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막히던 교직 현실 속에서, 교실에서 출발해 교육청과 교육부, 국회까지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건 결코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나처럼 문제를 보고 못 본 척 눈감지 못하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었고, 이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데 공감하는 끈끈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처음 여러 선생님들에게 나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는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낸다는 것이 꽉 조여 있던 마음의 끈을 풀어내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 말을 듣던 선생님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어떻게 견디셨어요, 선생님.... 말도 안 돼요.",
"선생님, 저도 똑같았어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얼어붙어 있던 내 마음을 녹였다.
'아,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 깨달음 이후, 작은 방에서 혼자 울던 유치원 교사는 누군가와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고, 함께 해결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어갔다.
교직 사회는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특히 공립유치원 교사는 수 자체가 적으니, 불합리함을 말하는 사람은 더 적다.
싸우자는 것도, 갈등을 일으키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유아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교실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할 뿐이다.
처음에는 유치원에서 느낀 불편함을 여러 선생님들과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맞아요. 그거 정말 이해 안 되고 힘들어요.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 공감들을 모아 교육청에 전달했고, 그 과정에서 더 크게 깨달았다. 근본적인 구조가 바뀌어야 교실이 바뀐다는 사실을.
그래서 교육청 다음은 교육부로, 그리고 국회로. 더 근본적인 곳에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길을 함께 가겠다고 결심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 혈혈단신으로 필사적으로 애쓰는 동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밤늦게까지 자료를 뒤적이며,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업무를 묵묵히 해내는 모습.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누가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공립유치원 현장을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는 모습.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고함과 비난이 쏟아지는 자리도 피하지 않고 공립유치원 현장의 의견을 꿋꿋이 말하는 모습. 그 장면들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았다.
'내가 이렇게 머뭇거리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
'저분들에게만 이 무거운 짐을 맡겨도 되는 걸까?'
그 질문이 그림자처럼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결국 나는 짐을 함께 지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이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만 해오던 내가,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일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와 에너지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건, 그 길 위에 묵묵히 함께 걷고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 무관심,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난까지. 수없이 흔들렸지만 우리는 서로의 헌신을 보며 다시 일어섰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싶은 순간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했다.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시간을 내준 선생님, 본인 건강에 큰일이 생겼는데도 함께 해준 선생님, 그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애쓰는 모습을 보고 짐을 나눠지겠다고 나서준 선생님들.
이 모든 연대가 있었기에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유치원도 학교다.
교육 정책에서 유치원이 소외되어선 안된다.
유치원은 교육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교육계 안팎에 계속 알려왔다. 그러자 우리의 어려움이 유치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연대의 폭도 넓어졌다.
유치원 교사가 아니어도 우리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함께해 준 선생님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준 학부모님들,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마음을 보태준 시민단체와 그 외에 다양한 사람들까지.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빈틈을 채워줬다. 그 과정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 떠올라 울컥하는 말이 있다.
"선생님이 만들어낸 변화들을 똑똑히 봤어요. 선생님 덕분에 우리가 목소리 낼 수 있었어요. 선생님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선생님 혼자가 아니라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기억해 줘요!"
지쳤던 내게 동료 선생님이 건넨 그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이 나를 다시 세워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혼자라면 절대 해낼 수 없는 일들이 함께라면 가능해진다는 것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도, 혼자 울며 참아왔던 사람도, 절대 혼자가 아니다.
나는 거창한 용기를 낸 것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단지 혼자서 버티던 시간을 멈추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조심스레 건넨 당신의 작은 이야기 하나가 다른 누군가의 용기를 깨울지 모른다. 그렇게 이어진 마음들이 모여 변화를 만든다.
앞으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