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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 원으로 작아져 있어라 제발

by 김혜정



평소에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는다. 아무리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더라도 돈에 목숨 거는 사람이나 돈 있으면 살고 돈 없으면 죽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거부한다. 호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행복한 거고 호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마음도 인색해지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싫단 말이다. 나는 그저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다. 의식주만 해결되면 정신적 풍요로움은 개인의 의지만큼 커질 수 있는 것이고 굳이 돈을 너무 많이 벌려고 욕심을 내는 사람은 마음의 풍요를 오히려 깎아먹을 사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제기랄, 돈 걱정이 내 생각을 엎어놓으려고 한다. 돈이 없으면 희망도 제자리에서 180도로 돌아 낙망이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으니, 이유인즉슨ㅡ



올해로 공부방 전월세 만료일을 앞두고 있다. 2년 전, 전에 있던 전셋집에서 주인 분의 귀환으로 전셋집에서 나와야 했다. 일명 쫓겨났다. 그때는 전세며 월세며 모든 집들이 비쌌다. 그나마 평수가 작은 아파트 중에서 월세금이 35만 원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는 집이 있어, 보자마자 단박에 그 집을 선택했다. 전세는 1억 8천만 원. 전월세다. 전세금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최대치로 대출을 받아 그것으로 충당했다. 감사하게도 집단 대출의 저금리 혜택을 수여받아 35만 원 정도의 이자를 내고 있는 가운데, 내년이면 벌써 고정 금리 5년 만기가 도래하므로 시중 금리를 내야만 한다. 그러면 1억 8천에 대한 금리를 4%로 계산하면 월 60만 원의 이자를 부담해야 하고(물론 나머지 빚에 대한 이자는 따로 계산), 이자 60에 월세 35를 합하면 95만 원의 공부방 집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여기에 관리비가 14만 원 정도 나오므로 토탈 비용은 109만 원이다. 공부방을 하면서 109만 원이라는 공룡 거금을 내야 하는 상황은 나의 현 수준에 너무 큰 공룡이다. 그래서 나는 올해에 교습소를 차리기로 했다. 물론 학원을 차리고 싶지만 학원은 교습소를 성공리에 운영한 다음으로 기약한다.



그러던 차에, 오늘 일요일이지만 보강이 하나 있어 오후 보강을 끝내고 분리수거를 위해 박스들을 해체하고 도서관에 갈까 만화카페에 갈까 잠시 고민하며 에이스 크래커에 아메리카노를 먹고 있는데 큰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볼링을 다섯 게임치고 나왔는데 친구들이 너희 집에 가자고 한단다. 우리 큰아들의 친구들은 나를 잘 알기에 언제고 시간이 비거나 밖이 추워서 어딘가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면 우리 큰아들을 시켜서 전화를 건다. 그 전화는 큰아들이 거는 것이 아니라 큰아들의 입을 이용하여 큰아들의 친구들이 거는 것이라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흠하하. 짜식들.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그래 몇 시까지 놀겠냐고 물었다. 큰아들은 잠깐만, 하고는 친구들에게 묻는다. 야, 너네 몇 시까지 놀 거야~. 다섯 시쯤이라고 한다. 피자를 사 갖고 가겠다고 한다. 그럼 집에 있는 동생 것도 좀 챙겨 주라고 하고 나는 계획을 변경한다. 공부방에도 아직 내가 읽을 책이 많으므로 여기서 책을 읽고 브런치를 보자. 그렇게 커피와 크래커를 마저 먹고 브런치를 보다가 갑자기 계획에 없던 검색을 시작했다.



부동산 114 상가 매물



그리하여 나는 오늘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2년 전 떠나온 아파트의 상가에 매물이 하나 나왔다. 그런데 그게 왜 신기한 것이냐! 왜냐! 바로 그곳은 내가 예전에 "여기에서 공부방(교습소) 하면 완전 좋겠다!"라고 외쳤던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에도 큰 도로를 앞에 둔 엄청 큰 상가에 매물이 있긴 했지만 발 벗고 찾아 나설 만큼 나에게 합당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 이 상가는 내가 전에 눈으로 찜을 날렸던 바로 그곳이라는 말이다. 2000에 130. 보증금은 2천이고 월세는 130. 관리비는 8만 원이라고 떴다. 월세가 좀 비싸긴 하지만 앞으로 감당해야 할 전월세금 109만 원에 비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 자리가 훨씬 낫다. 왜냐하면 아파트 공부방에서는 닭장 같은 집들 가운데 섞여 아무도 몰라 주어도 내 학생들만큼은 열렬히 사랑하고 열심히 수업하지마는, 밖으로 오픈되어 버젓이 간판을 달게 될 상가 교습소에서는 아무리 숨으려 해도 숨을 수 없고 아무리 홍보하지 않으려 해도 금세 주변에 알려지게 되어 더 이상은 홍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픈 하우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홍보하는 걸 무지하게 싫어한다. 블로그나 인스타에도 억지로 한다.ㅜㅜ



그러면 이곳은 어떤 곳이냐. 이 상가로 말할 것 같으면, 3층 상가 중 1층이고 그냥 1층이 아니라 앙증맞은 계단이 다섯 개 있는 1.5층에다가 작은 테라스까지 있는 곳이다. 이 테라스에는 배너 입간판을 두 개 설치해 놓으면 좋겠다. 페인트도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출입문 옆의 문도 폴딩도어로 되어 있어 너무나 시원하고 이쁘다. 직접 가서 반대편에서 사진을 두 장 찍고 전에 거래했던 부동산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아직 만기가 여덟 달이나 남았는데 무슨 방도가 있을까 하고 물었다. 사장님은 방도는 물론 방해물도 있음을 알려 주었다. 그곳이 현재 베이커리 가게이므로 권리금이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필요 더라도 그곳에서 사용하던 기존의 용품을 인수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게 권리금이다. 그리고 그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가 계약을 하겠다고 하면 합의된 이사 시기 이후부터 만기(혹은 앞당긴 만기)까지 월세금을 내야 하고 백만 원 넘는 두 매물에 대한 중개 수수료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얼마 전 구역 예배 때 올해는 교습소로 나갈 계획이 있다고 기도제목을 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음에 드는 자리가 나올지는 예상치 못했다. 교습소냐 학원이냐를 놓고 최근까지도 고민을 하다가 아직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혼자 운영하는 작은 교습소가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고, 지사장님께도 이런 이야기를 바로 지난주에 꺼내 놓았는데 역시 나는 마음이 동하면 주님이 길을 열어주신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김칫국만 시원하게 들이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권리금이 전에 6000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얼마로 내렸을지 모르겠다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한 건 에어컨 하나일 뿐인데, 에어컨 하나 값을 2000~3000만 원에 치를 수 있을까? 행여 내린 권리금이 4000~5000만 원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나는 통곡한다. 돈이 없는 설움으로. 사업을 하려면 초기 투자 자본이 넉넉해야 하는 것인데, 마음에 드는 적당한 매물이 있다 해도 돈 앞에서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다. 학원을 차릴 경우, 인테리어를 내 마음에 들게 3000~4000만 원 들여서 하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작은 교습소에 생으로 날아갈 권리금을 내는 건 너무나 아깝다. 3개월 치 월세와 이중 중개수수료는 눈 딱 감고 낼 수 있지만 권리금이여~ 제발 1000만 원으로 작아져 있어라. 제발.



여기서 나는 다시 첫 단락을 읽어본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내 말이 아닌 것 같다. 나는 호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돈은 필요한 것보다 조금 더 넉넉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보증금도 권리금도 다 아무 걱정 없이 척척 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바로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학원을 차린다면 인테리어도 파란색(남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예쁘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할 수 있도록 그전에 돈을 많이 벌어야지 하고 주먹을 꽉 쥐는 사람이었다. 돈이 많으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며 자본주의 시대를 잘 따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만화카페나 스터디 카페를 가기 전, 시간 계산 안 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하루 종일 뒹굴거려도 돈이 새어나간다는 의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길 바란다. 옷을 살 때도 태그를 보지 않아도 되고 펌을 할 때도 얼마냐고 묻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호주 소고기 모둠을 가족세트로 시켜 먹고 나머지 빈 배는 후식 냉면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한우고기를 그것도 특수부위를 시켜서 가족들 최대한 배부르게 먹이는 사람이길 바란다. 우리 남편이나 아들들이 여행을 가고 싶다면 가고 싶은 곳으로 비행기표 딱딱 끊어주고 일주일 시원하게 여행시켜 주는 그런 사람이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마인드를 바꿀 것이다. 내 뜻대로 용기 있게 투자하고 돈을 벌 것이다. 사업가 마인드로 바꾸어 돈을 벌어 ~~~~ 이러한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첫 관문은 올해에 열리리라. 교습소를 오픈함으로써~!! 꼭 이곳이 아니어도 나에게 합당한 교습소가 오픈될 거라는 걸 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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