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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Feb 09. 2023

#6. 유럽 교환학생들과의 대립 (3)

화해


"올리비아랑 무슨 일 있었어?"


다음 수업에 가기 위해 락커에서 교과서를 꺼내는 나를 스티븐이 가로막았다. 스티븐은 나와 올리비아와 함께 밴드 수업을 듣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친구였다. 그는 올리비아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올리비아는 엄청난 미인이었고, 다른 친구들을 대할 때는 잘 웃기도 하고 나와 시호에게 하는 것처럼 말을 가로채지도 않았다.


"나 수업 가야 돼."


다음 교실까지 따라올 기세인 그에게 짧은 한숨을 내쉬며 비키라는 손짓을 했다. 나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는 혹시 내가 오해했을까 자리를 뜨는 내 뒤로 내가 걱정되어서 물어본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날 카페테리아에서의 작은 다툼이 있은 후, 올리비아는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좋게 이야기하진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보는 친구들마다 그녀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물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는 것도 입 아프고, 굳이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이 일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수군거림은 점차 사라졌다.


올리비아는 더 이상 우리와 점심을 함께하지 않았다. 존과 베네수엘라 교환학생이던 마리아와만 붙어다녔다. 이후  몇몇의 합창 친구들도 점심시간 우리 테이블에 조인했다. 연락이 끊기고 SNS도 하지 않는 시호를 제외하고는 현재까지 이 아이들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올리비아의 단짝이던 존과 마리아가 갑작스럽게 고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자기 왜 떠나게 되었는지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리비아에게는 점심을 함께하고 무엇이든 같이하는 두 친구가 동시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존과 마리아가 떠난 후 점심시간, 그녀가 우리 테이블에 쭈뼛거리며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아직 화났어?"


나를 포함한 시호, 데니스, 그리고 합창반 친구들은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었다. 내 욕을 하고 다니던, 본인이 피해자인 척 전교생에게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니던 그녀가 함께할 점심 친구가 없어지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나에게 아직 자기에게 화났냐고 묻고 있는 이 상황이.

그러나 편을 들어주던 두 친구들이 없어진 그녀는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측은했고, 나름 화해의 제스처라고 생각하고 나는 이를 받아주기로 했다.


"화날 게 뭐가 있어? 서로 오해였다고 생각하자."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 또한 의외의 반응이라는 듯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처음 듣는 사과의 말이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녀가 진심으로 미안해서 그런 말을 했던 건지, 단지 친구들이 없어져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아 그런 말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을 텐데 용기 내어 말해주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존에게는 끝내 사과를 듣지 못했다. 발표 사건 이후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밴드 수업 시간에도 그녀는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였다. 더 이상 중간에 내 이야기를 자르지 않았고, 내가 영어를 버벅거려도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가끔 차가운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녀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나도 더 이상 기분 나빠하지 않으려 했다.






올리비아와 존 덕분에 나는 유럽인들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생겼다.

지금도 회사에서 회의 참석 등을 위해 유럽으로 출장을 간다던가, 유럽 지역 담당자들과 화상회의를 한다던가 하면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 더 긴장한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한국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게 하려 더 노력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들도 정말 철없고 어렸던 그때,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가끔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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