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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ug 01. 2019

아빠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 7화] 엄마가 일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

 일반적으로 취업을 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적성과 흥미, 일터의 대우, 직업적 전망 등을 따져 본다. 취업 혹은 진로선택을 할 때 도움을 받는 대부분의 심리검사 도구들도 진로가치, 적성, 흥미 등을 위주로 잰다. 하지만, 엄마가 된 여성이 취업을 준비할 땐 이런 요소들보다 더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를 돌보는 문제다. 


 대구에 내려와 재취업을 시도하면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곳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내 일자리를 찾으면서 동시에 아이가 돌봄을 받을 곳을 수소문했다. 아이가 만 3살이 넘었고, 사회성 발달도 필요한 시기라 도우미 이모님이 아닌 어린이집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3월 입학 시즌이 지난 시점에서 빈자리가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아이와 함께 이곳저곳 방문해 상담을 받고, 할 수 있는 것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뿐이었다.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한다는 것 

아이는 다행히도 어린이집에 적응해 갔다. @unsplash


 한 달 이상 대기를 하자 마침내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 아이가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을 돕기 위해 보통 처음 며칠은 엄마가 함께 가 분위기를 익히고, 점차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려가곤 한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겐 나와 함께 있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적응해 혼자 지내는데 내가 교실에 있으면 다른 아이들까지 엄마를 찾게 된다는 이유였다. 


 난생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는 데다, 엄마까지 곁에 없자 아이는 첫날부터 맹렬히 울어댔다. 그렇게 울어댄 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 그 어린이집의 원장 선생님은 아이 울음소리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내게 아이를 다시 안겨줬다. “아이가 너무 울어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많아요.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폐를 끼치는 아이’가 되었고, 나는 아이를 안은 채 펑펑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어린이집에 온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속도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는 낙오자가 됐다. 다행히, 또 다른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고, 그곳에선 엄마와 함께 등원하는 것을 허용했다. 아이는 일주일 동안 나와 함께 어린이집에 머무를 수 있었고,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 실습 선생님이 일대일로 돌보아주었다. 


 하지만, 아이가 적응하는 데 성공하자, ‘어린이 수첩’엔 각종 특이사항들이 적혀왔다. 그중 가장 많이 지적당한 부분은 ‘아이들 다 자는 시간에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왜 모두 같은 시간에 낮잠을 자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이것 때문에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힘들다고 종종 호소했다. 아이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적응’을 요구하는 한국의 교육철학은 만 3살짜리 아이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어쨌든, 아이는 이렇게 사회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난 안정적으로 일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부모 가정 조사서 


 일을 시작하자, 나는 다시 생기를 느꼈다.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가정 밖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를 우울에서 꺼내 주었다. 아이도 곧 개별성을 포기하고, 어린이집 일과에 잘 적응해 갔다. 나는 대구에 내려온지 2년 만에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내 마음속엔 커다란 물음표 하나가 새겨졌다. 정말 이상했다. 나는 혼자 부모가 되지 않았다. 분명 아이에겐 아빠가 있었고 남편은 나와 동등하게 아이에 대해 책임을 진 존재였다. 하지만, 아이를 돌 볼 사람의 명단에 남편은 늘 빠져있었다. 시어머니, 이웃집 아기 엄마, 도우미 이모님, 어린이집 선생님까지 돌봄의 의무를 진 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종종 ‘도와준다’고 표현됐고, 아내가 자신의 꿈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는 남편은 ‘엄마를 도와주는 멋진 아빠’였다. 왜 자신의 아이를 돌보는 것이 도와주는 일인지 도무지 납득가지 않았지만, 모두들 습관처럼 ‘아빠가 잘 도와주네’라고 말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연수강좌에 참여했다. 청소년 인권에 대한 강의였는데 인권위원회 소속의 강사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 강사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의 직장은 집에서 가까웠단다. 그래서 매일 아침 남편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남편이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려왔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닌 처음 몇 달간 강사는 바쁜 일 때문에 유치원에 한 번도 갈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유치원에서 줬다며 종이 한 장을 건넸다. 그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 부모 가정 조사서’


 아이는 당연히 엄마가 돌보는 것이고,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건 엄마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울 때나 해당된다는 편견. 강사는 당장 아이의 유치원에 전화를 했고, ‘성별화를 조장하는 차별적 행위’라고 한바탕 설명을 한 후 사과를 받아냈다고 했다. 강사는 우리 사회에 ‘돌봄’은 여성만의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고 전했다. 나는 공감하고 또 공감했다. 

엄마가 일을 하려면 육아와 가사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unsplash

 

 ‘엄마’만을 위한 육아정책 

     

 ‘아빠의 부재’는 일상뿐 아니라 국가 정책의 전반에서도 느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사에서 각종 육아정책들을 발표했는데 이 정책들은 모두 ‘직장 맘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에 대한 걱정에서 아빠는 쏙 빠져있었다.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전제가 깔린 발언이었다. 나는 이런 전제 자체가 아빠들을 육아에서 배제시키고 엄마들이 홀로 아이를 책임지며 고군분투하는 지금의 현실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육아정책은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부모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호주의 페미니스트 애너벨 크랩은 저서 <아내 가뭄>(동양북스, 2016)에서 페미니즘의 영향 덕분에 사회에서는 여성이 일하고 공부하는 것에 더 이상 토 달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남편은 아내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만, 일하는 여성은 남편과 아이를 돌보고,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면서 시간을 쪼개어 일을 한다. 크랩은 바로 이런 구조가 여전히 ‘유리천정’을 존재하게 하고, 일상에서 여성이 ‘평등하지 않다고’ 느끼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크랩은 페미니즘의 다음 목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아니라, 남성의 가정 진출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사회로 나가는 만큼, 남성도 가정에서 돌봄을 수행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평등해진다고 말이다. <슈퍼우먼은 없다>(새잎, 2017)의 저자 앤 마리 슬로터도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돌봄’이 여성의 것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돌봄’의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대구에 내려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는 느낌과 심한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을 통해 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막아서는 이도 없었다. 분명, 세상은 많이 변했고, 여성들은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됐으며, ‘양성 평등’은 당연한 가치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엔 암묵적인 전제가 있었다. 엄마가 된 여성이 일을 하더라도 가정에서의 돌봄 역할에 절대로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 전제는 아무도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사회와는 다르게 여전히 ‘가부장적 성별화’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가정은 여성의 돌봄 없이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게 뻔했다. 때문에 일하고픈 엄마들은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일을 하면서 다중역할의 피로와 죄 채 감에 시달리거나, 자신의 야망을 포기하거나. 나는 대구에 내려온 뒤 나의 야망을 포기했다 호된 대가를 치른 터였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다중역할의 피로와 심리적 압박을 감당하는 것뿐이었다. 


 * 다음 화는 8월 29일에 업데이트됩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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