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 법을 바꾸기로 결심하다

유치원 교사의 유아교육법 개정 분투기

by 세레니티

프로불편러 유치원 교사는 교실 너머로 나와 움직인다.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 어떤 벽이 있다는 걸,

구조적인 부분을 건드리지 않으면 유치원 현실은 그대로일 거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던 여러 교사들의 비극은 교직 사회를, 나아가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그 이후 교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법과 제도 개선이 추진되었다. 그중 하나가 악성민원을 교사 개인이 감당하지 않고 학교와 교육청이 체계적으로 대응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개정안」이었다. 2024년 11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초·중·고등학교에는 민원 대응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이후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는 관련 체계를 정비하며, 이를 현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유치원만 여전히 멈춰 있다.

유아교육법에는 민원 대응 시스템에 관한 조항이 없고, 악성 민원이 터지면 유치원 교사들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유치원 교사도 교육활동을 보호받고, 아이들 곁에서 온전히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초중등교육법이 이미 개정됐는데, 유아교육법도 그에 맞춰 개정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런데 왜 유치원은 또 제외되는 걸까?

유치원 교사는 교권 보호의 대상이 아닌 건가?

왜 우리는 매번 논의의 변두리에서 시작해야 할까?


답답함에 머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말 꺼낸 사람이 하는 거다."

그 말이 마음에 떠오르자마자 나는 곧장 의안정보시스템을 켰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딱딱한 궁서체의 법조문들이었다. 법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는 평범한 교사에게 법 용어와 입법 과정은 낯설고 어려운 세계였다. 이해하기 위해 읽고 또 읽으며 몇 번이나 모니터를 닫고 싶었는지 모른다.


학생처럼 밑줄을 그으며 읽기도 했다. 유아교육법과 초중등교육법 조항을 한 줄 한 줄 대조하며 색을 달리 표시했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법제처 사이트나 교육부 지침을 뒤져가며 익혔다. 관련 법안과 회의록을 찾아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기관과 단체들은 무엇을 우려했는지 빠뜨리는 것 없이 계속 따라가며 읽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꼭꼭 씹어 삼키듯 읽어가다 보니 비로소 현장의 요구를 법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겠다는 감각이 생겼다.


가장 어려웠던 건 우리의 절박함을 국회에서 통용되는 정책 용어로 바꾸는 일이었다. 민원 사례나 불편함을 감정적으로 늘어놓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유치원의 교육활동 침해 유형을 다시 정리하고, 설문조사 결과를 데이터로 묶었다. 그리고 그것을 '유치원 교육과 운영의 질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문제', '유치원도 초·중등학교와 법적으로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갖고 같은 시스템 속에서 운영될 때 비로소 유아의 권리가 보장된다'라는 논리로 전환하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이 한 편의 설득력 있는 제안서로 형태를 갖춰 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유치원 교사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유치원 정책과 현장은 절대 알아서 바뀌지 않는다.

평범한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제한적이지만, 하나의 문서, 하나의 제안, 하나의 행동들이 쌓이면 결국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단단히 준비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다음 단계는 국회였다.

법 개정 제안서를 들고 국회로 들어가는 일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그 익숙함 속에서도 긴장은 항상 남아 있다. 단단한 국회의원실 철문 앞에 서면 조금 숨이 빨라지고, 손에는 땀이 고인다. 내가 오늘 꼭 전달해야 할 문장들을 다시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그 긴장감 속에서 비로소 유치원 현장과 정책을 잇는 내 역할을 선명하게 실감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유치원 교실을 넘어 국회로 향한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 제안서 한 장에서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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