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강력한 포식자들과 자주 대면했습니다.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 신체는 흥분상태가 됩니다.
대면 즉시 곧바로 아드레날린 분비가 증가하고 심박수와 호흡이 빨라집니다. 이는 산소와 영양분을 빠르게 근육으로 공급시켜 급격한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시각과 청각의 민감성이 증가하고 소화 기능이 억제되기 시작합니다. 즉각적인 에너지원으로 쓰기 위해 간에 저장된 당도 방출됩니다.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결정권자인 뇌의 명령을 기다립니다. 뇌는 싸울 것인지 아니면 도망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기서 적절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바로후세에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었던 우리의 조상들입니다.
그렇다면 맹수의 입장은 어땠을까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그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긴장된 상태로 노려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야생에서의 싸움은 이기더라도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면 말이죠. 그래서 상대가 등을 보이는 순간처럼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쉽게 싸움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학계는 인류의 역사가 3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명사회의 시작은 1만 년 전부터로 추정되죠.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인간이 문명사회를 살아온 시간은 48분 정도로 매우 짧습니다.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는 이제 다른 종류의 포식자들을 만납니다.그들은 직장 상사, 시험, 발표, 인간관계, 돈 등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그들을 대면했을 때 우리 몸은 여전히 조상들의 몸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많으면 수십 번씩 내 앞에 있는 맹수들과 싸울지 아니면 도망갈지를 선택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그만두어야 하는지, 투자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갈지 포기할지 등 크고 작은 스트레스 상태로 몸은 지치게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싸움을 선택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왜냐하면 지는 순간 생존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맹수에게 죽임을 당하지는 않지만 느끼는 불안감의 크기는 조상들의 그것과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떤 경우에 싸움을 선택해야 할까요? 저는 ‘위플래쉬‘라는 영화가 한 가지 좋은 예시를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재즈 드러머 앤드류는 학교에서 전설적인 지휘자 플레처의 눈에 띄게 되어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됩니다. 플레처는 매우 엄격하고 가혹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앤드류는 견디지 못하고 플레처를 학교에 고발한 뒤 다른 일을 하며 살게 됩니다.
어느 날 플레처를 우현히 만나게 된 앤드류는 다시 그에게 밴드 입단 권유를 받게 됩니다. 곧 공연이 있는데 드럼을 쳐줄 수 있냐는 부탁과 함께 말이죠. 곡은 예전에 함께 연습하던 것과 같으니 걱정 말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공연 당일, 플레처는 앤드류가 전혀 모르는 곡을 지휘하기 시작했고 앤드류는 무대 바깥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도망가 안기게 됩니다. 모든 게 플레처의 지독한 복수였습니다.
그런데 앤드류의 눈빛이 갑자기 변했습니다. 그는 다시 드럼 앞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드럼을 치기 시작하면서 연주자들의 합주를 이끌어 내죠. 그는 도망가려다가 돌아서서 싸움을 선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