들에게까지도 사교육을 운운했다. 아버지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자꾸 옆에 서 있었다.
오지헌은 착하고 용감했다. 아버지와의 연을 또 끊을 수 없어서 금쪽 상담소에 나온 것이다. 아무리 자기 생각을 말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아버지가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길 원해서.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인정받고 싶어서. 아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진정한 자유를 보장받고 싶어서.
오지헌의 아버지가 방송을 찍고 나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각자가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으셨을지는 모르겠다. 그분이 방송 끝나고서 오은영 박사에게 자신의 교육관이 그렇게 틀린 거냐고 되묻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본인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해 주기를 바라며 나왔지만 오은영 박사의 동의를 얻지 못해 얼마다 억울하고 비굴했을지 모르겠다. 독재자형 인간은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옳은 건 네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이다.'라며 자신의 신조를 쉽게 바꾸지 않으니 말이다.
방송 내내 n자로 굳게 다문 입술을 U자로 뒤집어 주시길
그럼에도 그들에겐 희망이 보였다. 오지헌이 방송을 통해서나마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간에 아버지가 아들의 말을 끊고 자기 생각을 더 깊이 쑤셔 넣었더라도 어쨌든 아버지와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물론 각자의 말이었겠지만).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의 고3 수험 기간을 위해 강사의 길을 접는 희생을 했다는 것을, 그리고 군대 간 아들 면회를 못 가본 것을 평생 죄스러워하며 살아왔다는 아버지의 진심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아버지가 내면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는 모습에 나는 감동받았다. 이것만으로도 오지헌 父子의 마음의 벽은 조금 허물어진 것 같다. 응어리가 조금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그래서 부럽다.
성향이 거의 비슷한 우리 아빠도 오지헌 아버지만큼 솔직하게 당신의 생각을 표현도 하고 상담도 하고 또 자식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신경을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내가 심리 공부를 하려는 원초적 이유는 부모에게 맺힌 내 응어리부터 뽀개기 위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