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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찻집 주인장 Oct 14. 2019

아름답고 무용(無用) 한 것들

[글찻집] 프롤로그 셋.

"내 원체 이리 아름답고 무용(無用) 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것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멎는 곳에서 죽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꿈이오."

                                                                                                            -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김희성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각자의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명품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곱씹어 대사들이  좋았다. 그중 친일 가문이자 조선 최고의 갑부집 3 독자로 일본 유학  귀국하여 한량, 노름꾼으로 살다가 후에 신문사를 세워 독립운동에 동참하였던 김희성(변요한 ) 대사가 특히 좋았다.


아름답다는 심상과 무용한 것들을 동일 선상에 엮어내는 시선으로 자신은 무용하게 죽기를 바랐던 사람. 아마도 작가는 김희성의 목소리를 빌려 시대를 위해 자신의 신념대로 무용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진정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참 매력 있는 캐릭터였다.

출처: TvN 미스터 션샤인

무용(無用) 한 것.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것.


나도 무용한 것들을 퍽이나 좋아한다.

사소하고 시시한 것들, 작고 하찮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 또  그런 사람들.


사소한 것들, 사소한 존재들을 발견하고 알아보았을 때,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것들이 의미 있는 무언가 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소소한 기쁨이 찾아든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들, (누군가에게는) 아무도 아닌 사람들, 무용하다 여김 받는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이 퍽 즐겁다. 그래서 그들이 잊히지 않고 되새겨지도록 이야기를 짜고, 살을 붙이고 색을 입혀 써내려 간다.  



이를테면, 자신을 무용하다 느끼는 사람에게 아직은 스스로 발견하지 못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해 알려준다거나, 스스로 작다 여기는 누군가에게 그 작은 부분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해준다거나,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시간이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다시 보게 한다거나, 무용하다 말하는 외부의 소리를 거절하고 의연하게 갈 길을 가자고 다짐하는 나 자신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일이 지금까지도 즐거웠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즐거울 나만의 놀이이자 취미다.   


크고 화려한 무언가, 이미 주목받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다. 이미 눈에 띄고 유명한 것들은 내가 아니어도 주목해주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나 하나쯤 없다한들 상관없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에게 나 하나는 유일한 전부가 될 수도 있으니 그 편을 택한다. 그리하여 나 또한 사소한 존재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김희성의 말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무용한 것들과 함께 멎는 것도 썩 괜찮을 듯싶다. 아니, 이미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소소하게 살고 있다.


사실 무용(無用)을 말함은 눈에 보이는 당장의 쓸모를 말하는 관점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특별히, 사람에게서 쓸모가 있다, 없다를 찾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 생명을 가진 존재에 힘을 더하는 것들 가운데 무용한 것은 없다. 정작 무용한 건, 생명에게 쓸모를 말하는 자들의 속된 가치관일 따름이다. 무용하다 여겨지는 것들은 무용하게 보려는 시선에게만 그러할 뿐인지 모른다.


무용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사랑하다 보니 어디에서나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자연스레 용도(用途)에 치중하지 않고 용의(用意)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과 만나고 어우러진다. 무용하다 여겨지는 사소한 것들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보자는 꿈을 함께 꾼다. 소소하고 무용한 마음을 모으며 즐거워한다. 참으로 꿈같은 인연이다.




고요한 아침, 한갓 무용한 꿈만으로도 즐거워하는 이들을 떠올리며 책상에 앉았다. 즐겨 마시는 찻잎에 따뜻한 물을 붓고 가만히 기다린다. 작은 창 너머로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의 붉은 가지와 솔잎이 햇살을 받아 한껏 반짝이며 나를 마주한다. 서늘해진 바깥공기가 찻잔을 한 번 식혀주고 차향을 실어주고 지난다. 참으로 아름답고 무용하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참으로 사소한 것들, 거저 주어진 무용한 것들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미 제 몫을 다하는 존재들이 언제나 배경처럼 그 자리에 있어 세상이 허전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보다.  


세상은 달, 별, 꽃, 바람, 웃음, 농담, 뭐 그런 아름다운 것들로 인해서 아름답고, 때로는 살아 숨 쉬며 존재하는 것 외에는 더할 몫이 없는 아름다운 존재들 때문에 살 만하다. 그렇게 무용(無用) 한 것들로 인해 살 만해진다. 오늘도 살 만한 하루의 시작이다.  







글찻집 기획의 변 셋.


[글찻집 : 누구나 다독여지는 공간]

이곳 주인장은 무용하다 여겨지는 시간을 보내며 차갑고 시린 마음으로 견뎌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따뜻하고 밝은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나를 내어 놓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함께 돌보는 법을 배우고 나니 누군가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 졌습니다.


혹시나 누군가 지금 마음 시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언제든지 마음 편히 [글찻집]에 드나들며 온기를 충천하고 밝은 마음, 따뜻한 마음을 꼭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덕분에 오늘도 살만한 하루가 된다는 걸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글찻집]이 작게나마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다음화는 프롤로그 마지막 편 '기획의 변 넷. 차(茶) 한 잔으로 가득 채우는 공간'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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