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죽음에 대해 질문해 올 너에게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이 있다.
나의 조부모님들은 나의 학창 시절에 모두 세상을 떠나셨다. ‘학창 시절’이라고만 하면 짧은 시기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대략 15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그들의 죽음을 대면하는 나의 모습은 자라난 키나 변한 외모만큼 매번 달랐다. 죽음 자체에 대한 낯섦이 주가 되기도 하고, 친절한 줄 알았던 친척들의 적나라한 이기심에 치를 떨기도 하고,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반성에 휩싸이기도 하고, 엄마의 아이 같은 울음에 몸 둘 바를 모르기도 했다. 그 사이에 예상치 못한 다른 죽음들까지 맞닥뜨리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종종 관 속에 갇히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CSI가 한창 방영되던 시절, 닉이 범인의 함정에 빠져 상자에 갇힌 채 땅 속에 묻히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줘서 막연한 두려움뿐이었던 내 상상에 디테일을 더해줬다. 그 시절 가장 큰 두려움이었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런 것 같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What happens next? (한국어판 제목: 이게 정말 천국일까?)에서는 한 아이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 되어 할아버지의 노트를 발견한다. 슈퍼 N인듯한 할아버지는 자신의 죽음 뒤에 일어날 일들을 상상해 놓았다. 천국은 어떤 모습일지, 천국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지, 자신은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디테일하고 엉뚱한 상상 속에서 아이는 한참 웃다가 문득 노트 밖의 할아버지가 어땠는지 기억한다. 이렇게 재미난 일들을 잔뜩 생각할 정도로 할아버지는 죽음에 초연한 분이셨던가? 어쩌면 할아버지는 너무 두려웠기 때문에 마치 여행을 가는 것처럼 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적어두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할아버지가 상상한 사후의 세계는 귀엽고 유머스럽지만 어쩐지 애잔하고 쓸쓸하다. 아이는 노트를 덮고 할아버지처럼 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적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임을 깨닫는다.
가장 내가 오래 머물렀던 부분은 ‘ways I could keep an eye on people in the living world’이다. 할아버지는 머리 위 떠오른 달로, 우연히 만났지만 괜히 날 빤히 바라보는 아기로, 엄마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과로, 전단지로, 면봉으로, 바람에 날아가는 비닐봉지로 늘 내 곁에 머무른다. 그 형태가 무엇이든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나를 지켜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 사실 자체가 아이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 할아버지를 더 적극적으로 이해해 보려 나서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상실감은 그나마 사랑으로서 치유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아이가 오디오 동화로 신데렐라를 듣고는 “엄마, 하늘에서 보고 계세요?”라는 대사를 따라한 적이 있다. 의미 없이 따라한 것이겠지만듣는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 이후 혼자 남을 아이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동화책 한 권으로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설명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겠지만, 이 책으로 인해 아이가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 좀 더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언젠가 그 존재에 대해 깨달았을 때 내가 그랬듯 무조건적인 공포로 잠 못 이루는 날보다는 그러니까 지금 더 행복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날이 더 많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