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때 또 뜰 때 세상은 빛과 어둠의 중간 지대에 들어간다. 단순히 밝기가 중간이라는 것만이 아니다. 어스름이라고 불리우는 이 시간은 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마법에 빠진 듯한 몽롱하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길까? 빛과 어둠의 경계가 항상 흐릿한 것은 아니다. 칼로 베는 듯한 매끈한 그림자 선을 본 기억이 있지 않은가? 다음 사진을 보라.
여자의 머리카락, 샌달의 끈까지 보인다. 빛과 그림자의 경계는 이처럼 날카로울 수 있다. 낮이란 지구가 태양의 빛을 받는 면이고 밤은 빛을 받지 못하는 면이다. 두 면 사이의 경계가 위의 사진처럼 날카롭다면 어스름이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이 떠오른다.
건물에는 밤이 드리웠는데 등 뒤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대낮이다. 이것은 초현실주의 화가의 현실을 뛰어넘는 대담한 상상이다. 하지만 만약 태양빛이 갈라놓는 빛과 어둠의 영역이 예리했다면 우리는 이런 장면을 현실 속에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지구상에 드리운 낮과 밤의 경계는 이와는 다르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며 낮과 밤의 경계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그 경계선은 흐릿하다. 그림자의 가장자리가 번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주에서 바라본 어스름, 황혼,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이론적으로 태양빛이 충분히 강하게 지구에 부딪힌다면, 빛줄기가 지구와 접하는 점을 경계로 한쪽은 밝고 다른 한쪽은 어두워야 한다. 즉 칼로 베인 듯한 그림자의 경계선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지구에는 두터운 대기가 있으며, 대기는 햇빛을 붙잡고 있다. 그 결과 햇빛이 더 이상 비치지 않는 영역에서도 여전히 잔광이 반짝 거린다.
그렇다면 대기가 없는 달에서는 어스름, 황혼, 땅거미가 없는가? 없다. 있더라도 아주 짧다. 낮에서 밤으로의 이동이 달에서는 몇 분 안에 끝나버린다.
사진에서 보듯 달 표면에서 낮과 밤의 경계는 상당히 또렷하게 보인다.
대기가 없는 달의 풍경은 마그리트의 그림과 정확히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지는 햇빛으로 반짝이지만 하늘은 새까만 밤하늘이다.
어린 왕자는 장미 한 송이 밖에 없는 외로운 소행성에서 일몰을 보는 낙으로 살았다고 한다. 즉 의자를 들고 조금만 옮겨 가면 바로 일몰을 또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별이라면 중력이 약해서 사람이 서 있을 수도 없지만, 중력이 없으면 대기도 없으니 햇빛의 잔광이 만들어내는 황혼도 있었을 리 없다. 아련하고 몽롱한 어스름 황혼의 분위기는 지구의 수많은 축복 중 가장 은은하고 감미로운 것 중의 하나이다.
과학적 사고가 꿈과 환상을 깨뜨린다고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환상 자체가 과학적 원리에 의해서 생긴다. 또한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초현실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도 과학이다. 대기가 없고 항성의 빛이 충분히 밝은 어떤 행성에서는 정말로 한 쪽 발은 낮에 그리고 다른 쪽 발은 밤에 디디고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에콰도르에서 한 발을 북반구에 다른 발을 남반구에 디디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일광욕을 즐기는 풀 사이드 위로 별자리가 빛나는 밤 하늘이 펼쳐져 있는 풍경도 가능하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이 아니라 “암흑의 제국"이 현실 속에서 구현될 것이다.
하나의 공상이, 과학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증명되는 순간, 과학은 다른 우회로를 내어준다. 손바닥만한 소행성에 중력과 대기를 부여할 방법을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결과 또 어떤 부작용이, 어떤 문제점이, 그리고 또 어떤 놀라운 가능성이 있는지를 열어준다. 과학과는 동떨어진 공상은 최초의 발상은 참신할 수 있으나 밀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 힘껏 던진 상상의 나래는 중력을 못이기고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과학은 엉뚱한 생각을 더 멀리 밀어보내는 추진력과 같다. 과학은 동심 파괴자가 아니다. 쳇바퀴 도는 우리의 상상력을 한 단계 더 밀어올려 진짜 멋진 세계를 그려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