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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Nov 21. 2022

오랜만의 외출

part2. 밥 한 번 같이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엄마의 폭탄선언은 나한테 미리 얘기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경비원이신 아빠 직업의 특성상 이틀에 한 번은 아침 11시까지 주무시는데 엄마가 출근하기 전 메모지에다 제발 이혼만 해 주면 고맙겠다고, 이렇게 부부 아닌 부부로 살아가는 건 내 남은 인생에 의미 없는 일이라고 진심을 다해서 쪽지를 쓰고는 출근을 하신 거다.      


내가 친정에 가려고 전화를 걸었을 때 엄마는 대뜸 “아빠한테 전화 왔었어?”하고 물었다. “아니, 안 왔는데?” 전화를 걸었을 때 아빠 얘기부터 꺼내는 건 십중팔구 싸웠다는 얘기였다. 하아. 또 올 것이 왔구나. 바로 귀부터 틀어막고 싶은 심정. 그러나 어쩌겠는가. 엄마 보러 간다고 전화했는데 취소할 수도 없고 이미 마음먹은 건 하고야 마는 성미인지라 곧바로 전화를 끊고 친정으로 향했다.      


근심이 쌓인 얼굴은 아니었지만 일단 눈치를 보아하니 뭔가 일은 낸 것 같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엄마와 함께 전에 한 번 가봤던 오리고기 집에 갔다. 대체로 후한 평가를 주지 않는 엄마가 맛있다고 했었던 들깨 수제비도 시켰다. 일단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배를 불리고 얼었던 마음부터 풀어주는 게 중요했다. 오리고기 생고기와 들깨 수제비는 엄마랑 둘이 오손도손 먹어도 맛이 좋았다. 원래 성미가 급하신 분인데 웬일인지 이번에는 말을 아꼈다. 사람 많은 곳에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보따리에 가득 담겨 있는 듯했다.




TV에서 오은영의 <금쪽같은 내 새끼> 재방이 나오고 있었다. 엄마, 나 저거 봤는데에~ 저 아이 심하게 언어폭력 쓰고 엄마랑 선생님들한테 막 대드는 거, 왜 그런 줄 알아? 아니, 몰라~~. 저 아이 아빠가 없거든. 엄마랑 형이랑 둘이 사는데 힘센 아빠 없이 그렇게 셋이 살아가려면 자기라도 힘센 어른이 돼야 엄마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힘센 어른이랑 동등해지려고 세게 심한 욕도 많이 하고 격하게 행동하는 거더라구. 자기 방어하느라고. 근데 걔 엄마가 예전에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 너 이렇게 엄마 힘들게 하면 아빠한테 보낼 수밖에 없다고. 너랑 계속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다고. 엄마는 너무 힘들어서 솔직하게 한 말이었는데 그 아이는 엄청 충격을 받은 거야. 그 얘기 듣고 엄마 안 떠나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그렇 선택한 방법이 힘센 남자가 되는 거였어. 험악하게 굴면 어른처럼 보이는 줄 알고. 너무 불쌍하지 않아?


난 아빠도 그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빠도 어려서 너무 불행하게 살았잖아. 태어나서 엄마 없이, 엄마 얼굴도 모른 채 컸고, 귀머거리벙어리인 아버지 밑에서 얼마나 구박받으며 살았어~. 아버지 사랑을 받기를 했나, 어머니 품에 안겨보길 했나... 인정이라는 거 자체도 받아본 적이 없잖아. 래서 남을 인정하고 사랑도 줄 줄 모르는 거야.

엄마도 동생들 키우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힘들게 살다 시집와서 벙어리 시아버지 밑에서 17년 참고 살고 억울한 거 많지만 그래도 엄만 부모님이 다 계셨잖아. 외할머닌 여태 살아 계시고. 아빠는 부모의 사랑이 뭔지를 아예 모르고 컸다는 거지. 엄마 아빠를 비교하자는 건 아니지만 아빠는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이 너무 없어서 좀 불쌍하다고.


아빠가 욱하고 화내는 것도 스스로 감정 조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 아마 아빠 본인이 그렇게 화내는 게 어느 정도 심한지 모르는 걸 수도 있어. 남 앞에서 기죽지 않고 기세등등하게 보이는 제일 쉬운 방법이 목소리부터 크게 내는 거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생존 수단이 아니었을까.




아빠가 큰소리로 부터 내는 게 싫어서 엄마 마음이 돌아섰다는 건 안 봐도 비디오였기에, 들은 바 아무것도 없어도 아빠 인생과 성격의 조합에 대하여 포석을 깔아 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엄마 아빠와의 말다툼 이야기를 탈곡기가 옥수수를 털어내듯 우수수 털어내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미안하고 무례하지만) 딱 초딩 수준이었다. 집에 밥이 없어서 엄마가 밥 먹으러 나가자고 제안다. 오랜만의, 거의 1년에 한두 번 있는 보기 드문 외출이었다. 아빠는 흔쾌히 수락했고 두 분은 집을 나섰다. 출발은 좋았다. 근데 뭐가 문제였을까? 엄마 아빠의 출발점은 같았으나 도착지 달랐던 것이다. 왓뜨 이런 일이~!! 럴 수가 있나? 식당이 먼 데도 아니고 아파트 앞에서 큰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엄마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기에 앞서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뒤따라 2층으로 올라오는 중이겠지 생각

(늘 그렇듯이 거두절미하고 새침하게) 어디야?

ㅡ(편안하게) 나? 여기 와 있지.

ㅡ(황당한 표정으로) ? 어디이~~?

ㅡ(아직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여기. 숯불갈비집. 초가정.

ㅡ(화를 억누르며) 아니, 거길 왜 가 있어~? 여기로 와야지. 훈장골.

ㅡ(버럭 화를 내며) 뭐?!! 왜 글루 갔어? 나 원!!


THAT’S IT. 이게 다였다. 자리를 떠서 옮긴 사람은 예상외로 아빠였고 아빠는 엄마가 있는 훈장골로 갔다. 아들딸이랑 왔을 때는 고기를 구워 먹었던 곳이었지만 이미 마음이 상한 엄마는 밥이 안 넘어갈 것 같아 갈비탕 두 그릇을 시켰다고 했다. 엄만 체할 것 같아 일부러 꼭꼭 씹으며 천천히 삼켰고 평소대로 아빠는 면을 말아먹듯 후루룩 5분도 채 안 돼서 식사를 마쳤다. 그냥 집에 먼저 가라는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넘기며 아빠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 주었지만 다 먹고는 또 각자 털레털레 집으로 왔다. 갈비탕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수십 그릇의 감정을 낭비한 이었다.




크게 싸운 것도 아니고 중대한 문제도 아니었으며 한 마디로 소통의 부재가 낳은 결과였다. 밥 한 끼 먹겠다고 집을 나선 지 몇 분 만에 이렇게 서로 다른 길로, 다른 식당으로 가리라는 걸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아빠하고 통화를 한 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두 분은 어딘가를 갈 때 서로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이다. 다행히 목적지가 분명한 경우, 예를 들어 이마트에 쌀을 사러 간다면, 서로 다른 길로 간다 해도 이마트 쌀 판매 코너에 도착하면 누가 1등으로 왔건 간에 만날 수는 있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달랐다. 밥 먹으러 가자고만 했지, 식당은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나 것이. 이것이 일차적 문제였다. 평소처럼 너는 너, 나는 나 식으로 각자의 걸음에 따라 서로챙길 마음도 없이 본인이 생각하는 곳으로 갔으니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어찌 알겠는가? 아빠는 우리 식구들이 지난 세월 동안 가장 많이 다녔던 초가정을, 엄마는 최근 들어 몇 번 갔지만 양질의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훈장골을 염두에 두었던 것뿐인데, 서로 표현을 안 했으니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리오!!


어설펐던 이번 외출 이차적인 문제 아빠가 분석한 것처럼 식사 중에 단 한마디 말도 없었다 데 있었다. 평소에도 대화가 없는 부부였기에 바깥에 나가서도 굳이 대화하지 않 건 큰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이미 감정이 어긋나 버린 상태에서 어그러진 감정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노력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분명 아빠는 알고 있었다. 아무런 시도와 노력이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러나 모르면 몰랐지, 알면서도 아무런 제스를 취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빠는 아무 얘기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고 말할 타이밍을 계속 놓친 것, 혹은 일부러 놓친 것이 감정의 골을 깊게 팠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력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겸양의 대화, 화해의 대화, 용서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을 꺼내면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화가 어긋나 버리고 결국은 더 큰 싸움이 되어서 차라리 입틀막하는 게, 그러니까 그냥 덮어버리는 게 현상 유지에 늘 소용이 있는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엄마는 아빠처럼 사태 분석을 잘 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그냥 감정에 치우치는 편? 아빠는 좌뇌형, 엄마는 우뇌형이다. 그리고 매우 수동적인 경향이 있다. 아무 말없이 밥을 먹는 동안에도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아빠가 뭐라도 얘기해 주길 바랬다. 그러나 한 마디 말도 없는 아빠. 기다리다 못해 울화통이 터진다. 끝끝내 엄마도 말하지 않은 것은 자존심이 밥 먹여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 한 마디 꺼냈다가 비난의 화살을 쏘아 던져서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고 또 화살 맞고 부르르 떠는 아빠의 얼굴을 대면하느니 참고 마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분 불화의 근본적 문제는 내가 볼 때 '대화법'이다. 현재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다. 내가 십수 년 전쯤 했던 '나 대화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걸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것이 문제.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며칠 간을 유구무언, 각자도생. 여기서 더 불편한 사람은 늘 엄마. 아빠는 입을 다물면 오히려 편한 성격이지만 엄마는 말하지 못하면 속이 터진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입에 자물쇠가 저절로 채워지고, 말을 꺼내고 싶어도 부르르 떨며 흥분하는 아빠 모습을 상상하면 차라리 입을 봉인해 버리고 말게 된다. 너처럼 조리 있게, 따박따박 따져가며 술술 말할 수만 있다면 한 번 해볼 만도 한데, 난 머리가 나빠서 그게 안 돼..


그래서 엄마 쪽지를 선택한다. 편지보다는 짧지만 간단한 메모보다는 조금 긴 쪽지.

말로 하다가는 의도치 않게 다툼으로 이어지고 꼭 험상궂은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그 순간이 몹시 싫고 두려워서 엄마가 고른 방법쪽지였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최대한 진지하게 담은 그 쪽지를

아빠는 그날 오후에 들고 유히 사라졌고 다음 날에는 달력 뒷면에 적어 놓 답장만을 거실 한 복판놓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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