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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Jan 14. 2023

#2.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첫 발걸음

호스트 가족과의 만남


2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처음 애틀란타 공항에 경유하며 우왕좌왕했던 그때 그 공항의 공기와 분주함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자, 익숙한 모든 것을 떠 낯선 이방인으로서 첫 발걸음이었다.




“OOO 비행 편에 탑승하시는 승객 여러분들께 안내드립니다. 탑승 게이트가 변경되어 비행기는 00번 게이트에서 출발 예정입니다.”


애틀란타 공항에 내린 나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켄터키 주 루이빌(Louisville)로 바로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 조지아 주 애틀란타 공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는데, 탑승 게이트가 반복해서 변경되고 있었고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그 안내 멘트를 다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비행기를 놓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Excuse me... Can you help me?”


미국 땅에서 내가 처음으로 내뱉은 영어였다. 용기를 내어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파란 눈의 백인을 아무나 붙잡고 도움을 청했다.


주섬주섬 티켓을 보여주며 어디로 가야 하냐고 하자, 자신이 게이트로 데려다주겠으니 따라오라고 했다. 내 비행 편에 관한 안내인지 다른 비행 편에 관한 안내인지조차 알아듣지 못할 여러 안내 방송들은 계속해서 들렸고, 나는 그 직원만 졸졸 따라다녔다.


미국에 오기 전 1년여의 고등학교 생활 동안 나는 모의고사 만점을 거의 놓치지 않을 정도로 영어에 자신이 있었다. 입학 후 첫 모의고사 영어 과목에서 98점을 받은 내 소식은 학교 전체에 퍼져나갔다 (만점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당시 우리 학교에는 SKY 대학 진학을 위한 '특별반'이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특반에서도 나오지 않은 영어 고득점자가 '평반'에 있다는 이야기가 돌자, 선생님들은 교실에 들어오실 때마다 나를 한 번씩 일으켜 보셨었다. ("OOO이 누구지? 한 번 일어나 봐.")


영어라면 자신 있었던 내가 영어 듣기 평가에서나 나올 정도 수준의 안내 방송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잡음이 컨트롤되고 모든 외국인들이 아나운서같이 또박또박 발음을 하는 것이 아닌  현지의 어는 '같은 언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날것이었다.


애틀란타 공항 안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작은 시골 마을 출신으로 행기는 물론이거니와 지하철도 한 번 제대로 타본 적 없던 나로서는 애틀란타 공항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이리저리 따라다닌 끝에 탑승 시간이 당겨진 델타 항공 비행기를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켄터키 루이빌 공항에 내린 나는 눈으로 공항을 재빨리 스캔하며 내 이름을 들고 서 있을 거라는 호스트 패밀리를 찾기 시작했다.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내 이름이 적힌 커다란 플래카드 같은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A4용지에 조촐하게 적어놓은 내 이름을 수줍게 들고 서 있는 호스트 아빠로 추정되는 푸근한 인상을 한 백발의 남성이 보였다.

 

“Are you Jiwon?”

“Yes..! Nice to meet you!


서로를 확인한 우리는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고 짐을 찾아 나머지 호스트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차로 향했다. 호스트 아빠의 이름은 ‘빌’이었는데, ‘포드’라는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 지금은 정년퇴직을 했다고 했다. 빌은 고작 작은 캐리어 하나인 내 짐을 보고는 “Is that it?” 그게 다냐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돌이켜보면, 아무리 프로그램을 통하여 유선 연락 몇 번 주고받았다고는 한들 이 흉흉한 세상에 난생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갔던 나도, 딸내미가 가고 싶다 한다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나를 믿고 홀로 해외로 보낸 우리 부모님도 참으로 대단했다 싶다. 먼 타지에 나를 보내고 전화기를 곁에 두고 안절부절못하며 도착했다는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리셨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는 몸이 불편해 공항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호스트 엄마 날 맞이할 설렘에 따라나선 호스트 이모 조카들이 있었다. 호스트 엄마의 이름은 팻, 이모는 재키, 조카는 둘이었는데 각각 알렉산드라와 가브리엘라였다.


만나서 반갑다며 진하게 포옹을 한 뒤 차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지나쳐가는 미국이란 땅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곳이 미국이구나. 이제부터 시작이야.’


포항에서 서울, 서울에서 애틀란타, 애틀란타에서 루이빌까지 20시간 이상의 대장정을 마치고 긴장이 풀린 나는 창 밖의 풍경을 설명해 주는 호스트 조카들의 재잘거림에도 잠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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