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c and Bird

상대와의 다름을 인식하기 시작한 너에게

by 서린



편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이가 생기고 나서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는 언행이다. 특히 사람을 직업으로 불러야 할 때 쓰는 호칭에 대해서 가장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예를 들면 경찰 아저씨, 스튜어디스 이모 등 직업에 아저씨나 아줌마(이모)와 같은 구체적인 성별의 단어를 붙이는 대신 선생님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하거나, 사회적으로 경시되기 쉬운 직업군의 사람을 칭할 때 역시나 아저씨 같은 단어를 쓰기보단 그 직업의 명칭으로 부르고 존칭을 쓰려고 의식하는 것 등의 노력이다. 아이에게 성별로 인한 직업의 한계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고, 직업으로 사람을 무심결에 판단하지 않도록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는 동안 수없이 들어온 말들에 이미 뿌리 박혀버린 내 인식은 의식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아이에겐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타인을 향한 존중이 자연스러운 인성으로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아이가 사회에서 듣는 말까지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다. 편견이라는 것은 흰 물감에 떨어뜨린 유색 물감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한번 듣거나 알아버리면 대상에게서 그 이미지를 쉽사리 지우기 어렵다. 내가 그래도 통상적인 사회의 호칭을 거슬러가며 계속해서 ‘선생님’을 고수하는 것은, 대상을 계속 프레임이 씌워진 호칭으로 부르는 것은 부를 때마다 물감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행위나 다름없으니 편견의 채도라도 좀 낮춰보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지내게 되면서는 호칭과 더불어 인종이나 나라에 대한 언급을 할 때 최대한 이미지를 말하지 않으려 신경 쓴다. 아이가 친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떠한 선입견이 먼저 개입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편견의 발생은 부모의 언어라고 나는 강하게 믿는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Croc and bird>은 사실 편견에 관한 책은 아니다. 우연히 가까이 놓여있던 아기새와 아기악어가 알을 깨고 나온다. 먼저 나온 아기새에게 아기악어가 묻는다 “우리는 뭘 먹지?” 아기새는 대답한다 “입을 벌리면 먹이가 올 거야” 둘은 한참을 입을 벌리고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기악어는 배고픔을 참다못해 이것저것 되는대로 사냥과 채집을 해온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형제로 여기며 서로의 본능에 기대 함께 배를 채우고, 노래를 부르고, 지낼 곳을 만들며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간다. 그러다가 평소보다 조금 더 나아가본 어느 날, 새와 악어가 사는 숲을 발견하게 되며 둘은 그제야 자신들이 형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순리인 듯 그들은 안녕을 고하고 새는 새들이 있는 나무로, 악어는 악어들이 있는 늪으로 향하며 원래 그들이 살았어야 하는 삶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그렇지만 성장하는 동안 둘만이 쌓아온 생활방식은 원래의 새와 악어 무리에서 이상하고 불쾌한 취급을 받으며 배척당하는데,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던 새와 악어는 서로를 찾아 나서고 결국 서로의 품에서 잠이 들게 된다.



책 뒷면에는 이 사랑스러운 새와 악어의 이야기가 가족과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읽을 때마다 편견 없이 쌓은 우정의 고귀함에 집중해서 생각하게 된다. 서로를 ‘새’로, ‘악어’로 보지 않고 존재 자체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brotherhood(그들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brother라고 부른다)와 그들이 속한 사회의 평가 잣대에 흔들리지 않고 우정을, 그리고 그들이 쌓아온 삶의 방식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 그런 것들의 뭉클함과 더불어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중 어딘가에서 들은 말로 인해, 그 사람의 배경으로 인해, 어떤 형식으로든 개입된 편견으로 인해 쉽게 단정 지어버린 인연들에 대한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떠올라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찌르르한 마음이 드는 것 아닐까 싶다. 그 감정엔 나의 태도에 대한 후회가 가장 커서, 아이는 편견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사람을 존재 자체로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회적인 편견이 들어간 단어를 쓰지 않는 것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기주 작가는 <보편의 단어>에서 편견은 “눈앞에 있는 대상을 빨리 판단하고 상황을 쉽게 확정 짓고 싶어서 머릿속 편견의 길로 빠르게 내달리며 치우친 생각을 강화하는 심리적 지름길“이라고 정의했는데, 유년 시절부터 편견을 피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사회에 나가 그 지름길로 가고 싶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이건 아니라는 어색함이 아이를 한번 멈춰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한번 해 본다.



뭐.. 사실 아이들은 상대가 자신과 좋아하는 게 비슷하고 마음이 잘 맞으면 같이 잘 논다. 아이가 한번 인도인인 친구를 보며 “저 친구는 선크림을 안 발랐나 봐, 까맣게 탄 걸 보면”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피부색 같은 건 그냥 선크림을 바르냐 안 바르냐 정도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내 노력은 아이들의 순수한 시선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편견으로 점철된 스스로를 자정 시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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