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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Feb 20. 2022

의심할까, 믿을까

영화 <메기>

합리적 의심(疑心)이라는 말을 근래에 많이들 사용한다. 그냥 의심이 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합리적’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여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의심’이라는 말에 내포된 의미가 상당히 부정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의심’이란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해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합리적인 근거는 어느 정도 댈 수 있다는 자신감에 ‘합리적 의심’을 운운한다.

 

사람은 ‘믿음’과 ‘의심’ 중에 어떤 마음을 더 많이 가지고 살아갈까. 영화 메기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현상과 문제들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수용할까. 믿음이 먼저냐 의심이 먼저냐, 이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마음에 의심이 들어왔다면 우리의 마음은 갑자기 번뇌로 가득 차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100% 믿을 수 있는가? 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믿어줘야 하는가?

 



영화 메기에서 윤영(이주영 分)은 x-ray실에서 찍힌 섹스 장면의 주인공으로 지목된다. 물론 그 주인공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실제 주인공들 빼고는. 벼랑 끝에 선 윤영은 동거인 성원(구교환 分)과 x-ray 필름을 대조해 보며 자기네들이 주인공일지 모르겠다고 단념해 버린다.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는데도 합리적 의심에 걸려들고 만 것이다. 아이러니다.

x-ray 필름이 공개된 다음 날, 병원 관계자는 모두가 결근을 한다. 그 주인공이 자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을까. 일일이 전화를 걸던 병원의 부원장(문소리 分)에게 윤영은 그들을 의심하지 말라고, 그들이 진짜 아파서 결근했을지 모르니 일단은 믿고 직접 가정방문을 해 보자고 제안한다. 부원장은 윤영의 말을 수용하고 어느 직원의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진짜 그 직원이 도해 있는 것이 아닌가. 부원장은 윤영의 ‘믿음 교육’을 통해 이제 사람을 믿기로 한다. 함부로 의심하지 않기로 한다.

사실 부원장에게 ‘믿음’은 어려운 일이었다. 부원장이 초등학교 시절, 어떤 남자아이가 눈앞에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진실은 그의 아버지가 건물 옥상에서 그 남자아이를 떨어뜨려 죽인 살인 사건이었는데 부원장이 그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살인 미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진실은 왜곡되고 세상은 자기를 믿어주지 않았으므로 남을 믿을 수 없게  가혹한 현실, 세상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의심이 키운 불신이었다.

 

윤영의 동거인 성원은 윤영의 집에 얹혀사는 별 볼 일 없는 백수였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한다. 싱크홀은 도시를 집어삼킬 듯 깊고 크게 뚫려 지나가는 사람까지도 잡아당길 위세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른 기회! 싱크홀은 백수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성원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성원은 커플링을 잃어버린다. 성원의 팀원 두 명은 성원의 비위를 맞춰가며 여러 날 동안 커플링을 같이 찾아봐 주는데 그중 한 명의 발가락에 끼어 있는 백금 반지를 발견하게 된다. 성원은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생각에 실소하며 그에게 그가 잃어버린 지갑 속 12만 원을 대신 줄 테니 반지를 돌려달라고 한다. 그 동료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돈을 받아가고 성원은 배신감을 느낀다. 집에 와서 꺼내 든 백금 반지, 와~ 그건 발가락 용이었던 것이다. 합리적 의심은 근거를 잃는다.

 

윤영에게 성원의 전 여자 친구가 찾아와 힘들었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제라도 과거를 들추어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말이다. 성원에게 당했던 폭력 때문에 괴로웠다고 한다. 윤영은 불안해지고 불안은 큰 두려움이 되어 점점 더 부풀려진다. 산동네로 이사 갈 집을 알아봐 주던 성원에게 전화상으로 길을 안내받던 중 낭떠러지와 같은 계단 앞에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면한 윤영은 성원이 자신을 죽일 작정이었다는 의심까지 하게 되고 곧 성원을 집에서 쫓아낸다.

그 후 성원의 집으로 찾아간 윤영은 성원이 진짜 폭력을 행사했었는지 진실을 알고자 한다. 성원은 망설임 없이 맞다고, 전 여자 친구를 때렸다고 얘기한다. 그 순간 어항 속 ‘메기’가 뛰어오르고 거대한 싱크홀이 지하로 꺼진다. 물론 성원과 함께.

 



이 작품은 ‘의심-믿음-의심-믿음-의심-믿음’의 반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의심할 만한 일이었지만 알고 보면 믿었어야 했던 일이었다. 결말 전까지는 의심하기보다는 믿기를 종용한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성원의 과거 폭력 사실이 밝혀지는 것은 단순하게 해석하기가 어렵다. 성원은 이미 지난 일로 가볍게 치부하면서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리라고 의심하고 그 의심을 키우는 것이 합당 않다고, 그 부풀려진 풍선을 퐁 터뜨려 주고 싶다고 했지만 요즘같이 데이트 폭력이 중범죄가 된 세상에 그를 믿는다는 것은 구덩이에 빠지는 일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더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윤영과 부원장이 가슴에 품었던 말이다.

언제든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 그 구덩이는 자기가 만든 것일 수도, 가족이 만든 것일 수도, 사회나 국가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구덩이에 빠지면 두 가지 선택만 가능하다. 그냥 빠진 상태로 체념할 것인가, 얼른 빠져나갈 생각을 행동화할 것인가.

의심이 엄습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관념에 관한 것일 때는 자신의 생각을 의심해야 하지만, 나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직관에 따라 의심하고 행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 씨네 21

 


진리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다.
믿음을 검으로, 의심을 방패로 삼아 전진하자.
메기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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