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

<22 전략> 실천 3일째

by 김혜정

소설을 집필할 때의 심리 상태 조절에 대해 말한다면, 그날 써 나갈 노동력이 커버할 수 있는 부분보다 먼 곳을 보아서는 안 된다. 장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다가올 일은 생각하지 말고, 하루 동안 써 나갈 수 있는 글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이 나의 직업상 비결이다.

ㅡ 오에 겐자부로,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 p.156
우선 글쓰기에 임하는 자세에 있어서 ‘창작자’가 아닌 ‘편집자’가 되길 권하고 싶다. 물론 윤리적인 편집자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글쓰기의 고통은 의외로 과욕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 걸 다 만들어내겠다니, 그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가. 윤리적이고 겸허한 편집자의 자세를 갖게 되면 당연히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ㅡ 강준만, <글쓰기의 즐거움>, p.6



어제 읽기 시작한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135, 136쪽에 각각 인용된 문장들이다. 이보다 앞선 페이지들에도 글감으로 취하고 싶은 부분들이 열 군데도 넘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나를 그냥 넘어가게 하지 않았다. 나를 들어올려 엎치기 뒤치기를 한 후에 바닥에다 내리꽂았다. 아직도 등허리가 뻐근하다.




책을 매일 읽고 글도 매일 써보겠다고 작정한 지 3일 차인데 어젯밤 남편과의 산책길에 남편이 걱정을 내비쳤다. “그러다가 몸 상하는 거 아냐?” 진심이 묻어난 질문이었다. 웬일? 남편은 눈치가 없기로 우리 집에서 유명한 양반인데 그래도 나를 어느 정도는 파악했나 보다. 한 번 뱉은 말을 지키려고 똥까지 참으려 하는 내 성미를 아는 것 같다. 그러니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이제 2학기 때는 대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마당에 매일 글을 쓴다는 게, 몸이 그걸 어떻게 버티겠느냐는 게, 현실적인 걱정이다. 사실 월요일에 올린 글 2개 중 하나는 일요일에 쓴 것이라 일요일부터 치자면 오늘이 4일 차다. 그러나 어쨌든 목・금요일은 수업이 많은 날이므로 앞으로 금방 고꾸라질 일이 눈에 훤한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힘들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융통성을 가져야지~~!! 일단 목표는 그렇게 세웠다는 거고, 목금은 경우에 따라서는 못 쓰는 경우도 있는 거야. 그건 어차피 나 자신과의 싸움인 거니까 괜찮아.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습관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남편은 내 얘길 듣고 숨을 꼴깍 삼켰다. 다행이다. 나도 이렇게 정정해서 말하고 나니, 부담이 덜어지고 뭔가 타협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은 지켜야지, 빼먹는 날은 있더라도 습관 한 번 만들어 보자, 딱 2년만!!


워워, 그러나 2년이 아니라 2개월 후면 아마 시간에 허덕이게 될 것이다. 대학원이 어디 아빠가 알고 있는 노인대학도 아니고, 중간 기말고사 다 있는 대학원인데, 9월이면 아마도 숨쉬기도 힘들지 모르겠다. 부담이 턱까지 차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에서 읽은 위의 두 인용문은 현실적으로 나에게 용기를 주고 위안도 주었다.



이 글의 처음에 인용한 글의 작가는 지난 3월 3일 타계(他界)한 오에 겐자부로다. 그는 살아생전에 노동력이 커버할 수 있는 능력보다 너무 과한 걸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작가에게 글이란 하루하루를 살게 하는 일용할 양식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일주일을 배부르고 싶다고 해서 오늘 일주일 치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그의 말은 현명하다.



여기서 잠깐 오에 겐자부로에 관해 검색해 보았는데 그는 ‘일본의 양심’으로 대표되는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탄 아시아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자 평화운동가였다고 한다. ‘일본이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적어도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들은 평생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속죄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던 시대의 양심이다. (한겨레, 임민택 기자) 하루하루를 양심적으로 살아갔을 그의 인생을 잠시 생각해 본다.




두 번째 인용한 글에서는 글을 처음부터 창작하기보다는 편집하라고 조언한다. 앞으로 책을 더 많이 읽고 인용하게 될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는 말이다. 물론 길이를 조절할 필요는 분명 있지만 남의 좋은 글을 곰곰 씹어보고 소화해 내는 것도 작가의 능력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의 저자 배상문은 이 꼭지의 제목을 <인용도 실력이다>라고 지었다. 저자가 말했듯 초짜에겐 인용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자료를 선별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 나가는 방법도 좋은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생각으로만 채우는 건 나중에 중견 작가가 되어서 해도 된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인용문을 넣는 것은 독서에 동기 부여가 된다.’, 저자가 한 말이다.



그러나 최근 내가 책을 읽고 리뷰하듯 쓴 글들을 보면서 내 생각보다 인용한 글의 비중이 너무 많다는 건 유념하고 있다. 인용은 최대한 짧게 하고 거의 다 자신의 생각으로 써야 한다고 학생들에게도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인용을 왜 그렇게 많이 하는 것인지!! 부끄러웠다. 너무 일부만 인용하면 작가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그랬지만 주와 객이 전도되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좀 더 줄여나갈 것이다.




어제는 어느 원장님께 추천받았던 <문장기술>이라는 책을 한 권 읽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맞춤법과 어법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내용은 블로그에 언급할 생각이다. 어젯밤에는 도서 인플루언서들의 블로그를 탐방했다. 블로그는 단순히 홍보를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글을 쌓아놓는 서재로 이용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책의 가치를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남기는 것이 결국은 나의 자산이 되고 앞으로 책을 읽어 나가려고 마음먹는 타인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역행자>를 읽은 덕분이다.



힘이 많이 들어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니 힘이 든다. 이제 힘을 빼고 잠시 멍을 때리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러니까 당신도 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