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상담심리학
<22 전략> 실천 4일째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OT가 오늘 오전에 있었다. 입학식은 8월 하순 경에 있고 교학처에서 주최하는 OT도 8월에 있을 예정이다. 오늘 열린 OT의 기획은 ‘선후배와의 만남’이었다.
신입생들 중 오늘 참석한 인원은 열대여섯 명이었다. 총장님의 말씀을 듣고 대여섯 씩 그룹을 지어 공간을 나누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람들 무리가 있어서 거기에 끼고 싶었지만 앉았던 자리에서 이탈하기가 무색해 오른쪽 횡대로 앉았던 다섯 명의 (대체로) 연배 있으신 분들과 함께 강의실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방으로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 남자 한 명과 보통의 남자 한 명이 연이어 들어왔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한 명은 박사 과정 중이었고 보통의 남자 한 명은 석사 4학 차인 학생회장이었다. 나보다 어리고 예쁜 학우들과의 대화를 잃는 대신 고급 정보와 훌륭한 외모를 지닌 두 명의 남자 선배를 잠시나마 얻었다.
많은 질문과 대답들이 오갔다. 주로 대답은 박사 공부 중인 선배가 맡아 친절하고도 세심하게 해 주었다. 나대지 말고 조용히 있자고 생각했던 나는 그 친절함과 세심함 덕분에 기존의 오지랖을 과대 방출하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사람의 성격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닌가 보다. 나는 조금 편안함을 느끼면 고삐가 풀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 고삐를 요 몇 년 사이에 나름대로 휘감아 놓은 줄 알았는데 아직은 멀었다. 수양이 더 필요하다.
상담의 길도 멀고도 험하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상담사로 활동하기 위해 한국상담심리학회 자격증을 따려면 큰 산을 열 번도 더 넘어야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우리 브런치 작가님들 중에서 이미 상담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이나 예전에 상담을 업으로 하셨던 분들은 얼마나 큰 위인들인가 싶다. 진심~^^
내가 상담 공부를 시작하는 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중에 두 가지만 얘기하려고 한다.
첫째는 나를 알고 남을 이해하는 것이다.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알아야 하고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남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나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어림잡아 지난 10년 간 두 아들을 양육하고 사회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은 걸 생각했다. 지푸라기같이 사소한 것들이라도 그 사소한 것들이 왜 그렇게 꼬여 있었는지, 그걸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고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이나 다른 심리학 박사들의 영상도 많이 접했다. 아마 혼자 풀려고 했었다면 더 많이 꼬여 버렸을 것이다.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결국 나는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었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관심 없이 나 자신만을 아는 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둘째는 내가 나를 변화시켰듯이 남을 변화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긍정적인 변화를 말한다. 그리고 변화의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열등감이 많고 겁도 많은 사람이었다. 아직도 조금은 그렇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예민하고 소심한 면도 아주 많다. 예전엔 누가 나더러 “넌 왜 그렇게 예민하게 생각해~?”하고 핀잔이 담긴 말을 던지면 그 순간 내 속에서는 분노가 일었다. 내가 무슨! 내가 언제 예민했다고 그래! 나 완전 털털한 사람이거든?! 참나, 날 뭘로 보고 그래. 하면서 속으로 길길이 날뛰었다. 입밖으로는 내지도 못하면서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집에 오면 내가 예민한가, 하는 문제로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예민함은 하나의 열등감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관계가 어려웠다. 예민해서, 도저히 내가 그 말을 수용할 수 없어서, 내가 왜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인정할 수 없어서, 남을 부드러운 말로 설득할 용기가 없어서, 나는 관계가 어려웠다.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관계가 무섭지 않다. 어려울 수는 있지만 무서움은 버렸다. 사람이 자존감이라는 무기를 갖는 데는 수많은 자기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에 공격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무기를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연단이 필요하고 위안이 필요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불안하고 우울하며 위안과 인정을 필요로 한다는 걸 느낀다. SNS 시대이니 만큼 그런 경향은 앞으로 더 두드러질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안과 결핍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린 초중등생들이지만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많이 경험한다. 그래서 상담을 자주 해 주는데 그렇게 1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경우에 따라 조언을 해 주면 내 수업은 아이들의 구겨졌던 마음이 펴지는 시간이 된다. 공부방을 차린 후 논술 수업을 12년 차 하면서 그런 사례가 너무 많았다. (학원 경력은 9년이지만 그 때는 경험이 부족했고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느라 상담할 시간은 없었다.) 청소년 문제는 들여다보면 가족 문제와 결부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대학원 공부를 청소년 상담과 가족 상담 위주로 할 것이다. 내가 변화를 경험했듯 누구도 변화할 수 있다. 앞으로의 상담 공부는 남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바칠 것이다.
대학원에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야 한다. 남편은 평일을 그렇게 출퇴근하고 있는데 아침도 못 차려주고 잠만 퍼잤던 난 공연히 미안해진다. 오는 길에는 30분가량 앉아서 왔지만 가는 길은 1시간 40분을 꼬박 서서 갔다. 오는 길에 읽으려고 책을 한 권 들고 갔다. 최준영 작가가 쓴 <결핍의 힘>. 사실 이 제목, 내가 예전에 샤워하다가 떠올린 제목이었는데, 역시 내가 생각한 건 이미 다 있다. 작년 김포시 시민독서감상문 공모전 선정도서 목록에서 처음 본 책인데 이제야 읽어 본다.
즐거운 상상이 즐거운 일상을 만든다. 나의 즐거운 상상이 또 다른 누군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우울증을 14일 만에 극복하려거든, 한 사람을 정해서 매일 그 사람을 어떻게 기쁘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을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까를 생각하는 것이 곧 사랑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작이며, 뜻하지 않게 자기 안의 우울증을 극복할 비결이다.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이다.
ㅡ 최준영, <결핍의 힘>, p.19
아들러는 사람은 누구나 열등감이 있고 그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열등감을 극복하면 곧 우월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면 또다시 다른 열등감을 갖게 된다고. 위에서 나는 열등감을 한 가지 얘기했다. 예민함이 열등감이었다. 다행히도 그건 극복했다. 아마 어딘가에 우월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러의 말처럼 다른 열등감이 또다시 고개를 쳐들었고 이내 나는 그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그렇게 열등감과 우월감을 수시로 갈아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고 한계라면 그렇다. 이제는 받아들이는 게 상책이다. 지하철처럼 수시로 갈아타는 것이다. 열등감 열차와 우월감 열차로. 그렇게 갈아타다 보면 아마 20년쯤 후에는 나 자신을 찾는 것은 물론 수도권 일대 사람들을 다 변화시키고도 남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