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다큐멘터리, 오감이 느껴지는 4D텍스트
사진기를 집어 들고 내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이번에는 셔터를 눌렀다.
미끄러져 들어가 사물의 우연 같은 일치점에 맞딱뜨리는 것,
그런 일치점에는 끝이 없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단지 짧은 순간이라도 본질적인 질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일치 덕분이지요...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 새로운 관점과 흥미로움을 더하는 시너지, 글과 사진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시너지를 내고, 생각 전환하기
� 사색적인 글이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관찰자의 시선, 애정어린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휴머니즘
� 단순히 텍스트가 아닌, 시각적인 이미지 뿐만 아니라 오감이 느껴지는 4D 텍스트가 좋은 글이다.
� 독서See너지
▶ 풍속화가이자 화원인 단원 김홍도의 그림 속에는 스토리가 보인다.
▶ 카메라의 탄생으로 주제와 표현이 인간의 심상으로 옮겨간 예술 ex)인상파와 큐비즘
▶ 음악
Photograph_Ed Sheeran
Stay With Me_ASH ISLAND (feat. Skinny Brown)
가족사진_김진호
새로 알게 된 작가와의 첫 만남은 언제나 설렘과 긴장이 교차한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으로 가장 잘 알려진 존 버거와 첫 대면한 책이 바로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이었다. 이 책 이후로 존 버거의 책은 몇 권을 제외하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을 거의 다 찾아 읽을 정도가 됐다. 블로그에 모든 리뷰를 올리진 않았지만, 스피노자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였던 <벤투의 스케치북>도 좋아하는 책이고, 언어에 관심이 많아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그 밖에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A가 X에게> 등 예술 문화 비평부터 소설가, 사진이론가, 다큐멘터리 작가, 에세이스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자신만의 관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관점이나 흥미로움을 더한 주제를 좋아하기에 이 책을 알게 됐을 때 역시, 사진이 되는 글, 글이 되는 사진은 즐거운 상상과 기막힌 발상이라 느껴졌다. 사진이 없는 오로지 글로 쓴 사진.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을 섬세하면서도 묵직하게 담아낸, 그래서 읽는다기보다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사색적인 글이면서 다큐멘터리 같은 관찰자의 시선도 느껴진다. 애정어린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휴머니즘이 작가가 지향하는 삶을 향하고 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포스팅을 일일이 올리지 않은 장소들, 친한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혹은 셀카도 많다. 한때는 카메라를 하루라도 안 갖고 나가는 날이 없을 정도였고, 지금은 휴대폰으로도 충분하니,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은 사진이 한다.
조선의 풍속화가이자 화원이었던 김홍도의 그림 중 씨름은 한 장면만 묘사한 듯 하지만, 각각의 시선을 따라 가다 보면, 이야기가 들어 있다. 놓여 있는 신발을 통해 두 사람의 신분이 다르다는 점, 씨름하는 두 사람의 자세를 통해 누가 이길지 유추해 볼 수도 있고, 엿을 파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프레임 바깥 쪽에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 뿐만 아니라 여러 단서를 통해 단오 즈음 사람들이 모여 앉아 즐거움을 나누는 풍습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 옛 그림 중에는 중첩된 시간을 한 지면에 그대로 옮겨 과거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드러난 풍경화도 있다. 시각적으로는 평면일지라도 머리 속에서는 다차원의 스토리가 엮여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텍스트 없는 사진 역시 카메라가 순간 포착한 평면 속 한 장면이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려는 이의 의도를 바라보면 다채로운 스토리를 읽어 낼 수 있다. 그러니, 거꾸로 이런 사진들을 텍스트로 옮겨 본다면 어떨까. 바로 존 버거가 한 일이다. 글로 사진 찍기. 요즘으로 치면 일상적인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직을 터이지만, 그런 순간들을 텍스트라라는 렌즈로 피사체를 담았다. 인물이나 상황 묘사가 치밀해서 소설을 읽고 있거나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집안에 들어서면 거실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층계가 있다. 첫번째 방이 어렸을 적 앙드레의 키에 맞춰 만든 침실이다. 지금 그 머리맡에는 헤세 소설에 나오는, 눈 속에 있는 <황야의 이리>를 묘사한 그림이 걸려 있다. 내 초상이지. 이리를 향해 머리를 끄덕이면서 앙드레가 농담처럼 말했다. p51
그는 겨울이면 양복 저고리 대신 스웨터 위에 코듀로이 조끼를 입곤했다. 실내외 가릴 것 없이 머리엔 검은 색의 작은 베레모를 마치 사냥모자처럼 눈이 덮이도록 바짝 앞으로 당겨 썼다. 자신이 부리는 암말 비슈처럼 작고 단단한 체구였다. p91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Stay With Me_ASH ISLAND (Feat. Skinny Brown)
좋은 글은 이미지가 상상되는 것이라고 흔히 말한다. 텍스트가 사진이나 영상으로 떠오른다. 나의 경우도 텍스트가 소리로, 영상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재밌어 한다. 어떤 글은 음악이 되고, 어떤 글은 영화가 되기도 하고, 어떤 글은 상상을 불러 일으켜 오감을 자극하는 맛이 나고, 향이 나고, 감촉이 느껴진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다. 시각적인 이미지 뿐만 아니라 오감이 느껴지는 4D 텍스트.
요즘은 AI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예술이라는 영역에서 구분이 안 갈 정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카메라의 등장은 예술가에게 위기였지만, 기회이기도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건 기본이지만, 예술은 심상이나 느낌을 표현하기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모네와 같은 인상파나, 피카소의 큐비즘이 나왔다.
피카소는 완벽하게 대가들처럼 정교한 그림을 그려낼 정도로 기본기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피카소를 알린 것은 이상한 차원의 아이같은 그림들이고, 리얼리티와는 거리가 먼 색감이다. 그 이면에 바로 카메라의 등장이 있었다.
글로 쓴 사진 역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준다. 글과 사진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시너지를 내고, 때론 그 경계를 넘어 생각을 전환하는 것.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잘 썼냐가 아니라, 어떤 발상에서 시작했는지 살펴 보아야 한다. 문명 자체 이전에 문명의 발상지가 중요한 발견이듯 말이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은 생의 한 지점, 누군가를 처음 만난 순간, 함께 식사하던 친구의 움직임 하나하나와 목소리, 그때 그곳 풍경의 색감과 향기까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면서 사진보다 더 세밀하게 묘사한, ‘글로 쓴 사진(포토카피)’이라 이름 붙여진 아름다운 산문집이다. 우리 시대의 지성 존 버거는 ‘포토카피(사진복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수없는 만남 속에서 쉽게 놓치게 되는 감흥과 기억들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잡아내어 때로는 시적으로, 때로는 그림을 그리듯이 절묘하게 펼쳐 놓는다. 이 책은 또한 존 버거가 우리를 위해 마련한 경험의 세트장이기도 하다. 여행을 가서 단 몇 분간 머문 장소를 그리워하고, 혹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을 그리워하고, 한번도 만나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갖는 것은 결국 휴머니즘의 다른 모습이다. 이 깨달음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존 버거는 경험의 세트장을 만들어 독자 각자에게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묘사와 설명만을 통해서 이야기 속 장면이 손에 잡힐 듯 보여준다. 그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누구나 사진을 볼 때처럼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글 속의 인물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나아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출판사 서평 중에서
38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이를테면 사진의 경우 '닮음'이란 없다. 사진에서 그건 질문조차 되지 않는다. 닮음이란 생김새나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같이 두 방향에서의 겨냥이 그림에 포착된 것이리라.
점차 그녀의 얼굴과 비슷하게 되어 갔다.
67
사진기를 집어 들고 내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이번에는 셔터를 눌렀다.
미끄러져 들어가 사물의 우연 같은 일치점에 맞딱뜨리는 것, 그런 일치점에는 끝이 없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단지 짧은 순간이라도 본질적인 질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이 일치 덕분이지요...
111
새로 낼 책에서 과장하지 말게. 지나치게 표현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리얼리스트로 남아 주게.
128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자 작정한다. 자유의지가 생기자마자, 인간들은 필연의 자연법-인과율-에 따라 행동했다. 인간이 만들어 온 모든 얘기들은 따지고 보면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항거인 셈이다.
133
올가, 1993년 10월 5일 화요일자 프랑스 신문에 난 한 장의 사진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당신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말로 된 이 포토카피를 만든다.
143
그날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스방은 세잔이나 피사로처럼 현장에서 사생하는 마지막 화가였다. 스방은 그들처럼 그리지 않는다. 그렇게 해 보려는 시늉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손에 붓을 쥐고 눈을 크게 뜨고 무심히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무심히? 그렇다. 어떤 이유 같은 것은 묻지 않고 무심히 바라보는 것이다. 무심함. 이것이야말로 이 화가들에게서 성인의 자취를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겸손이 전혀 꾸밈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까닭이다.
148
그의 문체는 전설적인 것이 되어 있다. 하지만 문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자. 진정한 문체는 글의 내용과 분리될 수 없다. 문체는 그렇게 쓰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인 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문체는 글을 쓰고자 할 때 귀기울이게 되는 어떤 내면의 목소리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부사령관의 문체에는 머뭇거림 없는 과감함과 소박함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