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리뷰] TV조선 <우리 결혼했어요>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었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은 여전히 드러내고 말하기 힘든 주제이기에, 방송에서 그것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이혼을 전면에 내세운 것 자체가 무척 놀라웠다. 한편으론 이혼에 대해 이제야 좀 솔직해지는 건가 싶은 마음에 반갑기도 했고, 이혼 커플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감도 올라왔다.
이런 마음이 나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신동엽과 김원희는 첫 회 진행에 나서면서 파격적이라는 소회를 밝혔고, 시청자들의 관심 역시 뜨거웠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프로그램이?"라는 놀라움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3회까지 방송됐다. 회차가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놀라움'과 '충격', '호기심'에서 '공감'과 '이해' '안타까움'으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그랬다. 이혼한 부부가 토로하는 사연들에서 나의 현재 결혼생활이 보이는 듯했다.
3회까지의 주인공들인 선우은숙-이영하, 깻잎-고기 커플의 사연에는 결혼해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법한 일상과 감정들이 가득했다. 특히, 이들이 겪는 갈등의 중심에는 평등한 부부관계를 저해하는 결혼제도의 특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속 마음을 나누기 힘든 부부
한때 잉꼬부부로 명성을 날렸던 선우은숙과 이영하 커플. 이혼 후 13년 만에 (별거 기간 포함 15년) 처음으로 둘이서 2박 3일을 지내며 나눈 이들의 대화 속에는 전통적인 젠더 고정관념에 따라 살아온 흔적이 가득했다.
1회 이영하를 만나러 가기 전 선우은숙은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영하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피력한다. 그녀는 전남편을 만나러 가기 전 숍에 들러 머리를 하고, 이영하가 자신이 정성을 들이고 나온 것을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즉, 선우은숙은 이혼 후 전남편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생각하기보다 '전 남편의 반응'을 먼저 생각했던 것이다. 이는 자신을 남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버린, 끊임없이 대상화되는 자리에서 살아온 가부장 사회 속 여성의 모습이었다.
반면, 이영하는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 날보다 더 많아진 지점에서 마음을 털어내고 싶었다"며 전 아내를 만나러 간다. 자신의 마음을 풀고 싶다는 '주체적인' 이유를 밝히는 이영하의 모습은 자기 자신에게 보다 집중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남성의 자리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렇게 만남 전부터 다른 관점을 지난 이들이 2박 3일간 지내는 모습은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과 남성의 위치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줬다. 1회 "내려놓고 내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며 당부하던 선우은숙은 2회 "자기 눈치 보면서 살았던 게 너무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며 솔직한 심경을 토로한다. 결혼 직후부터 임신한 아내보다 자신의 친구들을 더 챙겼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 여성으로서 참고 지내온 세월들을 뒤늦게 토로하는 선우은숙의 모습은 여전히 가부장적인 결혼제도 안에 있는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에 대한 이영하의 반응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감정에 공감하는 대신 화제를 전환하거나 '입에 쥐가 난다'며 대화를 중단하는 그의 모습은 대화하기 어려워했던 '아버지'들을 연상시켰다. 이영하는 마침내 3회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그거는 잘못됐구나"라고 느낀다고 선우은숙의 입장을 헤아려주지만, 또다시 자신의 지인들을 둘만의 공간과 시간에 불러들인다. 그는 "나는 그냥 얘길 안 하는 성격이야"라고 지인들에게 귀띔하면서도 선우은숙에게는 끝내 자신의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전통적 남성성을 내면화하면서 감정표현을 억압해온 남성들의 힘겨움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젊은 세대에게도 예외일 수 없는 '가부장제의 그림자'
이혼 7개월 차인 깻잎-고기 커플은 어떨까? 신세대 부부였던 이들의 모습은 선우은숙과 이영하 커플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남편이었던 고기가 요리를 담당하고, 아내였던 깻잎이 주로 먹는 역할을 하는 점, 먼저 말을 건네고 수다스러울 만큼 감정표현을 하는 고기와 짤막하고 직설적으로 답하는 깻잎의 모습은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들은 분명 이전 세대인 선우은숙, 이영하보다 보다 자기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커플 역시 '가부장제의 그림자'는 피해 갈 수 없었던 듯싶다. 1회 말미 밝혀진 이혼의 큰 이유 중 하나는 며느리였던 깻잎과 시아버지였던 고기의 아버지와의 관계였다. 혼수 문제로 깻잎의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던 고기의 아버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빵 점이야"라며 대놓고 깻잎을 비난한다. 심지어 아이가 옆에 있는데도 엄마인 '깻잎'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아마도 깻잎은 결혼 전부터 혼수를 들먹이며 전통적인 가부장의 권위를 내세우고, 전통적인 며느리와 아내의 역할을 강요했던 시아버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깻잎은 2회 숙소를 방문한 또 다른 '돌싱' 나탈리에게 "결혼생활하면서 힘들었던 게 남편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둘이 싸울 때마다 "내가 혼나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하는 깻잎의 모습은 자유분방해 보이는 젊은 커플에게도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려 드는 가부장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이혼 후 재회한 이들 커플이 보여주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한국 사회에서 결혼생활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어 봄직한 일들이었다. 예능프로그램인데도 몰입도가 높고, 때론 눈물을 찔끔거리게 하는 감동이 함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들은 이런 이유들로 이혼한 커플을 보면서 '우리가 이혼을 하면 어떨까?'라며 상상해보기도 할 것이고, 한편으로는 '이혼하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느끼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프로그램을 보면서 괜스레 남편의 뒷모습이 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들 커플이 전하는 메시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커플들이 겪는 고통은 '평등한 관계'에서 벗어나면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남자 친구-여자 친구의 관계일 때 그토록 솔직하고 편안했던 관계가 결혼 후 불편해지는 것은 아내와 남편이라는 역할이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가 중심 가부장제에 기반한 한국의 결혼 제도 안에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는 평등하고 솔직해지기 힘들다.
"결혼이라는 단어 안에 박혀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았거든. 오빠 눈치 봐줘야 하고. 그게 아예 없으니까 오히려 더 편하게 대할 수 있고 이야기를 해도 기분 덜 나쁘고 안 나쁘고, 그런 게 있어. 되게 편하다 난."
깻잎이 3회 고기에게 건넨 이 말은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결혼제도가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를 변질시키는지를 잘 표현한 부분이었다.
또 하나는 부부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2회 깻잎은 나탈리에게 "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어도 이혼까지 왔을까?"고 털어놓는다. 이혼 6개월 차인 나탈리 역시 "저도 원룸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너무 많이 부딪혔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서로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있을 시간과 공간이 부족했던 것이 관계의 숨통을 막았던 것이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진실이다. 우리가 맺어가는 관계들은 의존과 독립의 사이에서 적정한 균형을 유지해야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부부가 되었다고 해서 '일심동체'일 것을 강조하다 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독립과 자율의 욕구를 억압당하게 된다. 때문에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 해도 홀로 있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커플들은 오랜 결혼생활 속에서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재회한 지 2박 3일 만에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이들이 부부가 아닌 상태에서, 보다 자유롭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혼'이 오히려 둘 사이에 '평등'과 '적당한 거리'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이혼했어요>에 쏠린 뜨거운 관심과 '감동 어린' 반응들은 아마도 '친밀한 가운데에서도 평등하고, 적절한 경계를 유지하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은 우리의 열망이 반영된 것 아닐까. 그 방식은 이혼일 수도 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 혹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 각자에게 맞는 방법은 서로 다를 것이다. 각자가 선택한 방법들은 어떤 것이든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특히, 아픔을 감수하고 선택한 방식이라면 그것은 더더욱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용기 내어 자신들의 경험을 나눠준 출연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부디, 이 프로그램이 '파격적인 예능'으로 흥미를 끄는데 그치지 않고, 시청자 각자가 자신들의 친밀한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그것만이 자신의 사적인 세계를 공개한 출연자들에게 보답하는 동시에 출연자들과 시청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