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 없는 사람은 없다.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

by 김혜정

1870년생 알프레드 아들러

오스트리아 빈, 어느 유복한 유태인 가정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아들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에게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언급된 심리학자이자 정신의학자로 친숙할지도 모른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교류하여 정신 분석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견해의 차이로 결별한 이후 ‘개인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유파를 창시했다.



아들러는 어렸을 적 골연화증을 겪어 4살까지 걷지 못했다. 5살 때는 폐렴에 걸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다행히 폐렴에 걸려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여간 선천적으로 그는 병약했고 어느 날 동생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형을 몹시 시기하고 질투했던 아들러는 형제간의 갈등을 경험한 이후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어린 시절에 최초로 경험한 부적절감, 즉 열등감을 극복하고 우월성 혹은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적 제약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던 중에 발견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은 사회적 참여를 통해 인생의 의미와 자기 가치감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아들러가 개인 심리학을 창시하게 된 배경에는 개인적인 열등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아들러는 6남매 중에 둘째였는데 자기 위에 있는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런 열등감을 무시할 수 없었고 이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열등감이 나쁘지만은 않다구

보통, 사람들은 열등감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열등감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스트레스에도 긍정적인 스트레스가 있고 부정적인 스트레스가 있듯이, 열등감에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는 긍정적인 열등감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보이지 않도록 꼭꼭 숨겨서 가두는 부정적인 열등감이 있다. 열등감을 잘 이용하면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열등감을 지나치게 가지면 회피 성향을 갖게 되어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손상시키게 된다.


출생 순서가 성격을 결정한다구 (100%는 아님 주의)

아들러는 출생 순서가 개인의 성격 형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를 밝혔다. 첫째 아이는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런 박탈감은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우월한 지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며 책임감과 가정을 돌보는 일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아이는 항상 앞서가는 첫째 아이의 존재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고 경쟁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 첫째 아이와 다른 영역의 능력을 개발시켜 인정받기 위해 주로 첫째 아이가 실패한 것을 성취함으로써 부모의 애정을 받으려 노력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둘째 아이는 첫째 아이와 반대되는 성격을 발달시키게 되는 것이다.


막내 아이는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을 수 있는 위치에서 과잉보호를 받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의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무책임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때로는 가장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여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활동을 통해 독특한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나타내는 경향도 있다.


<권석만 저, 현대심리치료와 상담이론> p.130~133 발췌



사실 형제간의 서열적 위치가 성격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나는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를 알기 훨씬 오래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에 난 친구와 이런 얘기를 했었다구~.



우리집엔 오빠와 나 둘밖에 없었지만 7살 때부터 친구였던 우리 앞집 향선이네는 3남매였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나의 절친 남희네도 3자매였다. 지금 우리 동네에도 아이가 셋인 집이 많긴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부터 고딩 시절까지 친구 중에 3남매는 흔했다. 일부러 비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그들과 나의 성격적 특징을 찾는 데 호기심을 가졌다. 친구들 중에는 남매 중 막내가 가장 많았다.



남희는 세 자매 중 둘째였다. 중간 아이와 외동아이의 특징은 위에 쓰지 않았는데 남희는 중간 아이에 해당된다. 중간 아이는 위와 아래로 형제나 자매를 두고 있기 때문에 압박감을 느낀다. 중간 아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무력감을 느끼며 다른 형제와 자매들에게 의존적인 태도를 나타낼 수 있다. 대신, 친구를 사귀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일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으며 갈등 조정자나 평화 유지군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 말이 꼭 들어맞는다. 남희는 평화 유지군이었다. 그들의 가정은 정이 넘치면서도 갈등도 많았는데 내가 느끼기엔 참 답답할 정도로 이 친구는 잘 참았다.



큰 소리로 싸우는 언니와 여동생 사이에서 남희는 늘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였지만 늘 언니와 동생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욕심은 뒷전이었다. 경쟁적으로 살아가는 나와는 너무 달랐다. 그래서 동갑이었지만 난 남희를 어른스럽게 생각했고 때론 자기 밥그릇을 챙기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남희의 아버지는 개척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이었지만 남희 아버지는 늘 공부만 하고 계셨다. 결국 남희는 목사님이 될 남자와 만났고 그렇게 평화 유지군의 사명을 띤 채 미국으로 날아가 버렸다.



앞집 향선이는 삼 남매 중에 막내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도 삼 남매 중 막내다. 똑같다. 와!! 첫째가 남자, 둘째가 여자인 것까지 똑같다. 그렇다면 셋 중 막내인 향선이와 우리 남편은 성격도 같을까? 어디 보자. 향선이와는 대학 때 연락이 끊겨서 지금 뭐해먹고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성격은!! 비슷하다. 둘 다 과잉보호를 받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꼴을 보지 못했으므로 굉장히 의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경향이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위의 남자와 여자 상위 형제가 도맡아 했기 때문에 문제를 만나면 뒷전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모든 일은 가만히 있으면 해결되었다. 물론 아버지를 닦달하는 어머니께서 전두지휘를 하시는 관계로 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드높고 어머니의 동작이 아버지의 옷자락을 움켜쥐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문제 해결력을 키우지 못한 막내들은 열등감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너무나도 흡사해서 뒤로 놀라 자빠지겠다.



얼마 전 밥을 먹으러 나가면서 내 차 안에서 나눴던 이야기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서 초등 4학년 남학생이 무슨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떨구고 눈물까지 뚝뚝 흘린다, 친구들 관계에 부정적인 경험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위로차 어르고 달래고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는 습관을 버리라고 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나한테 많이 의지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더 속상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그런다. 자기도 그랬다고. 헉. 자기도 그랬다고? 그렇다고. 어안이 벙벙하고 말았다. 그런데 남편이 그런다. 그렇게 누군가 자기한테 뭔가 물어봐 주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면 눈물이 막 나왔다고. 그게 언제 무렵이었냐고 물었다. 아마도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막내만은 공부를 시켜보자고 마음을 굳게 먹은 어머니는 아들을 이제 갓 중학생이 된 막내아들을 서울 강서구 어느 집에 자취방을 얻어 주고 주말에 반찬을 넣어주었다. 갑자기 홀로 긴긴밤을 보내야 했던,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에 적응하고 정착해야 했던 우리 남편은 그땐 잘 몰랐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성인이 되어서도 그저 형편이 어려운데 자기만 대학까지 공부시켜 주는 것에 대해 고맙고 미안해만 했을 뿐이지, 그간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돌덩이를 안고 산 것이었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야 비로소 자기 마음이 보였고 그 무거웠던 마음을 토로한 것도 40이 넘어서였다. 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한 달 정도 잡고 해야 한다. 마음속에 꽁꽁 묶어놓고 입도 봉해 두었기 때문에 남편의 어린 시절과 속마음을 잘 알지 못하지만 몇 컷만 들어도 참 마음이 짠해진다. 회피형 성격이네, 무책임하네~ 자기 일처리밖에 못하고 가족들 챙기는 일도 못하네~ 하고 10년 이상 타박해 왔지만 요즘 조금씩 밝혀지는 내밀한 마음속 심경을 들으면서 왜 남편이 그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고 있다.



남편은 고딩 때 교회에서 드럼 봉사를 했고 군대도 군악대를 나왔고 대학에서도 밴드부에서 드럼을 담당했을 정도로 드럼을 무척 잘 친다. 부모님의 경제력이 있었다면 아마 유학을 가서 멋진 드러머가 되었을 거라는 후문. 아들러의 이론에 따라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추구하여 독특한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할 수 있었다면 아마 그는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경제력이 없어서. 그런 부모님을 둔 탓에 예술가의 길을 걷지는 못했지만 무척 횡재스러운 일을 겪게 된다. 바로 나를 만난 것!! 나를 만난 덕분에 연세대학교 대학원까지 나오고 아주 횡재했다. 아직 학자금 대출은 갚고 있지만 지혜는 내 머리에서 나왔다.



너무 길어졌는데 아무튼 난 출생 순서에 따라 어느 정도 성격이 형성된다고 믿는다. 난 경쟁심을 많이 갖고 있고 부모의 애정을 받기 위해 노력했으며 주어진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긍정적인 열등감으로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해 나갈 것을 믿는다. 어느 가정이든 완벽하거나 완전한 것은 없다. 아무리 부모가 같은 사랑을 주었다 해도 자식은 불공정함을 느끼며 형제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열등 콤플렉스에 빠지지 않고 열등감을 기폭제로 이용해서 자기를 더 성장시킨다면 25년 후 우리의 모습은 완전 딴 판이 되어 있을 것이다.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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