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MUSIC 'HEPTAPOD B'
STORY & MUSIC
영화 위로 음악은 흐르고... Original Sound Track
음악과 언어는 닮아있다. 언어의 음절 억양, 단어 억양, 문장 억양과 같은 인토네이션 (intonation)은 마치 음악의 멜로디 라인처럼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음악 역시 시각적인 장면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감정과 상황을 더욱 또렷하게 발굴해서 들려주는 역할을 한다. 시각은 눈을 뜨고 감는 것으로 스스로 선택의 여지가 있지만, 청각은 적어도 안 듣는다는 선택은 할 수 없다. 귀를 막는 것으로는 안 들을 수 없기에 시각적 여백에 음악의 색채는 수채화처럼 물든다.
그렇다면, SF 영화에서 음악은 어떤 역할을 할까? 로맨스나 서정적인 영화에서 음악은 잔잔하게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겠지만, SF라면 긴박함, 박진감을 더해주거나 배경 바깥에서 스토리의 방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지만 상어가 다가오는 것을 관객이 알도록 위험 신호로 울리던 '죠스'의 음악처럼. 이것은 악세서리를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달리 느껴지는 감각과도 유사하다. 악세서리를 치렁치렁하는 것보다 의상 콘셉트와 어울리도록 적재적소에 배치했을 때 품위가 더욱 올라가듯, 영화 속에 음악 역시 장면 위에 얹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잘 배치했을 때 효과가 배가된다. 즉, SF 영화에서 음악은 음악 자체로 뿐만 아니라 음향 효과 (Effect)를 겸하는 셈이다.
ARRIVAL. 컨택트 OST Heptapod B_Composed by Johann Johannsson
헵타포드들이 진정한 문자로서의 필요조건을 충족하는 비선형적 체계를 쓰고 있을 가능성이었다. (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영화 Arrival (컨택트) OST 중 요한 요한슨의 'Heptapod B'.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헵타포드 언어의 기질적인 면이 부각된 음악이다. 반복되는 기계음이 모스 부호처럼 들리기도 하고, 헵타포드 언어의 특징인 반복과 순환, 비선형적 체계가 직관적으로 와닿도록 음악과 소리라는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막스 리히터 (MAX Richiter)의 'On the Nature of Daylight'가 잔잔히 감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면, 요한 요한슨( Johann Johannsson)의 음악은 어딘가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정신없으면서도 SF라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테드 창(Ted Chiang)의 소설 <Story of your life>는 우리나라에는 단편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네 인생의 이야기'로 수록해 번역 출판되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영화 <Arrival>(우리나라에는 '컨택트'로 상영, 조디포스터 주연의 '콘택트'와 다소 헷갈릴 수 있어 이하 원제 Arrival을 사용한다.)이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Arrival (컨택트)의 스토리는 이렇다. 외계 비행 물체가 전 세계 상공에 나타난다. 이 이상한 외계 생명체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알아내야하는 상황. 언어학자 루이스는 물리학자 이안과 함께 외계 생명체의 헵타포드 언어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루이스는 미래를 보기 시작하는데, 사피어 워프 가설처럼 헵타포드 언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비선형적인 언어였기 때문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이란 언어 형식이 생각의 표현 방식 뿐만 아니라 사고와 생각하는 방식과 세계관까지도 바꾼다는 언어학적 가설이다. 즉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적 문법 체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말한다.
페르마의 원리가 적용된 광학에서 극치를 가져야 하는 속성은 시간이야. (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인디언 중에 호피족이 있는데, 이들의 언어에는 시간 개념이 없다고 한다. 사실, 테드 창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헵타포드 언어의 전신을 테드창이 중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에 한자어에 있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그림이나 글자에는 동시성과 영원성이 포함된 경향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는 고대 신화에서 차용한 '자기 꼬리를 먹는 뱀'인 우로보로스(Uroboros)와도 연관성을 갖는다. 순환과 영원을 뜻하는 것으로 헵타포드 언어도 원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니체의 영원 회귀나 불교로 치면 윤회와도 연결될 수 있겠다. 모름지기 해석은 작가 혹은 제작자의 의도와는 별개로 오롯이 관객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각이니 정답은 없겠지만 말이다.
광선은 자신의 정확한 목적지를 알아야 해. 목적지가 다르다면 가장 빠른 경로도 바뀔 테니까. (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처음부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다면 우리는 지름길을 선택할 것이다. 굳이 시간을 들여 빙빙 돌아갈 이유도 여유도 없다. 헵타포드 언어는 바로 이러한 경로를 곧바로 인식하고 선택하게 하는 언어인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자유의지란 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이미 정해진 인생의 경로를 내 마음대로 바꾼다고 해서 내가 다른 곳으로 이탈할 이유도 없다면.
그럼, 이번에는 영화의 원제인 'Arrival'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서 질문해 보자.
1. 우리가 이 생에 온(Arrival) 목적은 무엇일까?
2. New Arrival. 신생아의 의미
3.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도달(Arrival)한 말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헵타포드가 말한 Weapon(무기)은 사실 그들의 언어로는 Present (선물)이라는 뜻이었고, 그건 곧 현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생략된 언어 해독 부분과 과학적 해석을 원작 소설로 읽어 본다면, 소설과 영화는 다른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
"인류의 문자 체계에서 이것과 조금이라도 닮은 것이 있나요?"
"수학의 방정식이나 음악과 무용의 표기법이 있죠.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극히 전문화되어 있어요." (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인류와는 형태(방사 대칭)도, 언어적 체계도 전혀 다른 외계의 세계관. 작가는 알파벳의 서양식 언어 구조를 선형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반면 동양적 언어와 세계관을 헵타포드와 연결지어 고도로 근사한 방식임을 설명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또한 재밌는 것은 소설의 처음과 끝이 시간적으로 맞닿는다.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내가 달성하게 되는 것은 최소화일까, 아니면 최대화일까.(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도달하고자 하는 곳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때 그때 경로를 바꿔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 내부에 장착되고 축적된 기억들은 이미 목적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선택의 기로 앞에서 너무 고민하지 말자. 빛의 속도로 살아가지 못하는 한낱 인간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속도와 방향, 그리고 각자의 이유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책에 나온 표현대로 인생은 '논-제로섬 게임'이니까!
윈-윈 말이야?(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 창)
응, 그래. 그거.
ARRIVAL. 컨택트 OST On the Nature of Daylight'_composed and produced by Max Richter
Arrival 컨택트 영화 소개
[ PRODUCTION NOTE ]
소통의 미학을 표현한 그들의 언어!
놀라운 반전을 향해 달려가는 치밀한 구성!
<컨택트>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언어’였다. 제작진은 원작 소설에서의 언어를 시각적으로 보다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인간의 언어와 연관이 없으면서 추상적인 비주얼을 가진 외계 언어를 창조해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 파트리스 베르메트는 외계 언어의 구조, 단어의 발달과 탄생 과정 등을 담은 사전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맡았던 실력 있는 사운드 디자이너 데이브 화이트헤드는 기묘한 울림이 있는 사운드를 개발해내 외계 언어에 풍부함을 더했다. 극중 언어학자를 연기했던 에이미 아담스는 “아이들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결국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공유하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처럼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영화를 통해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며 경이로움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드니 빌뇌브 감독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모호한 외계 언어처럼 스토리의 배열을 적절히 뒤섞어 영화의 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예상치 못한 플롯의 반전을 이끌어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매우 흥미로운 여정을 함께 하게 될 것”이라던 포레스트 휘태커의 말처럼 관객들은 영화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흥미로운 전개에 시선을 사로잡힐 것이다.
출처 다음 영화
로버트 야니츠 Robert Janitz와 앰퍼샌드(&, ampersand)
2022년, 쾨닉 서울에서 로버트 야니츠의 앰퍼샌드 전시를 보면서 떠올렸던 건 바로 햅타포드 언어였다.
쾨닉 서울에서 열렸던 로버트 야니츠 전시 2022. 3
ELEVEN STUDIES OF EVERYTHING(전시 제목)은부분적으로 분해, 왜곡, 반전된 기회 '&(앰퍼샌드)'와 유사한 형태를 묘사하는 균일한 크기의 작품들과 하나의 설치 작품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열로 이루어진 시리즈이다.
앰퍼샌드-and per se and-는 특별한 종류의 기호로, 다른 문자들의 묶음이며 언어에서 결합 조직으로서 본질을 가지는 접속사이다. 구절 '&'는 그 자체로 단어 and이다'의 변조인 기호 앰퍼샌드는 그와 동시에 라틴어의 et를 나타낸다.
_ Todd von Ammon 글 중에서, 출처 쾨닉 서울
이 앰퍼샌드(&)는 현재는 and(혹은 et)를 뜻하는 기호문자로 쓰이지만, 알파벳 Z 다음으로 27번째 라틴 문자 알파벳으로 인정받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앰퍼샌드에 유독 집중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증이 밀려왔다. 재미있는 단서는 야니츠의 회화적 연구는 오랫동안 텐세그리티의 개념을 탐구해 왔다는 것이었다. 텐세그리티는 장력을 뜻하는 영어단어 'Tension'과 'Structure integrity(구조적 통합)'을 합친 말로, '장력을 이용해 만들어진 안정된 구조체'라고 한다. 건축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인데, 중력을 거스르는 장치로도 통한다. 간단하게 텐트를 생각하면 된다. 텐트의 뼈대가 서로 누르고 당기는 힘을 통해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가볍고 견고한 장치는 바로 이러한 텐세그리티 원리를 이용하는 것. 그래서 교량이나 건축물에 적용하는데, 우리나라의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지붕이나 호주의 브리즈번 쿠릴파 브릿지가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는 물리학에서 벌집이나 비눗방울처럼 장력과 페르마 원리를 적용한 사례들과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여기서 페르마의 원리는 테드 창의 소설 속 문장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내용이다.
페르마의 원리를 빛의 굴절에 관한 가장 단순한 설명으로 간주하다니, 도대체 헵타포드들의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가? 최소나 최대를 자명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지각 작용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네 인생의 이야기_테드창)
뿐만 아니라 물질로부터 공기로 전환해 언어와 소리의 유연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 형태와 단계적인 색면에 음향적 해석까지 가미했다고 한다. 라틴 문자의 부속은 관악기의 형태와 특징이 비슷하므로 길이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는 원리로 음향적인 상상을 진동하고 공명하게 한다. 여기에 다채로운 색채가 음률을 그라데이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