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창경궁

혼자 고궁 산책을 하며 듣고 맡고 보고 느낀 것

by seri


감성빵빵 주의!



밤의 고궁은

흙 밟는 소리가 잘 들린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잘 들린다.

대화 소리가 잘 들린다.

깜깜하다.

낮보다 더 과거가 잘 느껴진다.




괜히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옛날에 내가 이 궁에 살았다면,

그러다가 갑자기 가드가 위아래로 흔들며 다니는 야광봉이 보인다.

현실을 자각했다가, 야광봉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다시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에 귀기울인다.

뒷짐을 지고 어둠 속에서 흙을 밟으면 다시 상상 여행에 빠진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람들 말소리가 들린다.

현실을 다시 자각하고, 그 소리에서 멀어지려 애쓴다. 조용히 깊숙이 잠기고 싶은데.

조용한 곳을 찾아 엉덩이를 아슬하게 걸쳐 앉는다.

유려한 지붕과 그 위로 펼쳐진 하늘, 그리고 그 하늘의 별을 본다.

별이 크네, 인공위성이겠지?

감성이 깨지면 다시 주위의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스마트폰 셔터 소리다. 차칵 차칵.




광화문 광장에서 여기 창경궁까지 오는 길은 수많은 현대식 건물과 자동차와 사람들로 가득했다.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얼마나 네모반듯하고 팍팍한지 몰랐다. 건조하고 퍽퍽해서 마치 흙 안에서 수영하는 기분이다. 근데 그걸 몰랐다.


현대식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크기도 모양도 제멋대로인 돌담길의 돌과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낙엽을 봤다. 낙엽이 사람들 발에 밟혀, 자전거 바퀴에 밟혀 뿜어내는 향기는 기관지 깊이 얹혀 있는 흙을 중화시켜줬다. 그 촉촉함에 이끌려, 현대식 전광판이 발광해 나타내는 글자에 용기를 내 들어온 도심 속 궁은 내게 작은 만족감과 작은 예민함을 주고 있다.



흙과 낙엽의 냄새는 금세 내가 뿌린 헤어스프레이 냄새로 뒤덮였고, 흙과 낙엽의 소리는 금세 관광객들의 말과 셔터 소리로 뒤엉켰다.


혼자 밤의 고궁 산책은 외롭고 차분하다.





나만 몰랐나 싶지만, 모르고 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길 바라며 !


창경궁 야간 상시관람 2020

서울 종로구 창경궁

20.01.01(수) ~ 20.12.31(목)


- 매표 마감 20:00, 야간 상시관람 21:00 까지

- 사전예매 없이 관람 가능, 입장 인원 제한 없음

- 관람요금 1,000원 (만24세까지 무료입장)

http://cgg.cha.go.kr/agapp/main/index.do?siteCd=C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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