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별을 앞둔 너에게
시절인연이란 단어는 그 단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책장을 촤르륵 넘기듯 내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본래 의미는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불교용어라고 하지만 시절이란 단어 때문인지 지나간 한 시절의 과거 인연들을 지칭하는 의미로 더 쓰이는 듯하다.
인생에는 새로운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단계들이 있고 각 관계의 시작과 끝과 깊이가 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정해진다. 학창 시절의 친했던 친구가 사회에 나와서까지 인연이 이어지기 어렵고, 결혼 전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그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시절인연에는 그렇게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지나가버린 인연들을 돌아봤을 때의 아련함 또한 묻어있다. 나이를 먹으며 그 단계 단계들을 몇 번씩 지나가다 보니 점차 그 씁쓸함을 받아들이는데 품이 덜 드는 듯하지만 나에게도 어린 시절의 첫 이별은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지금도 이별의 순간에는 쿡쿡 찔려오는데, 삶에서 처음 이별을 인식하게 되는 그 첫 순간은 얼마나 큰 충격일까.
낯설고 예민했던 시간들이 흐르고 더 이상 더위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자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해가 다가왔다. 서점에서 아이들의 예정된 이별을 이야기하면서 아이 친구의 엄마가 Cori Doerrfeld의 Say Goodbye, Say Hello 책을 소개해주었다. 이 책에서 모든 Goodbye는 새로운 Hello로 이어진다. 스쿨버스 타기 전 엄마와의 bye가 학교에서 친구와의 hello로 이어지고, 눈사람과의 bye가 신나게 첨벙일 수 있는 물웅덩이와의 hello로 이어지는 것처럼. 스텔라와 찰리는 즐거운 일상들을 보내며 매일 hello가 기약되어 있는 작별인사로 헤어지지만 어느 순간 영원할 것 같은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우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인 것 같은 이번 bye는 어떤 hello로 이어지게 될까?
스포일러(?)지만 스텔라는 찰리와 이별한 후 새로 이사 온 아이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스텔라와 찰리는 서로 계속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간다. 작별인사를 했다고 해서 그동안 둘이 쌓아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너희가 함께 보내는 지금 이 시간이라는 것. 그 안에서 아이가 겪는 우정과 갈등과 사랑과 그 모든 것들이 네 안에 쌓이고 있는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아이는 이별로 인한 슬픔과 극복을 위한 노력, 시간에 따라 사그러가는 우정과 그에 따른 서운함까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관계가 지속되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처럼 모든 goodbye는 새로운 hello로 연결된다는 걸 아이가 알고 있다면 슬픔에,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거기서 내 몫은 지금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나중에 옆에서 같이 추억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아이의 첫 번째 헤어짐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인간관계가 중요한 건 관계 자체보다 너라는 사람을 만들어가기 위함이라는 걸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패트릭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작가는 동료 경비원들, 관람객들과의 짧은 소통을 경험하며 스스로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깨닫는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의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
내가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도 결국 이런 것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가며 네가 너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관계의 끝맺음에 대한 슬픔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압박감을 동시에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자신을 단단하게 지켜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