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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Oct 09. 2020

가족이 답답할 때 이 드라마 어때요?

코로나 19 가족생활에  필요한 드라마 KBS <최고의 이혼> 

"아니 또 의자를 이렇게 삐딱하게 빼놨네! 식사하고 의자 밀어 넣는 게 그렇게 힘들어?"


또다시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반성 모드'에 들어간다. '왜 난 이런 거 하나 못 넘어가지? 별것도 아닌데 또 날을 세웠네' 다행히 남편은 못 들었는지, 듣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화분 손질에 여념이 없었다. 


코로나 19로 가족이 함께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난 올해 우리 집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간단하게 아침만 먹고 출근했다 점심 저녁 다 먹고 귀가하는 날이 많았던 예전과 달리 올해 남편은 대부분 저녁식사를 집에서 한다. 학교에 가다 말다 하는 아이도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유독 식사시간에 나는 예민해진다. 전에는 몰랐던 남편과 아이의 사소한 습관에 자꾸만 날을 세운다. 


'남'이라면 별로 거슬리지 않았을 일들이 '가족'이기 때문에 거슬리는 현상. 나만 이러는 건지, 남들도 이러는 건지 궁금해지던 찰나, 2년 전 인상 깊게 보았던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이 떠올랐다.


 캐나다 밴쿠버 작은 원룸에서 세 식구가 살던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감정들을 느꼈었다. 가족과 함께 있는 게 숨이 막힌다고 느꼈던 그때,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마음이 꽤 편안해졌었다. 지금 그 편안함이 내게 필요했다. 지난 일주일간 <최고의 이혼>을 정주행 한 이유다.  


   

2018년 방영됐던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 ⓒ KBS


너무 가까우면 더 잘 안 보여요 


 이 드라마는 휘루(배두나)-석무(차태현), 유영(이엘)-장현(손석구) 커플과 이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서로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드라마틱한 사건 대신, 사랑하면서도 매일 다투고 티격 대며, 서로를 의심하기도 하는 보통의 일상이 펼쳐진다. 


 휘루-석무는 결혼 3년 차 커플이다. 이들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깔끔하고 예민한 성격의 석무는 털털하고 빈틈 많은 아내 휘루의 생활습관들이 늘 불만이다. 석무는 소파에 누워 양치를 하고, 화장품 뚜껑을 닫지 않으며, 세면대 물기를 닦을 줄 모르는 휘루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한숨만 내쉰다. 반면 휘루는 자신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잔소리만 늘어놓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하지 않는 석무에게 서운함이 가득 쌓여 있다. 지친 이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혼을 한 후, 이들은 서로를 더 잘 보기 시작한다. 각자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상대방을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자 상대방의 '형체'가 드러난다. 석무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습 대신 자신에게 밝은 기운을 불어넣던 휘루를 본다. 휘루는 석무가 자신을 몰라줬던 이유가 자신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던 것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몰랐음을 깨달아가던 찰나, 휘루의 출판사 대표(이종혁)는 이 상황을 딱 이렇게 정리해준다. 


"너무 가까우면 형체가 잘 안 보여요. 이 정도 떨어져야 보이죠." (21회)


 내게도 너무나 필요한 말이었다. 식구들 셋이 종일 붙어 있는 때면 날이 서다가도, 가끔씩 혼자 있는 날이면 금세 식구들의 온기가 그리워지곤 했다. 문제의 원인은 나 자신이나 남편의 성격 혹은 습관 자체에 있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인해 지나치게 좁아진 가족 간의 거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서로를 못 견뎌하던 석무와 휘루는 이혼을 한 후 거리를 두고 보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 KBS


사람은 누구 때문에 행복해지는 게 아니야 


 반면, 유영-장현 커플은 싸우지 않는다. 유영은 장현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장현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불안해 보이는 이 커플은 휘루-석무 커플과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차츰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알아간다. 


 유영은 어릴 적 바람피운 아버지를 목격하게 한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안고 살아온 인물이다. 자신이 좋아했던 아버지를 '미워하라'라고 요구한 어머니가 더욱 미웠던 유영은 현실과 직면하기를 꺼린다. 그녀는 자신이 장현을 미워하게 될 것이 두려워, 그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돌린다. 어릴 적 잘못을 저지른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미워했던 것과 같은 패턴인 셈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유영은 진심으로 그를 사랑할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을 영국에서 보낸 장현은 유일하게 의지했던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상처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인생을 걸었던 여자 친구로부터도 배신을 당한다. 결국 '사랑하면 버림받는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 장현은 유영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바로 보려 않는다. 대신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한쪽으로부터 버림받았을 때 머물만한 곳을 마련하는 방어적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이런 유영과 장현은 자잘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화해간다. 유영은 분노의 화살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인식하고 장현에게 제대로 된 분노를 터뜨린다. 그리고 어머니와 화해하며 자기 자신의 상처와 선을 긋는다. 유영의 분노를 맞닥뜨린 장현은 자신이 '두려움'에 한 일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는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로 결심한다. 결국 각자 과거의 상처를 직면하고 영향받지 않기로 다짐한 후에야 둘은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유영-장현 커플을 지켜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 때문에 행복해지는 게 아니야"(유영, 29회)라는 진리를. 나는 남편 때문에, 아이 때문에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반대로 가족 때문에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나의 행복을 가족에게 의존하려 하거나,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려 할 때 '날 선 감정'들은 나를 덮쳐올 것이다. 각자가 스스로의 행복을 책임질 때 가족도, 커플도 적절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대체 가족이 뭔데! 옆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지


 반면, 휘루의 동생 마루(김혜준)와 동거인 수경(하윤경)은 '생판' 남이 가족이 된 경우다. 서로 다른 경로로 집을 구해 한 집에 살게 된 이들은 함께 살면서도 서로를 '남'이라고 인식한다. 1회 마루는 수경과 동거가 어떠냐는 휘루의 질문에 "지 맘에 안 든다고 남한테 뭐랄 건 없잖아"라고 쿨하게 말한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 쿨하다 못해 쌀쌀맞아 보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휘루-석무, 유영-장현보다 훨씬 가족다웠다. 이들은 서로의 사생활에 참견하진 않지만, 아프거나 힘들 때 진심으로 함께 하며 서로 힘이 되어준다. 16회 수경이 장폐색으로 수술을 해야 했을 때 수경의 부모는 모른 척한다. 반면 법적인 가족을 찾아야 수술 가능하다는 의사에게 수경은 "대체 가족이 뭔데!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이 가족이지!"라며 울부짖는다. '진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렇게 '남'이지만 법과 피가 정해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이들은 드라마 말미 또 다른 남과 가족이 된다. 이혼한 석무의 누나 석영(윤혜경)과 그 아들(고재원)과 한집에 살게 되는데 이들이 꾸린 공동체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남과 함께 살면서 석영과 아들은 자기 자신을 찾아갔고, 수경과 마루 역시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누린다. 이들의 모습은 피로 시작해 법적인 지위를 획득했다는 이유로 지나친 친밀을 강요하는 '정상가족'보다 '남'임을 전제하고 존중과 배려의 자세로 서로를 대하는 사이에서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남'이었던 이들은 함께 살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진짜 '가족'이 된다. ⓒ KBS


 코로나 19와 함께 지낸 지난 7개월. '사회적 거리두기'는 내게 '사람 간의 심리적 거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끼리는 지나치게 밀착된 반면, 지인이나 친구들과는 1년 가까이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거리가 훅 멀어져 버렸다.


 반대로, 코로나 19로 확진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동경로가 갑자기 나의 일상을 치고 들어온다. 어쩌면 코로나 19 상황에 적응이 된 듯하면서도 불쑥불쑥 우울과 불안이 찾아오는 이유는 그동안 유지해왔던 사람 간의 거리가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고, 때로는 여전히 서로를 미워하며, 그렇게 아귀를 맞춰갑니다. 뭐 가끔 튕겨 나가기도 하겠죠."  


 드라마의 마지막에 휘루는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19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지금 이렇게 서로의 아귀를 가고 있는 중은 아닐까? 밀착된 거리에 숨이 막힌다면, 거리가 멀어진 친구와 지인들이 그립다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긋지긋하다면,  <최고의 이혼>을 정주행 해 보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지키면서 친밀하게 지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품위 있는 대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아니, 굳이 대사를 곱씹을 필요도 없다. 인물들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공감받는' 느낌에 마음이 따뜻해질 테니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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