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체스를 한 판 두었다.
기가 막힌 경기였다. 마치 오늘의 배움이 여기로 오기까지, 모든 상황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지난 주말, 친구네 집에 다녀온 아이가 체스를 배워왔다. 흥미를 보이길래 흔쾌히 체스를 사주었다. 나도 기억을 더듬고 규칙을 찾아보며 함께 익혔고, 우리는 체스판을 가방에 넣어 여행길에 올랐다.
조식을 마치고 나오다 리조트 한가운데 놓인 대형 체스판을 발견했다.
“한 판 할까?”
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빠르게 말을 움직였다. 시부모님과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지루하지 않게 얼른 즐기고 싶었다. 반면 남편은 한 수 한 수 오래 고민하며 신중하게 경기에 임했다. 규칙이 서로 명확하지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바득바득 따지고 싶지 않아 남편의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남편은 그 승리가 찜찜했는지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규칙을 다시 확인하며 한 판 더 두자고 했다. 진지하게 머리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체스를 두고 싶어 하는 기색이 분명해 2차전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나는 ‘최선을 다한다’기보다는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는다’는 쪽을 택했다.
결과는 같았다. 또 졌다.
두 번의 패배 뒤에야 내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바로 승부욕이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체스를 꺼냈다. 이번 경기는 달랐다. 첫 수부터 집중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다음 수를 계산했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공격을 이어가자 남편은 방어에 집중했다.
경기 내내 이길 수 있는 판이라고 느꼈다. 방심하지 말자 다짐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여유는 자만으로 이어졌다. 찰나의 실수로 퀸이 잡혔다. 충격이었다. 나는 판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중요한 한 칸을 놓치고 있었다. 퀸을 잃은 뒤에도 경기는 계속되었지만, 흐름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끝까지 버텼고, 끝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왕은 잡혔다.
결과는 나의 패였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채 끝까지 움직이다가, 왕은 결국 쓰러졌다. 정말로 긴장되고, 치열하고, 깊은 경기였다. 그리고 이 한 판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남편은 언제나 게임을 실전처럼 한다. 예전에 미국에서 여러 가족들과 포커를 칠 때도 그랬다. 실제 돈이 걸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의 태도는 늘 진지했다. 나는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놀이인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나는 이기면 불편했고, 이길 것 같으면 물러섰다. 한 사람이 과하게 이기지 않도록 조율하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삶에서도 나는 비슷한 선택을 반복해 왔다. 이기는 상황을 불편해했고, 갈등이 생기기 전 먼저 고개를 숙였다. 끝까지 주장하기보다는 조용히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쌓인 선택들 속에서, 내 의견과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그 태도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 것이 아니라, 서서히 나를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요즘 나는 연습 중이다. 게임에서도, 삶에서도 끝까지 가보는 연습. 이기거나 지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 선택을 끝까지 감당하는 사람이 되는 연습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저런 사람이라고 나를 미리 규정하지 않으려 한다.
체스판 위에서 나는 배웠다.
어떤 순간에는 비숍처럼 움직이고,
어떤 순간에는 나이트처럼 뛰어넘고,
어떤 순간에는 왕처럼 버티고,
어떤 순간에는 퀸처럼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는,
매사에 공격적으로 끝까지 가보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엇보다 경기 마지막에 쉽게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
부끄럽기도 했다.
덧붙여 내가 알고 있던 나로부터 한 걸음 떨어지게 했다.
그 거리만큼,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