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의 이야기
경리(經理) — 일을 경영하고 관리함
누군가의 질문을 받고 나는 이 시간까지... 그 억만 겁의 '경리'라는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름 공부를 잘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어렵게 입학한 대학을 중퇴할 수밖에 없던 나에게 '경리'라는 직책은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안동시내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우리은행에 입사한 중학교 동창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느꼈던 초라함. 으스대기 싫어하고 지는 걸 더 싫어했던 자존심 강한 나의 19살 청춘은, 그해 한국을 할퀴고 지나간 IMF와 함께 응답하라 1988 같은 추억이 될 수 없었다.
회계일을 시작한 동기는 단 하나.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다방에 취업해 "레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흑백 필름 같은 시절이 오버랩되는 건 왜일까.
조선 시대 사농공상 아래 백정이라는 이름이 주던 응어리처럼, 내게 '경리'라는 말은 내 삶의 실패를 보여주는 주홍글씨 같았다.
누군가의 질문이, 소파에 앉아 바라보는 TV 화면이 아닌 내 마음 깊은 곳과 대화하게 만들고, 사무실의 모니터가 아닌 내면의 소리가 너무 커져버려 결국 그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스크린 세이버가 화면을 검게 바꿀 때까지 멍하니 있던 이유는, 그 억겁의 '한'을 담고 있는 이름, '경리',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경리'라는 이름에 대해 자격지심을 극복했다는 듯 허영을 부렸을까? '경리'라는 지칭은 아주머니가 아닌 '아줌마'라는 말처럼, 정육점 사장이 아닌 '백정'이라는 말처럼,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어다. 그 단어가 내 마음에 상처를 남겼지만, 나는 그것을 정면 돌파하지 못한 채 속으로만 곱씹고 있었던 것이다.
내 이력서에는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는 일과 같은'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은행, 세금계산서, 카드 등의 자료를 자동 업로드할 수 없던 시절, 마치 조선 시대 여인네가 수를 놓으며 자기를 표현하던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내 존재를 기록하고 있었기에 그런 문장을 적었던 것이다.
'경리'라는 한자를 다시 들여다보니, 날실과 노끈, 볏짚의 새끼라는 뜻이 있었다. 그리고 다스리다, 다스려지다. 그 단어를 만든 사람도 아마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회계직은 점차 전문성이 있는 분야로 인정받게 되었고, 이제는 '경리'라는 단어를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 단어는 당신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드러내는 감정의 거울이라고.
적산 프로그램으로 만든 산출서를 엑셀로 다시 입력하던 그 노예 같던 시간들. 어렸던 나에게 “미스 박”이라고 부르며 팔뚝을 주무르던 과장, 이메일로 거래명세서를 출력 못 해 대신 출력해드려야 했던 노인네, 그리고 내 컴퓨터 뒤편 빈 공간에 담뱃재를 털던 그 사람까지.
“그냥 일찍 시집이나 가지 그러냐”며 조롱하던 사람도 있었다. '경리는 따먹는 거'라는 끔찍한 말을 쉽게 하던 이들도 있었다.
스커트만 입어야 했고, 커피 타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겨졌으며, 그 모든 걸 ‘당당함’이라고 배워야 했던 시절. 그 시절의 선배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선임이 말하던 당당함이 무엇이었을까.
회계 업무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고자 발버둥 쳤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쿨한 척했지만, 그 시간을 떠올리면 결국 눈물이 흐른다.
드라마 ‘아저씨’에서 이지은이 무표정으로 영수증에 물풀을 칠하고 붙이던 장면을 처음 봤을 때,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왜 나는 그냥 참았을까. 왜 말하지 못했을까. 아니, 그땐 여자는 이유 없이 낮은 임금에 돕는 역할을 하는 하등 한 존재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세대는 이 고백이 낯설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가, 스마트폰이 새로운 시절을 열었던 것처럼, 1990년대와 2020년의 공기는 전혀 다르다.
앞으로는 쿨한 척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경리’라고 부르며 깔보려 든다면, 그 단어는 당신이 나를 경멸하는 감정을 담고 있음을 정확히 알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