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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그 어려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19] 넷플릭스 <중증 외상센터> 

by 주연 Feb 26. 2025

 지난해 연말 전남 무안국제공항서 항공기 사고가 났을 때, 뉴스를 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불에 타 형체가 사라진 비행기 잔해와 사람들의 침통한 표정이 담긴 사진만 봐도 슬픔과 공포가 밀려왔기 때문이다. 재난 현장을 마주하는 건, 간접 경험만으로도 종종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자체가 끔찍한 데다, 재난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음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전한 세상에 대한 믿음마저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늘 재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이들을 존경해 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재난 현장으로 달려가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몸에 흉기가 박힌 채 실려 오거나, 각종 사고로 장기가 심하게 훼손되거나, 목숨이 위태로운 이들이 실려 오는 곳. 매일 트라우마를 남길법한 사건을 접하는 외상센터는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의료인들이 기피하는 곳 중 하나다. 그런데 드라마의 강혁(주지훈)과 그의 팀 재원(추영우)과 장미(하영)는 이 현장에 헌신한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탐구해 보았다.


생명의 나약함을 수용하다


▲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국제평화의사회 소속으로 재난 현장에서 중증 환자를 돌봐온 실력자 강혁이 한국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로 부임한다. 강혁은 항문외과였으나 외상외과로 전과한 재원, 5년간 외상센터를 지켜온 간호사 장미와 함께 위급한 환자들을 돌본다.


 그러나 모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3회와 8회에는 재난 현장이 나온다. 터널 안에서 차들이 추돌하고 버스가 고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대형 사고가 났을 때(3회), 그리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들은 현장으로 달려간다(8회). 이때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망자와 살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분류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생과 사를 가르는 일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을 테다. 응급실에 실려 온 이들 중에도 아무리 노력해도 살릴 수 없는 이들이 있고, 목숨은 건지지만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리는 이들도 있다. 이럴 때마다 외상센터팀은 삶의 유한성과 인간의 나약함에 직면했을 것이다.


 어쩌다 일어나는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울렁이기 마련인데, 일상적으로 생과 사를 오가는 이들을 만나는 중증외상센터 팀. 나는 이들이 생명의 나약함을 직면하고 수용할 수 있었기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니 모든 생명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가고, 그 과정에서 아프고 다칠 수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를 수용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 역시 인정하는 것이기에 무척 두려운 일이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외면한 채, 마치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재난이나 질병,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간다. 다만, 중중외상센터 팀처럼 죽음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를 거부할 수가 없다. 삶의 진실과 매일 같이 마주하면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강혁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는다. 당시 이곳저곳 병원을 옮기다 사망한 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 그는 삶의 유한함과 생명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애도하는 과정을 통해 이를 수용해 냈을 것이다.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가까운 이의 죽음이나 자신의 질병을 마주하고서야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인다. 강혁은 이를 어린 시절 겪어냈고 그래서 더 헌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의미 추구와 의미 발견


▲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아무리 나약한 인간의 운명을 수용했다 해도 매번 감당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생명을 살리려는 노력을 응원해 주지 않는 환경은 더 회의감을 들게 할 것이다.


 헬기가 뜨지 않아 살릴 수 있었던 환자가 식물인간이 됐던 날(6회). 재원은 "우리만 죽자 살자 애쓰면 뭐 해요. 남들은 다 포기하는데"라며 항변한다. 재원은 깊은 회의감에 괴로워한다. 그때 강혁은 재원에게 아버지를 잃은 사연을 들려주며 "개 같이 구르고 엿같이 깨져도 절대 변하지 않을 너만의 이유"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장미도 그를 불러내 "해야 되니까.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어서 하는 것이라고 위로한다.


 이는 이들이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하려 함을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심리학에서 '삶의 의미'는 행동의 이유 혹은 목적으로 이해되는 개념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역할을 한다.


 삶의 의미는 '의미 추구'와 '의미 발견'의 2가지 요인으로 구성되는데,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의미 발견에 이를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의미를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의미 발견으로 이어지지 못하면 더욱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반면,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보다 확고하게 삶의 방향을 잡아가며 안녕감을 느낀다.


 드라마에서 재원은 의미를 추구하는 중이다. 재원은 강혁이 사람을 살리는 모습에 감동받아 외상외과로 전과했지만, 아직 '나만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종종 힘겨워한다. 장미는 5년간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의미를 추구해 왔고, 그 이유를 개인적인 것보다는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당위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강혁은 의미를 개인적인 경험과 통합해 발견한 경우다. 강혁은 병원장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며(8회) 이렇게 말한다.


 "그날 그 의사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골든타임이 지났는데도. 나도 의사가 돼야겠다. 저 사람처럼."


 이는 아버지를 잃은 강혁에게 사람을 살리려는 그 의사의 노력이 큰 위로가 됐음을 시사하는 부분이었다. 강혁은 살리려는 노력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힘이 됨을 알기에 의사가 됐다. 그래서 극한 상황에서도 생명을 구하려는 노력에 회의감을 품지 않는다.


본질적 가치의 추구


▲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중증외상센터>의 한 장면 


 또 하나, 이들이 중중외상센터에 헌신할 수 있었던 건 '본질적 가치'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질적 가치'란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어떤 행위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때 이를 '도구적 가치'라고 부른다.


 중증외상센터 팀은 '생명을 구하는 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의료인으로서의 일 자체가 목적이 되는 셈이다. 이런 가치는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기에 외부 상황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병원에서 찬밥 신세를 당하면서도 헌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병원장 조은(김의성), 기조실장 재훈(김원해), 외과과장 유림(윤경호)은 '도구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에게 의료 행위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적자만 보는 외상센터를 없애려 하고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헬기 수송을 막아선다. 도구적 가치는 인간 내면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이 '돈'을 최우선으로 하는 건 자본주의 사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은 때로는 도구적 가치를 이겨내기도 한다. 유림이 자신의 딸을 살린 강혁에게 감동해 누구보다 열심히 외상센터를 돕게 되고, 강혁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의사가 젊은 시절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 조은이 외상외과를 지원하는 건 마음에 품던 본질적 가치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여러분, 왜 외과 지원했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최전선에 서고 싶어서 아닙니까?"


 마지막 회에서 강혁은 외과학회에 참석해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기 위해 외상외과에 지원해 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는 이를 외면한다. 아마도 이는 '사람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나약함을 직면하는 것은 매우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의미를 추구하고 발견하는 것은 늘 고민하고 성찰해야 함을 뜻한다. 또한,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너무나 유혹적인 것들이 많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갈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백강혁과 같은 인물을 '영웅'이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들이 영웅인 이유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삶의 조건들을 수용하고 추구할 용기를 냈을 뿐이다.


 나약함을  수용하고, 의미를 찾고,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 사실 이 세 가지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우리도 조금씩 용기를 내어보면 어떨까. 주어진 삶의 유한함을 직면하고, 의미를 추구하면서 본질적 가치를 실천하다 보면 우리도 각자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부터 용기를 조금 더 내 봐야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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