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질병보다 나를 더 많이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아프면 약도 없이 그 고통을 온전히 느껴야 하죠. 이 고통을 줄여주는 백신을 미리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래전부터 인류는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그 말은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만 년 전 인류가 집단생활을 할 당시에는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틀어졌을 경우 추방당하기 쉬웠습니다. 하나의 개체로는 매우 약한 존재였던 인간에게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지금은 혼자 있다고 해서 맹수들의 밥이 되지는 않지만, 큰 스트레스를 받고 인생이 힘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이러한 행동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것일까요?
아마도 진화적 압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지금은 매일 사람들에게 악행을 저질러도 추방되어 죽지도 않고 운 좋으면 자손도 남길 수 있죠. 현대 사회에서 사회성이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필수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누군가에게 모욕과 속임과 배신을 당합니다. 가까운 사람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당하면 삶이 한순간에 지옥으로 바뀌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불행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자주 잊고 지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백신과 같은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겠네요. 바로 인간의 사회성은 학습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친절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이기적이고 거짓말하고 괴롭히고 빼앗고 통제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역사에서도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죠. 어쩌면 이러한 모습들이 인간의 본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반사회적으로 여겨지는 모습들을 숨기고 사회에 섞여야만 한다는 것을 학습해 왔습니다. 선과 악을 떠나 효과적인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존중하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본모습을 드러내면, 우리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죠.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아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잠에서 깨어나 나에게 생각 백신을 맞혀주면 좋습니다. 오늘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 몇몇은 상상할 수 없는 이유로 나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는 사실을 되뇌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본디 사람은 이기적이고 거짓말하고 괴롭히고 빼앗고 통제하려는 면이 있다는 생각은 인간을 신성하고 선한 존재로 보는 것보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더 기분이 좋고 상처 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평온한 날로 기억되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