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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끊는다는 것

제발 연락하지 말아 줘

by 김혜정


잊고 지내고 싶다.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면 좋겠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의 두개골을 열어서 해마에 저장된 하나의 기억 덩어리를 송두리째 꺼내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그러나 나는 일개의 인간이다. 내 머리통 속에 들어있는 두뇌 속의 기억들을 잘게 자르거나 소멸시키거나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가 없다. 미래의 어느 날, 기억의 편집 기술이 실현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이 기억 덩어리를 정말로 삭제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저께 금요일 수업 중인데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전화 와요~."

나는 수업 중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걸 알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도 지인들도 전화를 아무 때나 걸지 않는다. 네임창에 뜬 이름은 'OO 언니'였다. 인연을 끊었는데도 여전하구나. 본인이 편한 시간에 아무렇게나 전화를 거는 버릇은. 곧바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 주세요.'라고 입력된 문자를 보냈다. 자기 아들이 생파에 초대했는데 우리 아들이 대답이 없으니, 물어봐 달라고. 경우에 따라서 급할 수도 있고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를 끊고 싶어 하는 나에게, 그것도 내 수업 시간에, 생파 참석 여부 문제로 굳이 전화씩이나 해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아동기인 것도 아니고 이제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굳이 간섭할 필요가 있을까.


퇴근 후 작은아들에게 물었다. 연락을 받았느냐고. 아들은 직접적으로 초대를 받은 건 아니라고 했다. 학교에서 지나가다 마주쳤는데 "너, 내 생파에 올 거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교실에 들어갔을 때도 다른 친구가 "너, 생파 갈 거야?"하고 물어봤을 뿐이고, 생파가 언제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둘은 예전엔 절친이었다. 하지만 성격이 서로 다르고 또 다른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멀어졌다. 그 언니는 엄마들이 멀어졌다고 해서 아이들까지도 멀어질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내가 아이를 조종한 것처럼 원망을 퍼부었었다. 이미 관계를 끊은 후였는데도 질기게 문자를 했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만약 서로가 잘 맞았으면 계속 잘 지냈을 거였다. 잘 지내든 멀어지든 아이가 선택할 일이다.


결국 생파는 어제 다녀왔다.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오랜만에 방방에 가서 친구들 15명과 뛰어 논 것과 옆동네 다른 학교의 여자친구들과도 이야기를 나눈 것은 꽤 재밌어했다. 이제 외모도 신경 쓰기 시작하는 초6 아들의 어제 시간은 추억의 강으로 흘러간 듯했다.


그런데 나는 추억이 아니라 지옥의 강으로, 억지로 문자 앞에 소환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폰을 보니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보고 싶지 않은 메시지이지만 그래도 아예 무시할 정도로 뻔뻔하질 못해 메시지를 클릭했다. 입력 시간은 새벽 4시 48분. '술을 한 잔 먹고 쓴다.'는 말로 시작되는 장문이었다. 몇 년 전에 했던 말을 또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가 소원해졌어도 아이들은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 이미 난 몇 년 전에 대답했지만 아이들의 관계는 내가 관여할 바 아니라고 다시 답변했다. 첫째들도 동갑이고 어려서는 친하게 지냈지만 서로 성향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니 자연적으로 오래전에 멀어졌다. 그런 것을, 둘째에 대한 집착과 연민으로 인한 감정을 굳이 나에게 다시 묻힐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도 이미 식어버린 그 감정을. 감정은 활활 타오르를 때 불이 붙는다는 걸 정녕 모르는 걸까.


문자의 말미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서운한 일이 있었다면 잊으라고. 말이 이렇게 간단할 수 있을까. 잊을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미 화해의 손을 건넸겠지. 이미 넘어버린 강을 뒤돌아 바라보는 행위는 참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나는 그 언니와의 관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정리했다. 나에게 했던 모든 부정적인 말들과 행동도 다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건 내가 버렸다고 해서 완전히 버려지지 않는 트라우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쓰레기통에 버렸지만,, 내 감정과 상처까지 버렸지만, 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마주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 쓰레기통에서 튀어 오르는 트라우마를 목격했다. 그 사람 얘기만 해도 내 심장은 경련이 일듯 마구 뛰었고 머리통이 우왕우왕하면서 울려대는 걸 참아야 했다. 그러면 어느새 눈떨림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평정심이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그 언니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 한때 우리 큰아들을 위해 200% 사랑을 담았던 초1 엄마들 모임도 끊었고 그 언니를 포함한 몇 명의 모임도 끊었다. 사실 초1 모임은 일부러 끊었다기보다는 끊어졌다. 내가 애정했지만 오랜 코로나로 소원했던 초1 모임은 몇 달 전 나를 배제한 구성원으로 부활해 있었다.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이 그 언니였기에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군가의 말을 통해 그 끄나풀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상실감이 왔다. 그리고 나와 그 언니와의 관계를 모르는 채로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기억할, 몇몇 사람을 떠올릴 때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누가 나를 대변해서 말이라도 해 주길 속으로만 바랐다. 그러나 현재 개인적 아픔을 겪고 있는 그 언니를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나만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발 벗고 나서서 사건의 진위를 밝히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관계를 끊는다는 건 나쁜 기억과 나쁜 감정을 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나쁜 기억과 나쁜 감정은 딱지처럼 뇌의 해마와 편도체 속에 들러붙어 있다가 누군가가 스위치를 누르면 자기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튀어나오니까. 평생 스위치가 켜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또한 쉽지 않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 관계 역시 그러하니까.


나는 내 인생에서 관계를 끊은 일이 두 번 있다. 첫 번째 일은 서른 살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땐 마포의 대형 학원에서 고1 최상급팀 전임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근무한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시점었다. 자정이 가까운 퇴근 시간, 신호 대기 중 기어를 중립에 놓았다. 그런데 뒤에서 쿵!! 내 차는 그대로 전진하여 앞차를 쿵 박았다. 삼중추돌이었다. 순간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뺑소니 트럭이 앞길에서 우회전하여 도망가고 있었다. 학원 우리팀 선생님들 중 영어 남자쌤은 반드시 입원을 해야 한다며 며칠 동안 날 붙잡고 상황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었다. 후유증이 무섭다는 그 쌤의 설득에 마음을 돌리고, 일은 빡세지만 대우가 좋았던 그 학원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등관 원장님을 찾아뵈었던 날, 엄청나게 충격적인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김 선생, 그렇게 안 봤는데, 우리 학원이 그렇게 지옥 같았어?" "ㄴㅔ???" "누가 그러던데, 김 선생이 우리 학원 지옥같이 힘들다고 했다고." "헉, 네, 제가 그런 말을 하긴 했어요. 근데 그건 일이 빡세고 힘들다는 거 알고 들어오라는 의미에서 같이 밥 먹다가 웃으면서 농담 조로 한 거였는데요, 원장님. 너무 오해는 안 하셨으면 좋겠..." "됐어! 됐고,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야." 원장실 문을 닫고 나오면서 난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다니는 학원에 소개 좀 해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원서를 지원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었더니, 본인이 힘들다는 말은 숨기고 어떻게 날 매도하니!!난 그날로부터 그 언니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 배신이라는 건 바로 이런 쓴맛을 남기는 거구나 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두 번째였다. 번 인연은 내 소중한 아들들과 함께 시작됐고 훨씬 더 복잡했고 깊었다.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어지러운 말들도 그만큼 많이 쌓여 있었다. 그 불편하고 삐그덕거리는 관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큰 환멸을 느꼈고 그전보다 열 배는 더 큰 배신감을 느꼈다. 개인적 아픔을 남의 탓으로 떠넘길 때, 그 탓을 감당해야 하는 괴로움은 생각보다 깊은 것이다. 배신이 영화나 소설의 단골 소재인 건 '그냥'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속을 바가지 속 파듯이 박박 파놓고 사람을 본심을 등쳐먹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나에게 배신 때리는 사람은 끊기로 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고 정을 많이 주었는지, 얼마나 좋은 기억을 많이 갖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배신은 좋았던 기억들까지 모조리 잡아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기억을 끊어내는 것, 관계를 끊어내는 건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무수한 기억이 찰거머리처럼 날 휩싸고 돌아도 기필코 떼어내어야 내가 살 수 있다. 난 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상담을 공부하면서 나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또 나와 같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치료해 줄 것이다. 그게 내 삶을 숨 쉬게 하는 또 하나의 여정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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