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니지만 날 행복하게 하는 것들
1. 초
초를 좋아해서 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냥 단순한 물건일 뿐인데 나름 여러가지를 사용해 보았다.
뚜껑이 있는 병에 들어있는 것, 티라이트 홀더, 굵은 양초 등등
지저분하게 장식 소품을 늘어놓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집을 꾸미고 아늑하게 만드는데에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촛불이다.
처음에는 향이 좋은 것을 사거나 아니면 그럭저럭 예뻐보이는 것을 샀는데 아무래도 성에 차지 않아서 오래 고민을 했었다.
그러다가 레스토랑에 가면 촛대를 정중앙에 두는 것이 생각나서 촛대를 사서 식탁에 두었고 그제서야 부족했던 것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향이 없는 것으로 해야 식사에 방해되지 않고 긴 촛대가 주는 매력은 초가 녹으면서 길이가 줄어드는게 보여서 얼마나 즐겁게 오랫동안 식사를 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침실에도 초를 두는데 이 때에는 티라이트가 좋다. 몇시간 정도 지나면 꺼진다는 점도 좋고 초가 넘어질 위험이 적어 안심이 된다. 어느 빈티지 상점에서 본 유리로 된 티라이트 홀더가 인상적이었다. 유리 무늬가 올록볼록하고 복잡해서 촛불이 일렁일 때마다 보석처럼 빛나서 자기 전에 보면 기분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실에는 역시 병으로 된 초가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이 때에는 향이 있는 초를 산다. 목욕할 때 촛불만 켜놓고 스파 음악을 켜놓고 목욕하면 기분이 좋다. 굳이 목욕이 아니고 가볍게 샤워만 하는 것이라도 촛불만 켜고 하니까 기분이 좋았다. 이 때 하나로는 부족하고 두세개를 켜두면 적당하다.
2. 접시
엄마는 예쁜 그릇은 특별한 날에만 사용하고 평소에는 코렐의 접시와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편할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매일의 식사를 특별하게 하고 싶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예쁜 그릇에 담아 먹고 싶고 멋을 내고 싶다. 아직 신혼이라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그릇과 접시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데 아직 그 정도까지 관심 있는것은 아닌것 같다. 사용하기 무서울 정도로 아까운 식기는 부담스럽다. 흠집이 나더라도 마음이 아프지 않고 어떤 음식이든 잘 어울리는 식기가 좋고 모양이 현대적인 것을 좋아한다. 너무 클래식하면 지나치게 격식을 차려야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은 젊은가 보다.)
엄마에게 선물 받은 접시는 빌레로이 앤 보흐의 접시와 이도의 접시와 그릇들이다. 손님이 올 때 쓰거나 평소보다 더 특별한 요리를 만든 것 같을 때 꺼내 쓴다. 그리고 의외로 빌레로이 앤 보흐와 이도의 접시들이 함께 뒀을 때 은근히 잘 어울린다.
일상 생활에서 편하게 부담없이 사용하는 접시는 림시리즈이다. 모양새가 단순하고 무광이라 평소에 예쁘게 멋내기에 좋다. 그리고 림은 Less is more의 준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깔끔하다.
코렐은 안쓴다!
3. 음악
집에서 틀어 놓으면 기분 좋은 음악이 있다. TV소리가 들리는 집이 아닌 음악이 들리는 집이었음 좋겠다.
다음은 나의 재생 목록이다.
1. Beegie Adair
음악 감상용이 아닌 배경 음악으로 틀어 놓을 때 피아노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편안하다. 재즈곡으로 굉장히 잔잔하고 차분한데다가 분위기도 있어서 좋다. 저녁 식사할 때 틀어두면 좋다.
2. Lisa Ono
장르는 보사노바. 익숙한 재즈나 팝송들을 보사노바 풍으로 편곡해서 부르기도 한다. 리사 오노의 음색은 날씨 좋은 어느 오후 창가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선잠에 드는 것과 같이 나른하고 평안하다. 낮에 틀어두고 차를 마신다.
3. Edith Piaf
너무나 유명한 프랑스 가수. 장르는 카바레, 샹송. 조금 쑥스럽지만 나는 집에서 혼자 춤을 추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데 (몸치라 밖에서 춤을 출 수는 없다. 집구석 춤꾼) 그럴 때 틀어두고 열심히 춤을 춘다. 춤 추기 가장 좋은 곡은 La Foule. 누군가가 집에서 혼자 이 곡에 맞춰 춤을 춘다고 상상하면 좀 웃길것 같긴 하다.
4. Glenn Miller
트롬본 연주자. 장르는 빅밴드, 스윙재즈. 클래식도 오케스트라가 좋고 재즈도 빅밴드가 조금 더 좋다. 조금 활기찬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틀어둔다.
5. Kings of Convenience
장르는 인디포크. 귓가에 대고 위로의 말을 속삭여주는 것과 같은 음악이다. 주로 지치고 힘든 날이나 마음이 복잡한 날에 듣는다.
6. Feist
바로크 팝의 싱어송 라이터. 비오는 날 듣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듣거나 Feist의 음악을 듣는다. 건조하기도 하고 어느 가을 날 숲을 걸을 때 발밑에서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와 마른 나뭇가지들이 타닥거리며 부러지는 느낌의 음악이다. 듣다보면 기분이 조금 가라앉을 수도 있는데 동시에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간지럽다. Let it die 라는 앨범이 가장 좋다. 특히 Gatekeeper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적으로 좋았다.
7. 그 밖의 1900년대 중반의 흑백영화에 나올법한 노래들
그 때의 빈티지한 감성이 좋다. 언제 들어도 좋다.
Nick Lucas, Ilene Woods, Bing Crosby...
8. 클래식 음악
언제나 옳다!
4. 차
TWG의 차인데 녹차를 베이스로 카라멜 향이 나는 차이다. 처음 마셨을 때 달콤하고 포근한 향이 나는데 마실 때는 입안이 개운한 녹차라서 엄청 놀랬다. 무엇보다 차를 우리면 방 안 가득 포근한 카라멜 향이 채워져서 좋다. 달콤한 향이 나는 녹차라니 정말 최고다.
로네펠트의 윈터드림. 이 차도 우리면 방안 가득 너무 좋은 향으로 채워진다. 처음 마셨을 때 느낌을 잊지 못한다. 눈을 감았을 때 하얀 눈이 잔뜩 쌓인 숲에서 앙상한 나무들 사이를 걷는 기분이었다.
5. 침구
이불은 푹신한 솜을 넣는 방식의 듀베 이불
베개는 적어도 50x70의 거위깃털을 넣은 솜으로
색은 베이지색이나 따뜻한 색감
베개와 쿠션을 넉넉하게 배치하면 아늑하다
집은 나에게 휴식공간을 넘어서 정신적 안식처이기 때문에 좀 더 다정한 집을 만들어가기 위해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보다는 휘게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다. 낡고 헤지더라도 더 애착이 가고 내 몸에 맞는 그런 집. 그리고 최대한 유행을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유행하는 카페 인테리어를 흉내내서 집을 꾸미게 되면 조금만 지나면 또 시들해질테니까. 카페같은 집도 병원같은 집도 호텔같은 집도 아닌 아늑하고 포근하면서도 집에 들어섰을 때 아! 깔끔하다 라는 생각이 드는 집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인테리어 소품이나 장식품으로 집을 멋지게 꾸미는 것도 좋지만 물건 이외에도 집을 멋지게 채우는 방법은 많다. 장식품보다는 촛불, 좋은 음악, 차의 향기 그리고 웃음소리로 가득 채운 집에서 살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충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