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왔다. 집에는 지금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집에 누군가가 있으면 집중이 안 된다. 고로 내가 빠져나와서 이렇게 혼자 있으면 된다. 행복은 커피값보다 훨씬 크다.
나는 매일 순간순간 행복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남편은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한다. 와~ 그럼 무슨 느낌으로 사는 거지? 혹시 행복을 쥐고 있는데도 그게 행복인지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것조차 잘 모르겠다고 한다. 와~ 이렇게 답답할 수가.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마 남편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행복이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냥 설거지 한 번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한 상태, 운전을 하면서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을 쐬면서 쾌감을 느끼는 상태, 책을 읽고 원기가 충만해지거나 두뇌가 활성화되는 정서적 포만감의 상태, 아들들과 대화하거나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내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라는 걸 의식하는 상태라는 걸 진정 모르는 것일까? 아마 남편은 자전거를 타고서 한강이나 아라뱃길까지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이 빡세게 다리를 굴려 50km를 달려야만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자전거 타면서 바람 쐬는 시간을 사랑하니까. 그래서 나더러 자전거를 더 연습하라고 한다. 그 기분을 느껴 보라고 말이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행복한 순간을 더 추가하고 싶어서 가끔씩 자전거를 연습한다. 아무도 통행하지 않는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아직은 누구랑 부딪힐까 봐 남편을 옆에 달고서. (글을 쓰다 보니 이동 수단을 타고서 바람을 쐬는 걸 행복해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만큼의 행복이 아니면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관점을 바꾼다면 훨씬 행복한 일 투성이일 텐데.)
아무튼 이제 나는 행복한 시간을 늘리기 위해, 그리고 어제 썼던 글처럼 <22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서 카페에 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사실 하루 2시간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마음먹은 일은 꼭 하고야 마는 성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이 정도는 힘이 안 드는 상태에 와 있다. 다만 조금이라도 완성도를 높여서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 뿐이다. 그것만 내려놓고 자청처럼 이렇게 편한 어투로 글을 쓴다면 매일 글을 쓰는 건 엄청 쉽다. 완성도나 글의 질이 떨어질 뿐. 이게 싫어서 안 한 거지만 일단은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나 혼자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이 더 우선이니까.
자청의 <역행자> 중 어제는 4단계까지 읽었고 글을 썼다. 그리고 오늘은 5단계를 1시간 동안 읽었고 중간에 걸려 온 전화를 몇 건 받았다. 지금 읽고 있는 5단계는 ‘역행자의 지식’ 편이다. 여기서는 실행력을 강조한다. (인생을 게임에 비유한 건 어제 내가 생각해서 썼던 말인데 5단계에 나와 있었다. 아마 내가 유튜브에서 이미 봤었던 말이었나 보다. 기억의 왜곡이다.)
나는 인스타도 하고 있고 블로그도 얼마 전에 시작했다. 헤드라잇 창작자로도 선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플랫폼들을 잘 활용하지는 못한다. 게으르거나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둘 다 맞다. 나는 아직까지 브런치가 제일 좋다. 어느 때고 혼자 슬쩍 들러도 언제나 상콤한 카페 같기 때문이다. 또 내 자의식을 일부러 해체하지 않아도 저절로 해체가 되고 뇌를 억지로 자동화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자동화되는 시스템이 가동된다. 주면 다시 돌아오는 ‘give and take’가 가능한 곳이다. 역행자 5단계에 기버 이론이 나오는데 역행자는 1을 받으면 2를 준다고 했다. 나도 브런치에서 이걸 실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자청은 이제 3개의 과제를 하라고 주문한다.
1. 블로그를 개설해서 아무거나 하나의 글을 써라 (정확히 20분 타이머를 켜고 시작해라).
2. 유튜브를 개설해서 자신의 폰에 있는 영상을 아무거나 하나 업로드해라 (이것 역시 정확히 20분 타이머를 켜고 시작해라).
3. 1, 2번이 싫다면, 최근에 본인이 관심을 갖고 있던 일 중 아무거나 하나를 해라 (독서 20분 하기 등).
여기서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자청은 이 3가지를 실천한 사람은 99퍼센트일 거라고 장담한다. 그래, 맞다. 그럴 것이다. 실천하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다. 나도 블로그를 개설한 목적이 내가 운영하는 수업을 홍보하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여태 올린 글은 10개도 안 된다. 이웃도 단 3명이다. 크크. 이게 자청이 말하는 가장 요긴한 마케팅 수단이라는데 홍보는 하고 싶으면서도 상업적으로 보이기 싫은 탓에 글을 안 올리는 게 문제다. 그리고 아직 감도 못 잡았다.
유튜브도 작년 말에는 꼭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고 바로 삼각대도 구입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려니 순행자의 의식이 발목을 잡았다. 얼굴을 팔고 싶지도 않고 아직 나에게 적합한 콘텐츠를 선정하지 못했다는 판단이 든 것이다. 편집도 전혀 할 줄 모르고 섬네일 만드는 법도 모르고 아직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주먹만 불끈 쥐고서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고 맨땅에 헤딩할 바에야 나중에 내가 뭔가를 이루고 난 다음에야 시작하자고 생각을 고쳐 먹었다. 사실 그게 더 현실적이라는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도 마음먹은 것은 하나둘 성취하는 편인 만큼 1번, 블로그 활동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2번은 보류한다. 3번은 <22 전략>을 실천하는 것으로 오늘부터 1일이다. 시작은 언제나 즐겁다. 도파민이 나와서 흥분되니까. 물론 이것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 볼 것이다.
어젯밤에는 4게임에 10,000원인 이벤트 시간에 가느라 밤 11시에 온 가족이 볼링장에 다녀왔다. 제안하는 사람은 언제나 큰아들. 엄마랑 꼭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피곤하지만 함께 갔다. 가는 길에 아들은 (최고 기록이 180점인데) 이번 목표는 200이라고 했다. 너무 목표를 높게 잡지 말고 오히려 기준을 낮춰서 140점 정도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내가 말했다. 하지만 신기록을 세우고 싶은 아들은 극구 부인했다. 이제는 거의 스페어 처리가 가능하고 스트라이크도 잘 나오니까 180점은 무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네 게임 중 180점은커녕 140점 대도 한 번밖에 안 나왔다. 아들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내가 찍어준 동영상을 봐가면서 “뭐가 문제지? 뭐가 문제지” 하면서 문제점만 분석을 하려고 했다. 아들아, 차분히 천천히 해, 마음을 비워, 즐겨, 그래야 본 실력이 나오는 거야. 나는 옆에서 계속 얘기해 줬지만 아들은 스스로 세운 높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불만스러워했다. 볼링장에 가는 길은 너무 흥분되고 즐거웠지만 돌아오는 길은 회의감과 불만으로 가득 찼다. 물론 어제 새벽 이렇게 부족한 자신을 한탄스러워하면서도 포즈를 연구하고 바꿔 보기도 하고 옆에서 선수들처럼 잘 치는 어른들 자세를 참고하기도 한 모든 과정들이 아들에게는 득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에 친구들하고 가면 어제 연구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재현되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한 번에 20점을 올리려고 한 건 과한 욕심이었다. 이번엔 꼭 달성해 보리라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에 오히려 점수는 곤두박질친 것이다. 자기보다 못하던 친구가 200점을 찍었는데 왜 자기는 못 하겠느냐는 오만이 그런 결과를 불러온 것일 것이다.
우리 큰아들을 보면서 나는 지혜를 하나 얻었다. 어떤 일이든지 갑자기 큰 소득을 얻으리라 확신하는 것은 교만이자, 오만이라는 것을. 남과 비교하는 것은 크나큰 자기 손실을 가져오는 거라는 것을. 아들도 이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터득해 나가면 좋겠다. 자청의 <역행자>도 읽고 말이다.
한 순간에 도약할 순 없다는 건 진리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안 되는 걸 되게 하도록 도전하고 실행하고 반복 연습하는 그 과정이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아들아, 너도 <22 전략>을 실천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 그럼 볼링장을 매일 가는 걸로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