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답답한 사람이 움직인다

말 꺼낸 사람이 합니다

by 세레니티

내가 교직 3, 4년 차쯤 되던 시절, 나는 너무 답답했다.

내가 꿈꿨던 교직의 모습과는 다른 현실, 끝없이 쏟아지는 행정 업무, 학부모 민원, 교직원 간의 미묘한 갈등까지.

하루하루가 숨이 턱턱 막혔다. 내 경험과 능력으로는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도무지 숨 쉴 틈이 없었다.


그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업무분장 갈등이었다.

유치원에서 교사는 교육의 전 과정을 책임진다. 수업 준비와 연구, 유아 관찰, 학부모 상담, 학급 운영,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행정 업무까지.

그런데 막상 하루를 돌아보면, 정작 '교육'에 집중한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방과후 과정 전담인력이 있음에도, 교사가 방과후 과정에 필요한 물품들을 주문하고, 방과후 과정 행사를 계획하며, 방과후 과정 시간에 발생한 학부모 민원까지 감당했다.

'이 일은 누가 맡는 게 맞을까?' 하는 기본적인 질문조차 유치원에서는 쉽게 꺼내기 어려웠다.


국가 수준 유치원 교육과정은 편성과 운영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교육과정 운영 시간을 조정하려고 해도 현실에서는 벽에 부딪혔다. 교사들은 개정된 교육과정을 더 면밀하게 연구하고, 아이들은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길 바랐다. 그래서 학부모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 교육과정 시간을 30분 조정하는 안을 마련했다. 교육청 지침에도 전혀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부 설득 과정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교직원 간 이해관계, 관리자들의 불안, 눈치와 회유가 뒤엉켜 있었다.


"교육과정 시간 바뀌면 방과 후 전담인력이 아이들 보는 시간이 늘어나잖아요 선생님!"

"그냥 하던 대로 하시지, 왜 바꾸려고 하세요?"

교육적 판단보다는 누가 더 힘든가가 기준이 되어버린 상황.

아이들의 배움보다 어른들의 편의가 더 우선되는 현실이었다.


"선생님 말이 맞는데, 올해는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요?"

"나 다른 유치원으로 이동하고 나서 하지 그래요."

교육적으로 맞는가 보다는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우선인 듯 보였다.

그런 말들이 돌처럼 마음에 쌓였다.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동료들과 만나도 결국은 하소연과 한숨뿐.

"우리만 이렇게 힘든가?"

"다 그래. 우리 언제까지 이 일 할 수 있을까?"

매번 하소연 끝에 남는 공허함과 무력감도 이쯤 되면 지겹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 답답함의 출구는 어디인가'하는 절망적인 질문이 나를 밤늦게까지 잠 못 들게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닐 텐데. 많은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면, 뭔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 밤, 막막한 마음에 무작정 인터넷을 켰다.

'교사 단체', '교사 고충', '교원 상담'.... 여러 단어를 검색했다.

교사들을 위한 여러 단체들이 나왔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망설이던 차에 한 교원단체를 발견했다.

'아 여기에 나 같은 사람들이 있겠구나.'

그 생각 하나로 가입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단지 공감받고 싶었다. 내 어려움을 얘기하고, 같은 경험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런데 내 성향을 알아본 선배 한 분이 말했다.

"선생님 생각을 문서로 정리해 보는 게 어때요? 교육청에 같이 가서 얘기해 봐요."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진짜 행동이 시작됐다. 공립유치원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적어 내려가자, 마치 퍼즐처럼 문제들이 일관성 있게 연결되었다.

그때 확실해졌다.

이건 A 유치원 교사, B 유치원 교사 개인이 무능하고 나약해서 겪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


나는 '답답한 사람이 움직인다'는 신념으로 행동했다. 나처럼 문제점을 그냥 넘기지 않고 움직이는 선생님들을 하나둘 만나 함께하게 되었고, 유치원 교사뿐 아니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도 서로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대했다. 문제가 있으면 원장선생님에게, 안 되면 교육청으로, 그래도 안 되면 교육부로.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 국회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나는 원래부터 프로불편러였다. 비가 많이 오던 날, 버스정류장 근처 공사장에 안전 펜스가 없고 인도에서 인부가 기계로 쇠를 자르고 있었다. 윙윙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연신 튀고, 사람들은 불꽃을 피해 차도로 걸어 다녔다. 놀란 나는 구청에 그 상황을 알렸다. 몇 주 뒤, 같은 도로 공사장 앞에는 안전 인력이 배치되고 시설이 보강됐다. "말하면 바뀌네?" 그때의 뿌듯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 깨달음은 교실로 이어졌다. 유치원 현실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적으로 맞지 않은데 왜 참고 견뎌야 할까? 불편함을 외면하는 것은 아이들의 더 나은 배움을 방치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내 불편함은 더 이상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당사자가 나서야 한다. 답답한 사람이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대신 해결해 주길 기다리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불편함을 느끼고 그걸 바꾸려는 일이 나만의 편안함을 위한 게 아니라면,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용기 내야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과 용기가 쌓여 결국 변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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