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utiful Oops

실패가 두려워질지도 모를 너에게

by 서린


한국인이라면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삶의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수직선 위 정수들처럼 정확한 시기와 장소까지 정해져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에 가고, 인턴이나 어학연수 같은 것으로 스펙을 쌓고, 졸업할 때쯤 돼서 연봉이 얼마쯤 되는 적당한 회사에 취업을 하고, 서른 살 즈음에 결혼을 해서 수도권의 어느 지역에 안정적인 거처를 두고 늦지 않은 나이에 아이를 갖는 것. 적정 오차 범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경고음처럼 누군가에게든 꼭 한소리 듣게 되는 정해진 루트. 주체적인 삶을 꿈꿨던 나는 결혼을 할 때쯤 내가 지금껏 그 트랙의 한가운데를 충실하게 걸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다른 옵션은 생각하지도 못한 채 눈앞의 평행봉 위를 열심히 걸어왔던 것이다.


평행봉 위에서 내려와 볼까 하는 고민은 생각보다 가볍고 짧게 끝났다. 틀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싶었고 해외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아무에게나 오는 기회는 아니었다. 처음엔 두려움보다 꿈과 희망이 1%쯤은 더 컸다. 내가 망각한 것은 나는 틀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내 주변 사람들도 충실히 트랙을 밟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삶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용기. 그건 그렇게 지속가능한 용기는 아니었다. 한참 동안 나는 마치 그 틀 안에 아직도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의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떨어져 나온 곳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초조함, 외로움과 자괴감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난 나와 비슷한 결정을 한 사람들이 ‘예전에 내가‘라는 말을 쓰지 않는 다는걸 나는 몇 년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이곳에서 ’예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직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에 충실할 줄 모르는 사람만이 그 단어를 입에 담았다. 고작 몇 년 전이었지만 풍경이 다른 곳에서 나의 예전은 추억거리로 삼기에도 퇴색이 심했다.


집착한 적 없는 삶이었음에도 전형이라는 것이 주는 안정에서 벗어난 자리엔 무거운 좌절감이 놓였다. 우울증의 시작은 잦은 과거의 회상이라더니, 시도 때도 없이 지난 실수의 기억들이 머릿속이 들이닥쳤다. 처음엔 죄책감과 자기 비하가, 다음엔 우습게도 자기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문득 나의 과거에 대한 머뭇거림은 쌓아온 자기 연민의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보다 그저 좌절의 이유를 찾아내는데 집착하며 스스로를 측은히 여기는 데 중독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지인들의 카톡에 징징거리는 메시지를 몇 줄 더 얹은 것 외에는.


이 책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에 있는 독서 공간에서 발견한 책이다. <Beautiful Oops>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제목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책이 실수를 이끌어가는 방향 때문이었다. 이 책은 동화책은 아니고 활동지에 더 가까운데, 실수를 했을 때-종이가 찢어졌을 때, 주스를 흘렸을 때, 물감이 번졌을 때- 기회라고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바꿔보라고 제안한다. 이 책은 실수했을 때의 좌절감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대신 실수를 당면하면 고치고, 다음으로 나아간다. 실수를 너무 해서 종이가 떨어졌으면 신문지에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말한다. 실수로 몇 장씩 구멍을 내버렸어도 이렇게 바꾸라고, 얼마나 멋지냐고. 찝찝했던 실수 페이지를 웃으며 다음장으로 넘기게 한다.


책을 읽고서 내 마음 가짐이 바뀔 만큼 이 책에서 큰 감명을 얻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이 책의 귀여운 전환에 아이와 같이 감탄했고 웃었고 그래서 조금 가벼워진 마음이 나를 잠시 심연에서 현실로 끌어올려주었다. 그래, 트랙의 밖으로 나오기로 한 것은 실수도 실패도 아니라고. 여기서 내가 겪고 느낀 것은 자괴감보다 더 나은 인간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설사 정말로 이 모든 것이 실패가 될지언정 지금 현실에서 내가 해야 되는 것은 과거의 선택으로 인한 후회가 아니라 바꾸고, 나아가는 것이라고. 현실감으로 띄워진 공간을 수없이 머릿속에서 굴렸던 주문 같은 말로 채운다. 그리고 나 자신이 새로운 트랙을 찾아 안착할 수 있을 때, 아이들에게 철옹성 같은 기성세대의 트랙에 들어올 것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가 생길 것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그래서 나의 예전을 버리고, 연민을 거두고, 좀 더 반짝이는 눈으로 앞을 바라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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