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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22 전략> 실천 2일째

by 김혜정

어느 원장님께 추천받은 책이다.


내가 문장을 쓸 때에는 어딘가에 있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조용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알아줄 것이라는 그런 메시지요.


- 히사이 쓰바키・구와 마사토 / <하루키를 읽는 법> p.80-81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굳이 직업 작가가 아니더라도 글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쓴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생각에 그 말은 거짓이다. 카프카는 죽을 때 친구인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라고 했었다는데, 나는 그의 말이 진심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중략>


이 책의 독자는 분명하다. 자신의 글로써 “어딘가에 있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조용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요컨대 ‘작가 지망생’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내가 말하는 ‘작가’는 여태껏 통용되어 온 ‘작가’의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작가’라 하면 ‘종이책’을 한 권이라도 낸 사람을 가리켰다. (중략)


그러나 표지에 자기 이름이 박힌 ‘종이책’을 낸 사람이나 신춘문예와 같은 ‘등단’ 제도를 거친 사람만 ‘작가’라고 부르는 건 이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중략)


‘작가’의 패러다임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향후 10년 안에 이 모든 관념이 바뀔 것이다. ‘종이책’을 내지 않거나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기존 작가의 지위와 맞먹는 인터넷 작가가 탄생할 것이다. 요컨대 글을 내놓는 ‘매체’의 종류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중략) 나는 오랫동안 ‘글을 잘 써 보고 싶다’는 단순한 목표만 가지고 공부를 해 왔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내 나름의 비결 또는 지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소박한 마음뿐이다. 종이책의 저자가 되거나 특정 매체를 통해 등단을 한다면 물론 기분은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즐거움일 뿐이다. 글쓰기의 본질은 글쓰기 자체에 있다. (중략)


선택받은 소수만이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던 시대가 저물고 있음에 감사하자. 이제는 본질에만 집중하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메시지’가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장력’이 있는가 하는 것뿐이다. 그것만 확실히 손에 쥐게 되면 당신은 이미 ‘작가’다. 다시 강조하건대, 지금은 ‘개나 소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배상문,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p.6-11 발췌



나도 개나 소 중 하나이기에, 아직은 명함을 만들 수 없는 무명 작가임에 씁쓸하긴 하지만 이렇게 브런치 타이틀을 달고 글을 내 마음대로 올릴 수 있음에 황송하고 감사하다.


나는 '작가 지망생'이다. 브런치 필명 아래에 나를 소개한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말했듯이 글을 잘 써보고 싶다는 단순하고도 진심 어린 목표로 이곳에 들어왔다. 이미 유명한 작가들도 접하고 무명이었다가 유명해진 작가들도 목격하게 되면서 '진짜 작가'들의 세계에 합류하게 된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저자는 어떤 매체에서든지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작가라 칭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 인정할 수가 없다. 출간을 해야만 진짜 작가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아직 문장력이 수줍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배상문 작가는 오랫동안 글쓰기를 공부했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글쓰기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고 또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작가지망생이다. 물론 온라인 작가라는 직함을 갖게 되었고 학생들 앞에서는 선생님이 온라인에서 글을 쓴다며 호들갑을 떨긴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 필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발 묻지 말라고 한다. 아직 자신이 없다. 시류에 편승하기 위해 인스타나 블로그에도 브런치 작가라고 공공연히 밝히기는 하지만 링크를 타고 들어오길 바라지는 않는다. 이래서야 작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는 작가가 아니라 작가지망생이다. 원두의 깊은 쓴맛처럼 작가라는 호칭 앞에선 여전히 씁쓸함을 느끼는 나는 작가지망생이다.


그러나

쓴맛 속에서 달콤함을 추출하고 싶다. 그러려면 꾸준히 읽고 쓰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문장력’이지만 문장력 뒤에 감추어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른 이들이 아무리 나를 ‘작가’라고 불러줘도 스스로 작가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아직 메시지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 흩어져 있는 메시지를 한잎 두잎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 그리고 좀 더 깊은 메시지로 숙성시키는 것, 그 일을 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방학을 맞은 큰아들이 친구들과 볼링을 치고 왔다. 192점을 찍었다고 한다. 스스로 불만족해서 심통을 부리면서도 나름대로 자세를 연구하며 노력해서 이루어낸 쾌거다. 이번에도 아들에게 한 수 배웠다. 문제점만 바라보면 자신의 문제만 보이는 법이니 문제의 정곡만 보기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즐기라고 했는데 아들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분석했고 목표를 높게 가졌기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올해 3월에 처음 시작한 운동인데 친구에게 좋은 자세를 배운 덕분에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나는 아들과 같이 쳐주느라 연속 네 게임 치다가 골반에 석회가 생겼지만.)


나도 좋은 글을 읽으면서 좋은 자세를 배우고 자기 문제를 현명하게 분석하면서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길 다짐해 본다. 아들에게 배울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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