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tea) 나는 프로젝트'의 프롤로그
(이전 글 '시절 인연(時節因緣)'에 이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 하나가 온 세계를 이렇게까지 흔들어 놓을 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생각에 전혀 불안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다. 사람은 대개 미지의 무언가에 대해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더 크게 가지기 마련이다.
최대한 외출을 자제했다. 미리 정해둔 약속을 취소했고, 직접 만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은 화상 통화로 달랬다. 행동에 제약이 생기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무기력한 마음과 불만이 쌓여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하자.
소중한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이대로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마침, 외출이 줄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현저히 늘어났으니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책상에 앞에 앉아서 차를 내려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차로 무언가를 하면 되겠구나.'
다실을 열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차(tea), 찻잔, 차 관련 소품들이 내 방 한편을 그득히 장식하고 있었다. 다실 사업을 잠정적으로 보류한 마당에 명확한 기약이 없는 일을 위해 이것들을 방 안에 묵혀두기만 하는 건 미련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기회에 다 나눠주고, 좋은 일 한 번 하자.
옛말에는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요즘 상황과는 별로 상관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인심은 없을 때 더 나는 법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같은 코로나 19 상황은 진짜 인심이 드러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평소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나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코로나 19로 예전보다 더 힘들어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그게 무엇이든 한 번 해 보자는 요량으로.
누구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할까 고민하다가, 아기들이 떠올랐다. 혼자서는 제 몸 하나도 거두지 못하는 아기들, 그중에서도 친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기들에게 코로나 19는 더욱 가혹한 상황일 것 같았다. 숨 쉬는 일 말고는 자기 힘으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존재들인데, 부모의 돌봄 대신에 보육 시설에 맡겨진 아기들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평소 관심을 두었던 국내 입양원에 기부를 하기로 했다. 그래, 아기들 분유값을 보태자.
일단 목표는 정했으니, 기부금을 만들 방법은 어떻게든 찾아내면 될 일이었다. 예전부터 직장에서 프로젝트 업무를 주로 맡아 왔고, 익숙한 일이니 이번에도 짧은 프로젝트로 해보면 되지 않겠나. 마음먹은 김에 당장 시작하자며 그날 밤을 새웠다. 토요일 밤, 주말의 여흥을 즐기며 한가로이 차를 마시다가 별안간 벌어진 일이었다.
그렇게 '티(tea) 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