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로다시 불거진 아역배우 '정신건강' 논란에 대해서
솔직히 나는 tvN 드라마 <마우스>를 보지 않았다. 피 튀기는 장면에 지나치리만큼 혐오감을 느끼는 나는 이 드라마의 방영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관심의 저편으로 밀어냈다. '사이코패스'라는 설정 자체가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자꾸만 <마우스>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린 아역 배우들을 둘러싼 논쟁들이었다. 지나치게 잔인한 장면을 연기한 아이들의 심리적 건강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였다.
이런 논란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마 시작 전 화면에 '아역 배우들의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촬영했습니다'란 문구까지 삽입됐다는 소식에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어느 정도였기에 이런 문구까지 삽입했던 걸까. 화면은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아 기사들을 찾아봤다. 단순하고 간결한 기사였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웠다.
하지만 이런 반응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 출연 중인 아역배우 김강훈의 어머니는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는 글을 SNS에 올리며 즐겁게 촬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각해보면, 늘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회의 MOU 체결까지 이끌어낸 영화 <도가니>(2011) 이후 아역배우의 심리적 안녕에 대한 논란은 종종 제기되곤 했다.
영화 <귀향>과 드라마 <보고 싶다>에서는 아동 성폭행이, 영화 <곡성>, <이웃사람>에서는 살해장면이, 드라마 <마더> 영화 <미쓰백>에서는 아동 학대가 묘사됐었고 그때마다 시청자들은 '저 아이 괜찮나요?'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대부분 당사자들은 '괜찮다. 잘 지내고 있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도대체 어떤 게 진실인 걸까? 연기를 통한 간접경험이 시청자들의 우려만큼 정신적 외상을 일으키는 걸까? 아니면, 연기는 정말 연기뿐인 걸까?
트라우마는 사건 자체가 아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트라우마'에 대한 정의부터 찾아보았다. 일반적으로 '정신적 외상'을 일컫는 '트라우마'는 정신적 충격을 주는 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정신적 충격'이라는 것이 무척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마음을 다친 아동 청소년을 위한 핸드북>의 저자 리키 그린워드(Ricky Greenwald)는 '사건'이 '정신적 외상'이 되는 요소로 사건의 강도, 경험의 근접성, 개인적으로 느낀 충격 강도, 그리고 사건 후 받은 영향을 꼽는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의 강도'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건의 중대함을 말한다. 예를 들면, 손바닥으로 맞는 것보다 채찍으로 맞는 것이 분명 더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험의 근접성'은 직접 경험하거나 거리상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건일수록, '개인적으로 느낀 충격 강도'는 친밀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일수록 더 충격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 요소인 '사건 후 받은 영향'은 트라우마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 후 어떤 보살핌을 받았는지를 의미한다. 사건을 경험한 후 취해지는 후속 조치들이 그 사건이 정신적 외상으로 남는지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충격의 강도는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그린워드는 질병이 있는 아이들에겐 아주 작은 신체적 위해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으며, 아이들이 느끼는 지리적 근접성은 실제 거리보다는 자신이 자주 가거나,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장소라고 했다. 개인적 관계 역시 심리적 거리를 의미하는데 아이들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죽음이 왕래가 별로 없던 할머니의 죽음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다. 사건 후 받은 영향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최적의 보살핌을 제공했다 생각해도, 그 보살핌을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에 따르면 시청한 장면 자체가 잔혹하다는 것이 트라우마 여부의 기준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화면만 보고는 이 아이가 연기하고 있는 장면에서 어떤 것들을 연상했는지, 어느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지, 연기 후에 어떤 보살핌을 받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따라서 단지 잔인한 장면에 아이가 출연했다고 해서 트라우마를 받았을 거라 예측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촬영 현장엔 스토리가 없다
결국 잔혹한 장면에 대한 연기가 트라우마가 되는지 여부는 실제 촬영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이가 이를 어떻게 지각하는지에 달려 있다 할 수 있다. 2013년 반건호, 김봉석, 황준원, 유희정, 민정원, 곽영숙, 홍민하가 발표한 <배역이 아역 연기자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 : 영화 촬영 현장 및 관계자 면담 중심으로>는 이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한 거의 유일한 논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들은 영화 <이웃사람>의 촬영장을 직접 방문해 아역배우 김새론이 살행당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관찰하고, 아역배우와 그 어머니, 그리고 영화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촬영 현장에서 아역배우가 감정을 지속하는 시간은 매우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관객들이 보는 것과는 달리 영화나 드라마는 장면을 매우 세부적으로 나누어 촬영한다. 게다가 이 촬영 순서는 이야기의 전개 순서가 아닌, 촬영장소나 예산, 배우들의 스케줄 등을 고려해 진행된다. 촬영장에서 아역 배우는 스토리 전체를 상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두 차례의 촬영 현장 방문에서 느낀 점은 아역배우가 무서운 상황을 연기할 때 실제와 유사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겠으나, 장면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촬영하는 영화예술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러한 감정이 지속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아역배우 김새론의 경우, 촬영 개시 전과 종료 후 실시한 심리검사들에서 정서적으로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가 겪는 스트레스 상황 역시 촬영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학교생활, 동생과의 관계 등 보통의 아이들이 겪는 일상의 일들이었다.
아이들의 심리적 유연성
또한 논문에 따르면 아역 배우는 장면과 장면 사이 쉬는 시간이면 곧바로 '아이다운' 모습을 회복하곤 했다. 촬영 현장에서 아역 배우는 촬영하는 순간에는 배역에 몰입했지만, 쉬는 시간이면 여느 아이와 다름없이 장난을 치거나 노는 모습을 보였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아이와 놀아주면서 아이를 배려했고, 특히 가해자 역할의 배우는 촬영이 중단될 때마다 곧바로 아이에게 장난을 걸곤 했는데, 이는 아이가 배역과 현실을 오가는 '심리적 유연성'을 발휘하도록 돕는 요소들이었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연기 강사와 연출가, 성인배우 역시 '아역배우에게 작품 전체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지 않으며, 각 장면에서 공감하는 정도로만 연기를 지도하기 때문에 현실로 돌아오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었다. 이들은 문제는 배역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잘못 이해하는 데서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놀이가 바로 '역할놀이'다. 발달단계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은 '역할놀이'를 통해 현실과 상상의 세계에 다리를 놓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간다. 하지만 역할놀이를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친구들끼리 너는 엄마, 나는 아빠하고 놀다가도 놀이가 끝나면 자연스레 '우리는 친구'라는 현실로 돌아오는 게 아이들 아니었던가. 아이들이 지닌 이런 심리적 유연성은 아역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함으로써 오는 심리적 어려움을 줄여주는 보호요인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런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저자들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영화에서 배역을 연기하는 아역 배우는 배역으로 인한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이나 후유증을 남기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저자들은 아역배우들에게 심리적 어려움을 유발하는 요인은 배역 자체보다는 현실에서 겪는 스트레스들이라고 강조한다. 즉, 학습권과 사생활을 침해받는 것, 또래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 부모의 꿈이 아이에게 투사되어 자신의 인생이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 것 등이 아역 연기자들을 힘들게 하는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저자들은 아역 배우들이 현실에서 학습권과 사생활을 보호받고,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매우 일리 있는 지적이라 느껴졌다. 사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역배우들이 성인이 되어가며 겪는 심리적 문제들은 배역에 따른 트라우마가 아니라 '지나친 관심'과 '제한된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 아니었던가. 어쩌면 '저런 역할을 하다니 쟤 정신적으로 괜찮은 거야?' '저런 역할을 하도록 놔두는 부모는 대체 뭐야?'라는 시청자들의 성급한 판단과 관심이 오히려 아역배우들에게 스트레스가 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잔혹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주관적 경험인 트라우마의 특성상 시청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장면에서 아역 배우는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도 있다. 때문에 촬영 현장에서는 아이가 과몰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촬영과 촬영 중간에 마음껏 아이답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하지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들이 겪는 '진짜 스트레스'다. 어른들의 시각이 담긴 우려보다는 아역배우들이 학습권과 휴식권,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이들의 심리적 안녕감엔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는 걱정과 우려를 넘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정말로 이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원한다면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