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Jan 16. 2021

비인간 동물과 인간의 '진정한 사랑'

[TV 리뷰] SBS 4부작 교양 프로그램 <어쩌다 마주친 그 개> 

'자기 자신이나 또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


 저명한 정신분석의 스캇 펙 박사는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개 엄마'가 된 지 6년째. 나는 종종 반려견 은이와 내가 나누는 사랑이 스캇 펙 박사의 기준에 맞는 진정한 사랑일지 아닐지 궁금하곤 했다. 은이와 가족이 된 후부터 나는 참 많이 변했다. 이전에는 잘 몰랐던 동물의 삶과 환경문제에 훨씬 더 민감해졌고 동물과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됐다. 내 삶에 사람들 외에 동물들까지 들어왔으니 나 자신이 확장됐다고 느낀다. 하지만, 스캇 펫 박사는 같은 책에서 반려동물과의 사랑은 '성장'을 가져오지 않으니 진정한 사랑으로 보기에 한계가 있다 주장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리 가족은 은이를 통해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해서도 배우고 있는데 이게 진정한 사랑이 아니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이 오래된 고민에 대한 답을 최근에서야 찾았다. 바로 14일 종영한 SBS <어쩌다 마주친 그 개> 덕분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4회에 걸쳐 상처 입은 개들과 사람이 함께 지내며 서로를 변화시키는 모습을 담은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반려동물과 인간의 사랑은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스캇 펙 박사는 '반려동물과의 사랑'에 대해서는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게 확실했다. 이 프로그램에 담긴 개와 인간의 진정한 사랑의 과정을 살펴본다.


    

개와 사람이 함께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 SBS <어쩌다 마주친 그 개> ⓒ SBS


만남


 시작은 '만남'이었다. 조윤희, 이연복, 티파니, 허경환은 인간에게 상처 받은 개들과 합숙하며 이들에게 좋은 인간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어쩌개 하우스'로 호출된다.


 함께 지낼 공간에 가장 먼저 와 있었던 건, 어미가 사람에게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구조된 백구. 백구는 사람들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시선을 피하며 더 구석으로 숨어든다. 다행히도 출연진들은 이런 백구의 모습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천천히 다가가 손 냄새를 맡게 하는 등 백구가 스스로 마음을 열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백구는 출연진들이 '엄마'를 죽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걸,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고 마음을 연다. 이후, 화상을 입고 길을 배회하다 간신히 구조된 또 다른 백구, 길에서 태어나 구조된 5마리의 아기, 장애를 가진 푸들 '푸딩이'가 이들의 '어쩌개 하우스'에 합류한다.


  만남의 하이라이트는 출연진들이 개들의 사연을 하나씩 알아갈 때였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지닌 개들은 이제 그냥 '개'가 아니다. 사연을 들은 출연진들은 개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파티' '구름' '도도' '레레' '미미' '파파' '솔솔' 그리고 '푸딩'. 이름을 갖게 된 개들은 <나의 비거니즘 만화>에 보선 작가가 적었듯 '한 마리 한 마리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얼굴'을 지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다. 좋아하는 것도, 사람에게 다가오는 방식도, 각자의 성격도 모두 다른 개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듯, 생명 하나하나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으로 그 존재와 만날 수 있는 법이다.


연민과 변화


  이렇게 개와 사람이 아닌 너와 나의 관계가 되면 그 존재에 대한 연민이 싹튼다. 연민은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제 출연진들은 파티, 구름, 도도, 레레, 미미, 파파, 솔솔 그리고 푸딩의 아픔 하나하나에 공감한다.


  '연민'으로 마음이 연결되면 변화가 시작된다. 사람이 두려워 숨어들던 파티의 변화는 무척 극적이었다. 파티는 출연진들과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경계 섞인 눈빛을 거둬들인다. 함께 산책을 하고 놀이를 하는 가운데 점차 활달해져 갔고, '식탐'을 발산하는 등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4회 방송분에서 파티는 '입질'로 자신의 주장까지 하게 됐는데, 출연자들과 그 강도를 조절해가는 모습은 동물과 사람이 소통을 통해 맞춰갈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


  구름이 산책에 성공할 때에는 마음이 뭉클해오기도 했다.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 화상까지 입은 구름에게 집 밖은 아픔을 상기시키는 두려운 곳이다. 하지만, 합숙소를 방문한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출연진들과 신뢰감을 형성한 구름은 마침내 아주 조심스레 숙소 밖 잔디를 밟는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데에는 곁에서 끊임없이 믿음을 주는 존재가 필요함을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뇌질환 때문에 쉽게 불안해하고 빙글빙글 도는 행동을 했던 푸딩이 역시 안아주고, 놀아주고, 산책하고, 마사지해주는 따뜻한 손길을 통해 안정되어 갔다. 선천적 질환조차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따뜻한 손길로 조절해 갈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미를 죽인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파티. 하지만 출연진들과 3박 4일을 보내면서 활달하고 장난기 많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했다. ⓒ SBS


그리고 인간의 성장


  달라진 건 개들만이 아니었다. 돌봄에 서툴기만 했던 허경환은 8마리의 개와 함께 지내면서 돌보는 즐거움을 배워간다. 마지막 회 그는 "언젠가 강아지를 키우게 된다면 저는 꼭 입양을 할 거예요"라고 소감을 밝힌다. 유기견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은 이연복 셰프는 "유기견 센터를 조그만 거 하나라도 차린다면 여기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라며 개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구체화해갔다.


  티파니와 조윤희는 개들과 함께 하면서 마음이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카메라 앞에만 서면 "항상 밝아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는 티파니는 "강아지를 먼저 생각하게 돼서 정말 꾸밈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며 "저 역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자신의 성장을 자각했다. 


  오랫동안 아픈 유기견들을 입양해 돌봐온 조윤희는 개들을 돌면서 자신의 자존감이 향상되었다고 말한다.


 "저는 솔직히 좀 말해서 자존감이 좀 낮은 사람인 것 같아요. 늘 생각하는 게 나는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게 없지? 나는 이렇게 이렇게 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될 때 제 능력에 못 미칠 때 거기서 좌절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근데 이런 제가 유기견들을 도와주면 그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변화되고 새 가족을 찾고 아니면 제가 입양해서 평생 보살펴줄 때 저는 너무 큰 보람을 느껴요."(3회)


 조윤희가 남긴 이 대사는 사람과 동물과의 사랑이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분명한 예였다.


'사랑'은 평등할 때 가능한 것


길에서 태어난 꼬물이들. 도도, 레레. 미미, 파파, 솔솔은 태어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은 아기들이지만 표정도 행동도 성격도 다 다른 존재들이다. ⓒ SBS


 이처럼 <어쩌다 마주친 개>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개별적인 존재로 받아들임으로써 연민을 나누고 상처를 치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시켜줬다. 이는 분명 진정한 사랑임에 틀림없었다. 기억해야 할 건 바로 이런 진정한 사랑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성립된다는 점이다. 현행법의 규정대로 인간과 반려동물이 '주인'과 '소유물'의 관계라면, 이런 사랑과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은이와 지난 6년간 함께 하면서 깨달은 것처럼, 이 프로그램에서 명확히 보여준 것처럼 동물 역시 사람처럼 저마다의 생각과 감정,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존재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를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평등한 관계'로 살아가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동안 인간은 어떻게 동물들을 대해왔을까? 인간이 우월하다는 전제하에 다른 생명들을 함부로 이용하고 착취해도 된다고 믿어온 긴 시간의 흔적은 여전히 세상 곳곳에 남아있다.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나를 감싼 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었다. 이 부끄러움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기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작은 일들을 실천하기로 다짐해본다. 제인 구달이 <희망의 이유>에 적은 다음 구절을 마음에 새기면서 말이다.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그러기를 기대한다). 또한 인간에게 유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다른 형태의 생명들을 무한히 이용할 천부의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는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프로그램 곳곳에 '주인'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좋은 주인 찾아줘야지"와 같은 말은 결국 인간이 개의 주인이라는 말이 된다. 이는 주종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나는 이 개의 주인'이라는 사고가 내면화되면 동물들을 대상화하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즉, 반려동물을 귀여울 땐 예뻐하다 병들거나 돌보기 힘들 땐 버리는 객체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주인' 대신 '가족' 혹은 '보호자'처럼 반려동물과 보다 평등한 관계를 전제한 단어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면 정말 좋겠다.


* 엄밀히 따지면 인간도 동물에 속하기에 인간 외의 동물은 '비인간 동물'이라고 칭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편의상 이 글에서는 '비인간 동물'을 그냥 '동물'이라고 칭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 커플이 알려주는 결혼의 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