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고 싶은 것이 많아진 너에게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회사를 그만둔 지 햇수로 3년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지라는 생각은 매일 하지만 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정주부를 죄책감없이 조롱하고 아이들의 서툼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엄마 자격을 운운하는 이 사회가 나에게 엄마 이외의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지도 의문이었다. 경제적 주체로서의 나의 모습이 희미해지는 만큼 세상에서의 나도 점점 작아져갔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서 아이의 순수한 질문에 대한 첫 대답은 깊은 한숨, 그리고 질문 돌리기였다. 글쎄… 너는 뭐가 되고 싶어?
똑같은 질문을 다섯 번쯤 받았을 때 (아이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무심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마음속 깊고 깊은 곳에 있던 아주 작은 내 자아였다. 누군가가 비웃을까봐, 아니 의아해라도 할까봐 숨겨놨던 나의 작은 어릴 적 꿈. 튀어나올 때마다 정 맞아서 모래자갈만큼 깎여버린 그것이 갑자기 이제야 입 밖으로 굴러 나와 나를 상기시켰다. 아이는 자기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화가도, 과학자도, 패션 디자이너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의 열 가지 꿈 중의 하나인 글 쓰는 사람이 나에겐 겨우겨우 골라낸 전부였지만 아이의 원대한 가능성에 밀려 더욱 작고 하찮아졌다. 그럼에도 말로 뱉어진 것은 어떤 실체가 되어서 틈날 때마다 글쓰기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용기가 생기는 어느 날이면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한 자 한 자 적어보는 것이다. 몰래, ‘글 쓰는 사람’이 되어서. 언젠가 누군가도 아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며.
작은 선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은 The Big Adventure of a Little Line이라는 원제목이 글자 수를 초과하여 내가 멋대로 해석해 넣은 것이다. 펜으로 스케치하듯 그린 그림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장자크 상페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아이가 길을 가다가 빨간색의 짧은 선을 줍게 된다. 아이는 그걸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을 모아놓은 곳에 같이 두었다가 곧 그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청소년이 된 아이가 다시 선을 발견하고,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노는 중에 짧았던 선은 점점 길이가 길어진다. 함께 여러 가지를 그려내고, 만들어내고,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선의 길이가 길어지는 만큼 아이도 나이를 먹게 되고 어느새 할아버지가 된 아이는 평생을 함께한 이 선의 끄트머리를 조금 잘라낸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잘라낸 선을 떨어뜨리고, 우연히 뒤를 걸어오던 여자 아이가 빨간색의 짧은 선을 줍게 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쩐지 부러움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선은 꿈이었다. 아이는 평생 동안 꿈을 좇아온 사람이었고, 기다란 선을 자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성공한 장인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삶에서 닥친 어려움을 꿈을 가졌기 때문에 이겨냈고, 꿈이 아이의 삶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라면 당연스럽게 생각했을 꿈에 대한 열정으로 충일한 삶 같은 건 사실 특별한 소수만 누리는 특권이라는 것을, 그 씁쓸한 박탈감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동화책을 읽으면서까지 자존감을 박살 내는 스스로를 원망하면서도 그 할아버지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여 후배 양성까지 하는 멋진 인간’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취미 삼아 해볼까 싶어서 trial class로 그림을 그리고 온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내 그림을 보고 너무 자랑스러워하며 스카치테이프로 그림을 벽에 붙이고 <작가명: 엄마>라는 부끄러운 포스트잇까지 써서 붙여놓았다. 초보자가 그린 그림이니 당연히 얼룩덜룩 어색함 투성이었는데 아이는 자기도 엄마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오랜만에 도화지며 물감을 꺼내 꽤 오랜 시간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보는데 그제야 할아버지가 장인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맘속에 꿈을 품으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사람’을 맘속에 품어뒀다가 자존감이 바닥을 친 후에야 겨우 들여다보며 틈틈이 한 글자씩 적어보는 나처럼. 열등감일지 뭔지 모를 이 복잡하게 꼬인 감정을 한 편의 완성된 글로 해소하는 나처럼 말이다. 내가 이 작은 불씨를 유지하며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이에게 남겨주는 ‘잘라낸 끄트머리’ 일런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이의 마음속에 씨앗으로 심어져 아이는 평생을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을 잊지 않고 추구하며 자라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