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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의지에서 시작된다

by 서린


‘사랑해’


아이와 손잡고 걸을 때, 아이가 내 품을 파고들어 안길 때 저절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온기를 전달받고 그 따듯함과 순간 하나가 된다. 아이들이 나를 필요해서 다가왔을 텐데 이상하게도 따뜻함을 더 크게 받는 쪽은 늘 나다. 이 짧은 순간들이 선물처럼 마음에 불을 지핀다.



사랑이 뭘까?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온도를 느끼는 그 순간들일까. 아니면 한걸음 더 나아가 손을 잡고, 꼬옥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표현하게 하는 행동들일까? 그렇다면 사랑은 감각 그 자체일까 아니면 감각에서 비롯된 감정이나 행동일까?



내가 느끼는 사랑의 한 부분은 분명 감각에서 온다. 감각에서 비롯된 사랑은 수동적이다. 따스한 햇살,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 입안에서 녹는 초콜릿, 노을 지는 핑크빛 하늘, 어떤 물건을 보면서 누군가가 생각날 때, 내 귀를 사로잡는 음악을 들을 때. 나에게 온기를 선사하는 상황이나 사람, 사물들에서 오는 그 찰나의 감각들이 심장을 톡 건드릴 때 나는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요즘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이성의 영역이다. 감각보다는 ‘의지’에 가깝다. 그래서 능동적이다. 마음이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세우는 힘,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서고자 하는 다짐, 마음속 빛 한줄기를 따라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하루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옳다고 믿는 나의 신념들.



예를 들면, 지쳐서 답할 힘도 없던 날에 아이의 떼쓰는 울음 앞에서 간식이나 영상으로 그 순간을 회피하지 않고 이 순간 아이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는 힘. 마음의 동요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밥을 먹고 정리하고 일단 하기로 한 일은 마치고야 마는 의지들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묵묵히 자기 삶을 꾸려가는 의지에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내가 어떤 씨앗인지, 어디로 자라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걸어가는 일. 비바람이 불어도 자라기를 툭하니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 아닐까? 나무와 꽃은 그만둔다 만다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는데 왜 나는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을까? 그럴 때마다 나의 색과 나의 결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겠다며 끝내 주위 환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날이 올 것임을 믿고 의지를 다져본다. 어쩌면 그래서 사랑은 나라는 깊은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미국의 심리학자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 인간이기에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은 감각을 넘어선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의 사랑은 언제나 외부 대상이나 환경에 의존한다. 아이가 품에 안길 때, 반짝이는 것들이 내 눈을 부시게 할 때, 어떤 노래가 마음을 부드럽게 적실 때. 하지만 의지의 사랑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다. 더 나은 미래를 그리며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힘. 그 힘으로 맡은 일이 버거워도 버티게 하고 관계가 흔들려도 다시 마음을 고르게 만든다. 감각보다 오래가고 더 묵직한 사랑이다.


아이가 떼를 써도 참고 기다려보는 것.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겨도 한 번 더 들어주고, 세상이 답답해 보여도 먼 곳의 빛을 향해 오늘 하루를 다시 세우는 것. 순간이 주는 감각에서 저절로 나오는 ‘사랑해’보다도 이런 행동들이 사랑을 더 크게 담고 있는 것 같다.


스캇 펙은 이렇게 덧붙인다.

‘사랑의 느낌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누구에게 집중할 것이지 선택해야 하고, 그를 향해 사랑의 의지를 집중해야 한다. 참사랑은 사랑으로 압도되는 그런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감 있게 심사숙고한 끝에 내리는 결정이다.’


사랑하려는 의지는 결국 나를 키운다. 무언가와 깊이 있게 연결되면 그 안에 좋은 감정뿐만 아니라 불편함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불편함을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내딛는 행동들이 결국 삶을 이룬다. 그렇게 나의 그릇은 조금씩 넓어진다.



삶은 언제나 힘든 순간들을 수반한다. 때론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마주하는 것보다 회피하는 것이 더 쉽다. 하지만 그 순간을 외면하지 않고 지나가겠다는 의지가 나를 단단하게 한다. 그 다짐들이 쌓여 커진 그릇 안에는 믿음이라는 공간이 차오른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믿음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면 사랑의 자리는 넓어진다.

이 것이 바로 삶에 대한 사랑 아닐까?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마주하고도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그 선택.

그 선택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자, 사랑이 지속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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