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중반, 9:1 경쟁률을 뚫고 공립유치원 임용고시에 합격했다. 발령받은 곳은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동네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다. 드디어 진짜 교사가 된다는 설렘으로 낯섦을 견뎠다.
귀엽고 해맑은 아이들과 동화 같은 교실을 상상했지만,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잔혹동화에 가까웠다. 유치원 교사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물 위의 백조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물밑에서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
나는 처음 물 위에 내던져진, 아직 헤엄치는 법도 모르는 어린 백조였다.
발령 공지가 뜨자,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유치원 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OO초병설유치원에 신규 발령받은 OOO이라고 합니다."
"네."
반기는 인사는 없었다. 대신 신학기 준비를 위해 O일부터 나오라는 건조한 지시만 있었다. 아직 정식 발령일이 열흘도 넘게 남은 상태였다.
첫 출근 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두 시간을 이동해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유치원 현관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손은 땀으로 미끄럽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출근하자마자 받은 첫 업무는, 올해 현장학습 장소를 예약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었다. 새 학기 교실 환경 구성과 교육 계획, 수업 준비, 학급 아이들 파악은 알아서.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저 '어떻게든 일단 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몸을 조였다.
이틀 뒤, 부장 선생님이 내 책상 위에 100페이지가 넘는 작년 학교 안전 계획서를 올려두셨다.
"작년 거니까 이거 보고 다음 주까지 올해 계획서 작성해 오세요."
순간 얼굴이 얼어붙고 숨을 참았다. 안전사고라도 생기면 책임이 큰 문서라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조차 없었다. 전임자는 이미 전보 발령으로 떠났고, 별다른 인수인계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건 공립유치원 교사에게 주어진 수많은 업무와 책임의 시작일 뿐이었다.
신규 공립유치원 교사에게는 적응하는 시간이란 게 없었다. 신학기 준비도, 행정 업무도, 학급 운영도, 수업 계획, 학부모 상담도 모두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교실에서 일어난 모든 일의 책임은 온전히 담임의 몫이었다.
그렇게 나는 정식 발령 전부터 깨달았다. 신규 공립유치원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당장 일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세 학급 규모의 작은 병설유치원이었다. 초등학교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원장과 원감을 겸임했고, 경력 교사 한 분과 나와 같은 신규 선생님 한 명이 근무를 시작했다.
입학식 날, 원장 선생님은 학부모들 앞에서 우리를 소개하며 꽃다발을 건네주셨다.
"어려운 임용고시를 통과한 신규 선생님 두 분입니다.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싱그러운 꽃다발의 향기 너머로, 몇몇 학부모들의 서늘한 불신의 시선이 스쳤다.
며칠 뒤부터 이유 모를 민원들이 쏟아졌다.
"오늘 우리 아이가 등원할 때 선생님이 웃지 않았어요.", "아이가 오늘 쌓기 놀이를 못해서 속상하대요."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유치원이 아닌 교육청으로 접수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교사들의 당황스러움은 더 커진다.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우리 교사들에게 돌아왔다. 누가, 왜, 어떤 이유로 그런 민원을 제기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장학사님은 질책을 담아 우리에게 전달할 뿐이었고, 해결책은 없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하고, 손을 잡고 활동을 이끌면서도 마음 한 편에 늘 긴장이 자리했다. 이유도 알 수 없는 모진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색해졌다. 입학식 날 축하의 꽃다발은 결국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선생님 이름은 OOO이에요. 우리 반 이름은 OO반이에요."
그 말과 함께 첫 교직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들 지도와 수업 준비는 내 일이니 버틸 수 있었지만, 밤낮없이 이어지는 민원과 끝없는 행정 업무는 현실의 벽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조금씩 진짜 공립유치원 교사의 삶을 알아갔다. 울고, 웃고, 실수하고, 견디면서.
돌아보면 첫해의 나는 서툴렀다.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지만, 동시에 더 잘해주지 못해 늘 미안했다. 하지만 그때의 열정과 순수한 마음은 오직 '신규 교사였던 나'만이 줄 수 있었던 선물이었다고 믿는다.
최근 여러 교육청이 신규 교사의 적응을 돕기 위해 '초등교사 인턴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발령 전에 신학기 준비로 출근하면 출장비도 지급한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신규 교사였을 때도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곧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유치원 교사에게 이 제도가 적용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정말 확대될 수는 있을까?'
오늘도 공립유치원 교사들은 조용히, 하지만 치열하게 버티고 있다. 그 발버둥 속에 교육의 진심이 있다면, 언젠가 제도도 따라올 것이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