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됐다, 이름이 사라졌다.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 3화] 엄마가 된다는 것

by 주연


2007년 9월. 나는 심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다시 느끼는 캠퍼스의 젊은 열정은 소진되었던 나의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어줬다. 나는 함께 입학한 같은 전공의 석사과정생들 중에 세 번째로 나이가 많았고, 과에 딱 세 명뿐인 기혼자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젊은 동기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주 토로했지만, 회사생활도 해보고, 결혼도 한 나는 오히려 안정감 있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부수적 존재’인 것도, 남편과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느낌도 잊을 수 있었다. 오롯한 나 자신이 된 느낌이었다.

동시에 우리 부부는 아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던 대학원에 입학했으니, 그리고 결혼한 지 1년도 넘었으니,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해 10월 중순. 월경 예정일이 며칠 지나서도 소식이 없자, 나는 곧바로 병원에 갔다. 임신테스트기보다 더 빨리 임신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들었기에 무작정 피검사부터 해달라고 했다. 결과는 임신이었다.


임신, 감동적이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경험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결혼도, 공부도, 생명을 잉태하는 일까지도 척척 원하는 시기에 이뤄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남편도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양가 가족들 모두 기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내 몸은 호르몬 변화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아이 심장소리도 듣기 전인 6주 차부터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났고,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게워냈다. 구토를 하고 나면 잠시 동안 속이 편안했지만, 곧 속 쓰림이 밀려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지독한 입덧은 12주가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의사의 예언을 뛰어넘어 20주 차가 될 때까지 계속됐다.


통제할 수 없는 신체 반응들에 나는 무력감을 느꼈고, 임신의 기쁨은 저 멀리 사라져 갔다. 먹어도 안 먹어도 항상 불편한 속 때문에 신경쇠약이 올 지경이었다. 왜 그토록 임신을 원했었는지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이렇게 힘든데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하는 남편이 얄밉기도 했다. 동시에 ‘아기가 이런 마음을 알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미안해하기를 반복하는 날들이었다. 태동이 시작될 무렵에서야 입덧이 멈추었고 비로소 나는 내가 생명을 품었다는 사실을 다시 축복할 수 있었다. 내 몸 안에서 한 생명이 꼬물거리며 함께 있다는 느낌은 정말 신비롭고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점점 배가 부풀어 오르면서 허리도 아프고, 오래 걷지도 못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상태로 몸은 변해가고 있었다. 다행히 학교는 임산부에게 친근한 환경이었다. 교수님들은 수업 중이더라도 언제든 보건실에서 쉬었다 올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특히 막달에 기말고사를 볼 때는 내가 딱딱한 의자가 아닌 푹신한 소파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강의실을 변경해주기도 했다.


무사히 두 번째 학기를 마치고 출산을 보름 앞둔 어느 날. 나는 집에서 거울을 보다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배가 남산 만하게 부풀어 오른 내 몸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이젠 서 있으면 다리에 경련이 나는 듯했고,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고, 어떤 자세로 누워도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보름만 참자. 아이가 나오면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수술실을 나온 순간부터 나는 이름 대신 '엄마'로 불렸다. @unsplash


엄마가 됐다, 이름이 사라졌다


2008년 7월 16일. 자궁근종이 있었기에 의사는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권했었고, 나는 아기를 낳기 위해 분만실이 아닌 수술실에 들어갔다. 딱딱한 수술실 침대에서 온몸이 달달 떨리는 공포를 경험했지만, 날렵해진 몸으로 예쁜 아기를 안고 있는 행복한 내 모습을 그리면서 견뎠다. 잠시 잠이 들었고 깨어났다. 하지만, 공포를 견디게 해 준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극심한 통증이었다. 마치 온 배를 칼로 긋는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이 밀려왔다. 간호사는 그 위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올려놨다. 비명이 절로 나왔다. 링거에 달아 놓은 진통제를 계속 눌러댔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간호사가 아기를 안겨줬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출산 한 산모가 아기를 안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데 나는 아파서 눈물이 났다. 젖을 물려보자는 간호사의 말에 내가 도저히 못 움직이겠다고 하자 아기를 데려온 간호사는 말했다.


“엄마, 엄마가 됐잖아요. 그러니 이 정도는 참고 아기 젖을 물려야 해요”

‘엄마’. 이 단어가 참 어색하게 들렸다. 분명 수술실에 들어갈 땐 “이름이 뭐예요? 송주연 씨 맞죠”라고 물었었는데, 수술실에서 나오자 모든 간호사와 의사들은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소독하고 실밥을 풀 때도 “엄마, 조금 따가워도 참으세요”, 수유하러 오라고 부를 때도 “엄마, 수유하러 오세요”였다. 수유실에서 여러 명의 산모가 함께 수유를 할 때에도 우리는 모두 그냥 ‘엄마’라고 불렸다. 간호사가 “엄마, 이렇게 하면 안 되죠”라고 말하면 여러 명의 엄마들이 일제히 간호사를 바라보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엄마’였을 뿐, 개성을 가진 개인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이름 대신 엄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퇴원 후 집에 돌아와 진짜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엄마’로 불린다는 것은 나 자신의 삶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함을 말이다.


엄마가 된 나는 먹고, 자고, 싸고, 씻는 나의 모든 생리적 욕구를 아기에게 맞춰야만 했다. 처음 몇 달은 아기의 신체리듬에 맞춰 밤에도 2~3시간마다 깨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아기가 5시간 이상 연속 자게 된다는 ‘100일 기적’을 기대하며 버텼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매우 민감한 기질의 아이였고 ‘100일의 기적’과 함께 ‘100일의 낯가림’을 시작했다. 밤에 잠을 조금 더 잘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이에게서 내 몸을 뗄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갈 때도 아이를 아기 띠에 메고 들어갔고, 밥을 먹을 때도 아기 띠에 아기를 메고 서서 먹었다. 민감한 아이의 등 센서 덕분에 아기를 안은 채 자는 날도 많았다. 내게 꿈이 있었다는 것,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 복학할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엄마’였다.


아빠가 됐다, 달라질 건 없다


남편은 달랐다. 그는 아빠가 되었지만, 3일간의 출산 휴가 후 곧바로 출근을 했고, 회식을 포함한 모든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유지했다. 물론, 내가 이전처럼 챙겨주지 못해 불편했을 터이고, 밤에 아기가 자꾸 깨는 바람에 푹 못 잤을 것이며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 못해 피곤했을 것이다. 아빠라는 책임감에 어깨도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정체감이 다른 정체감을 모두 압도해버린 나에 비하면 남편에게 ‘아빠’의 정체감은 기존에 그가 가지고 있던 정체감에 플러스가 된 정도였다.


그래도 남편은 또래 아이를 키우던 나의 이웃들에 비하면 아빠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었다. 일찍 들어오는 날이면 아이의 목욕을 시켰고, 아이가 아무리 보채도 우리와 한 방에서 잤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출산한 이웃과 친구들은 대부분 출산 후부터 남편과 방을 따로 쓴다고 했다.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들이 충분히 쉬어야 다음 날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들이 연속 4시간 자보는 것이 소원인 그 시기에 아빠들은 홀로 편안히 잠을 자며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했던 것이다.


이웃들은 우리 남편을 ‘대단히 가정적인 멋진’ 남자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남편은 같이 잠을 잘뿐, 자다가 깨서 수유를 하는 것도, 젖병을 소독하는 것도 아니었다. 왜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건 ‘대단한’ 일인지 어딘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피곤함은 왜 아무도 돌보아 주지 않는 건지 화가 났다. 아빠의 일에서의 정체감은 그토록 지켜주면서, 왜 엄마는 오로지 ‘엄마’로만 살아야 하는지 부당하게 느껴졌다.


물론,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리학자 라이언과 데시가 삶의 의욕을 갖게 되는 기본 조건으로 명명한 ‘기본 심리 욕구-자율성(스스로 자신을 삶을 가꿔가는 느낌), 유능감(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느낌), 연결감(세상과 연결됐다는 느낌)’조차 충족되지 않는 상황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당시 나는 나의 생리적 욕구조차 자유롭게 처리할 수 없었고(자율성 상실), 엄마로서 무능력하다고 느꼈고(유능감 상실), 아이와 둘이 종일 집에서 지내면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연결감 상실) 있었다. 한숨만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소리를 죽인 채 멍하니 TV를 틀었다. TV에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멍한 상태서 깨어났다.

임신은 커다란 축복이었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힘든 경험이기도 했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연재는 격주로 계속됩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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