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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Nov 20. 2022

벼랑 끝에 선 부부

part1. 참을만큼 참았다

  

더 이상은 이렇게 안 살아. 내가 이제껏 참아온 세월만 해도 30년이 넘어. 왜 내가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살아야 돼~!! 이제 진짜 이혼할 거야!!     


엄마의 폭탄 선언. 이혼하겠다는 이 말은 100번도 더 넘게 들어온 것 같다. 그놈의 이혼 이혼 소리. 무슨 이혼이 밥 먹여 주나? 들어볼 것도 없이 이.혼.이라는 두 글자에 이제는 치가 떨린다. 지겹다. 그냥 차라리 이혼해 버려!!     




지난 20년 간 엄마의 감정 총알받이가 되어 주었던 나. 아빠와 싸우고 난 다음이면 어김없이 엄마의 하소연은 이혼 투정으로 흘러갔다. 요번에는 그럼, 진짜 이혼하고 싶으면 그래~ 이혼해, 엄마. 그게 엄마의 평생 소원이라면 소원 성취는 해야지. 그래!! 난 혼자만 살 수 있다면 오피스텔 하나 얻어서 니 아빠 없는 데서 편하게 살고 싶어.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근데, 니네 아빠가 퍽이나 이혼해 주겠니? 여태까지 한 번도 이혼해 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아마 분명히 이럴 거다. 나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는다. 나가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들어오는 것은 부자유다. 또 이러면 어떡하니. 아휴. 이번엔 그래도 나갈 거야. 그냥 몸만 나가는 거라도 좋아. 세상 편하고 좋겠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황혼이혼이다 졸혼이다 새로운 말들도 참 많이 만들어졌다. 자식들 힘들어하는 모습 보지 않으려고 힘든 거 꾹꾹 참고 살다가 나이 70이 넘어가니까 온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은 심정 탓이라는 거, 잘 안다. 주변에 이혼했다는 사람도 많아지고 이제는 남한테 손가락질 당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게 어찌 보면 얼마나 반가운 노릇인가. 이름도 그럴듯하게 ‘해 저무는 어스름 즈음에 하는 이혼’, ‘결혼 생활을 졸업하는 것.’ 의미로 지어서 이혼하거나 별거하는 생활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니, 엄마한테 황혼이혼이든 졸혼이든 그 무엇이 됐든 오히려 성취감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반대했던 이유는 오롯이 엄마를 위한 것이었다. 오히려 아빠는 걱정이 덜 되었다. 아빠는 독립적인 성향이 강한 분이기 때문이다. 반면 엄마는 8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일곱 동생을 업어서 키웠지만 희한하게 독립적이지가 않다. 어디까지나 의존적이고 감성적이다. 커가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런 걸까. 구박만 많이 받으며 살아 자기 자신을 위한 유년기, 청소년기가 상실된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동생들 업어서 키우고 농사짓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갔어~~ 하는 푸념에 서린 한(恨)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너무 커버린 탓일까. 이 모든 것들 탓에 엄마는 홀로 있으면 한없이 외로운 존재가 된다. 외로움에 사무쳐 이내 자기 자신이 소멸해 버리고 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이 되고 만다. 누군가에게 관심 받고 역시 당신이 최고야!!라는 칭찬을 받아야 존재감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인데 10평 남짓한 오피스텔에 동그마니 앉아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지금 생각처럼 행복하고 가슴 벅차기만 할 것이냔 말이다.


엄마가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고 혼자서 보내는 시간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찬성했어. 취미가 많은 사람,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기보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래도 찬성했어. 근데 엄 너무 나약하잖아. 이혼이든 졸혼이든 결국은 혼자 자립할 수 있어야 해. 자기 자신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남아도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엄마는 그러지 못할 거잖아. 혼자 있으면 우울증이 도질 거고 우울한 기분이 신세 한탄이 되고 원망이 커져 술을 먹을 거고 그러면 몸이 나빠질 거고 그러면 난 엄마한테 달려가 팔다리를 주물러야 되겠지. 그래, 이런 극단적인 상황보다 행복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겠지. 하지만 그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까. 아마 두세 달이면 동나지 않을까.      


지금 아빠와의 신경전에 져서 억울하고 분하고 엄마 자존심 펼쳐 내지 못해서 성질나는 거 알아. 아빠가 쓸데없이 욱하고 큰 소리로 화내서 엄마 심장이 쪼그라들었고 그렇게 쪼그라든 심장으로 1분 1초를 버티는 게 얼마나 고역스러운지도 알아. 아빠가 심하다는 건 인정하고도 남지. 하지만 엄마, 우리, 현실을 한번 생각해 보자. 엄마의 현실, 엄마가 마주하게 될 현실을.




엄마는 나에게 수백 번 같은 말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단호했다. 이별이 정답이라고 했다. 이별은 곧 행복이라고 했다.      

그래, 엄마의 행복이 딱 한 가지 그거라면, 오케이 알았어. 끝까지 밀어붙여. 지지 말고 끝까지 이기는 싸움을 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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