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dom of Nothing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너에게

by 서린



차에 타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엄마, 지루해요. 방금 탔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미리 짐작하곤 조금이라도 그 지루한 시간을 줄여보고자 타는 순간 지루함을 표현하는 듯싶다. 아니면 그냥 티니핑이 보고 싶은 마음에 뱉은 말인지도. 의도는 보이지만 순순히 넘어가줄 순 없어서 단호한 얼굴로 말한다. 모든 순간이 재밌고 신날 순 없어.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는 짐짓 충격인 듯한 (마치 어떻게 재미없는 순간이 있을 수 있냐는 듯) 표정을 짓고는 이유를 물었다.


“지루한 순간이 있어야 재밌는 일이 생겼을 때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거야. 대신 심심할 땐 생각을 해, 뭘 하면 재밌을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나, 책에서 읽었던 이야기 같은 걸 생각해도 좋고.”


아이는 정말 생각하는 건지 삐진 건지 잠시 말이 없더니 다시 심심해요, 지루해요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그 시간을 끝말잇기, 수수께끼, 빼빼로 게임 등 온갖 종류의 민속놀이로 채웠다. 가끔 아무 말도 안 하고 싶은 날엔 원하는 영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빠부터 동생까지 모두 참여시켜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낼 때 아이의 눈빛은 사뭇 다르다. 놀이에 온갖 새로운 규칙을 붙여서 도저히 진행이 안되기도 하고, 내가 낸 수수께끼를 앞 좌석에 앉은 아빠에게 똑같이 내서 아빠가 이걸 맞춰야 하는 건지 모르는 척해야 하는 건지 내적 갈등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웃으면서 목적지에 도착한다.




‘The Kingdom of Nothing’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왕국에 사는 왕, 왕비, 공주, 왕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나라에는 밝은 햇빛, 파란 하늘, 쏟아지는 별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왕족(?)이지만 왕관도, 성도 없다. 오죽하면 숨을 수 있는 것이 없어 숨바꼭질조차 불가능한 곳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지 않을 것 또한 없다. 아무것도 없는 왕국에서 아빠인 왕은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나 핸드폰 같은 걸 선물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많은 그의 시간과, 포옹과 뽀뽀, 그리고 간지럼 피우기를 선물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안아주며 말한다. 세상에서 너희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동년배의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유년 시절의 결핍을 평생의 트라우마처럼 안고 살아 아이에게 결핍의 감정을 물려주는 것을 두려워하며 지냈다. 그렇지만 결핍은 어떤 형태로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를 인지하고 대안과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아닌가. 부족함을 채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질적인 보상이지만 너무 위험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부모는 관객이다’에서 저자 박혜윤은 아이를 포함한 온 가족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느낀 경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 아이가 특별해지는 과정은 아이 자체의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부족한 점(휴대폰 없음)을 사람과 접촉하며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고… 그래도 당하는 불편함을 견디는 데에서 생겨났다. 내가 그렇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아이 스스로 그것을 느꼈다. 아이의 자신만만함은 아이가 가진 소유물이나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쳐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무엇이든 견뎌낼 수 있다는 확신에서 온다.“


요즘 같은 시대에 휴대폰의 부재가 불러올 수 있는 수많은 결핍-인간관계에서의 소외감, 정보의 뒤쳐짐, 기타 생활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결핍함을 느끼지 않고 지내는 것이 어쩌면 그 아이의 타고난 성향 때문일수도 있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얼마나 아이와 대화를 충분히 나누는지, 문제에 대해 같이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길 기다려주는지, 자신의 교육 철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지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부모를 신뢰하게 되고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고 자존감을 높여온 것일 수도 있다. 함께 공들여 켜켜이 쌓아온 시간이 아이의 심지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지루함을 없애주려고 핸드폰을 쥐어주는 것이, 남들 다 있는 장난감이 없다고 당장 그걸 사다 주는 것이 아이의 부족감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 The Kingdom of Nothing에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것도 부모의 수많은 사랑의 말과 함께 웃으며 보내는 밀도 높은 시간이 아이들이 지루함 속에서 재미를 찾아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유년기의 결핍은 그 힘과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걸 상기하며 아이의 100번째 “심심해요”를 이겨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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