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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Jan 14. 2023

#1. 영어만 좋아하는 자퇴하고 싶은 아이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 그 시작


"나 자퇴할래."


이 말 한마디에 우리 집은 발칵 뒤집혔다. 사고뭉치 세 살 터울 오빠와는 다르게 묵묵히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하며 말썽 한 번 안 부리던 착실한 딸내미가 고등학교 입학 1달 만에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중학교 시절 어울리던 여러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입학한 고등학교였다. 교우관계는 좋은 편이었고, 학교 공부도 따라갈 만했다. 스웨터 조끼가 있는 새로 맞춘 고등학교 교복은 너무 예뻤고, 반짝이는  구두는 신을 때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나를 설레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 7시 무렵 0교시를 위해 등교하여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며 오로지 '인 서울' 대학 진학을 위해서 내가 무얼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탐색할 여유 없이 하루하루 닭장에 갇힌 병든 닭마냥 맥없이 생활하는 것이 고단했다.


나의 뜬금없는 자퇴 선언에 부모님은 적잖이 당황하셨다. 는 일반 고등학교 대신 대안학교로 전학을 가 내가 하고 싶은 영어 공부를 하며 해외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당찬 계획을 들이밀었지만 실은 그저 매일 늦게까지 공부를 강요당하는 생활에 지쳐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당시 핫하던 한 팝가수를 계기로 영어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는데, 지구 반대편에 우리와는 다른 파란 눈과 금발의 외모를 한 사람들이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내가 공부를 해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취미로 영어 공부를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중학교 영어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그대로 시험에 나왔고 조금만 공부하면 모두들 상위권의 점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영어를 좋아하고 잘한다는 것을 몰랐다.


자퇴보다는 어떻게든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싶으셨던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서울의 한 유학원에서 고등학교 교환학생 영어능력검사인 SLEP (Secondary Level English Proficiency) 테스트를 게 했다. (이 테스트는 2014년 부로 폐지되고 현재는 ELTiS 라는 시험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후담인데, 부모님은 내가 평소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을 떠올리고 "그래, 안될 게 뻔하지만 어디 시험이라도 쳐 봐라."라는 생각으로 당시 시험을 보게 했다고 한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 전 일이다) 정확한 점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시험 결과는 뜻밖에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합격하고도 남을 뿐만 아니라, 당시 프로그램 주관 재단 기준 고액의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는 성적이었다.


시험이라도 보게 해 주자는 부모님의 계획과는 달리 내 영어 실력은 이미 준비가 된 상태였고, 부모님은 한동안 고민한 끝에 나의 자퇴 선언을 미국 고등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것으로 잠재다.




프로그램 재단을 통하여 배정받아 내가 간 곳은 '후라이드 치킨'이 떠오르는 미국  Kentucky 주의 Campbellsville 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나는 그렇게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오롯이 호기심만으로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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