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에서 온 초대장

by 세레니티

2023년 서울의 한 선생님이 과도한 민원과 업무 부담 끝에 생을 마감한 이후, 교직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그해 여름부터 국회와 정부청사 주변에서는 교사들이 연이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여러 번 그 자리에 있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생을 마감한 선생님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목소리를 냈다.


그 무렵 국회와 정부는 부랴부랴 움직였다. 교육부는 매주 현장 교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그 과정을 생중계했다. 국회에서는 교권 보호를 위한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었다.

그러던 중 대통령이 직접 청년 교사들과 만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열댓 명의 교사가 간담회에 초청되었고, 나는 그중 유일한 공립유치원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발언자는 유·초·중·고 학교급별로 한두 명씩만 선정된다고 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 앞에서 유치원의 현실을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니.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되고 긴장되는 자리지만 공립유치원 교사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참여를 결심했다. 유치원의 현실을 제대로 전하고 공립유치원 교사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고 싶었다.


3분 남짓한 짧은 발언. 그 시간 안에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까.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었다. 연습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목소리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계속 연습했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유치원 교사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3분이었으니까.


당일 아침, 처음 가보는 대통령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도착하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까다로운 출입 절차, 곳곳의 담당자들, 낯선 공기. 국회나 교육부를 갈 때와는 또 다른 무겁고 비현실적인 긴장감이 감돌았다.


행사 시간이 다가오자, 교육부 인사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자리를 채웠다. 잠시 후 대통령이 입장하자 카메라 셔터 불빛이 눈부시게 깜빡거리고 찰칵 소리가 연신 쏟아졌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 눈앞의 풍경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기자들이 빠져나가자 간담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시작으로 정부부처 관계자들의 인사가 이어졌고 드디어 교사들의 발표 순서가 돌아왔다.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숨을 고르고 준비해 온 말을 꺼냈다.

먼저 이런 자리에 공립유치원 교사가 참여할 수 있어 영광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교권보호 5법 개정으로 그동안 늘 뒤로 밀려 있었던 유치원 교원의 교육활동이 드디어 법적으로 보호받게 된 점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현장에서 실제 힘을 발휘하려면 유치원 교사들과의 꾸준한 소통은 물론 행정·재정적 지원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했다.


늘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는 유아교육과 유치원의 현실,

그리고 법 개정으로 드디어 유치원에도 교권 보호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사실.

그 의미를 세상에 꼭 전하고 싶었다.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걸 다 말할 순 없었지만 그동안 소외됐던 유치원 현장의 목소리를 분명히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그 자리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안 묘한 감정이 가슴 깊은 데서 올라왔다. 스태프들이 테이블을 정리하는 소리 사이로 방금 전까지 이 낯선 공간에서 수많은 유치원 교사들을 대표하여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물론 그 하루의 발언이 유치원 현장을 단번에 바꿔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 공립유치원 교사라는 이름으로 목소리를 냈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변화는 당사자가 움직일 때 시작된다.

그날의 짧은 발언이 물결이 되어 더 많은 이들이 유치원 교사들의 현실을 바라보게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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