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이 연기한 여주인공 문숙은 이런 얘기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우주 전체에서 유일하게 의식할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그러면 지금 이렇게 우주를 쳐다보고 생각해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요, 그죠.”
인간은 크기로는 우주에 비해 무의미한 "겨우 존재하는 것"이다. 먼지라고 하기에도 과분하다. 그러나 문숙은 생각한다. 그래도 인간은 우주를 의식하지 않는가? 우주가 인간보다 아무리 더 크고 아무리 위대해도 인간 말고 우주를 의식해 주는 존재가 없다면 우주의 위대함이 얼마나 허무할까?
천진스런 문숙의 생각은 그렇게 가벼이 여길 개똥철학이 아니다. 의식에 대한 최근 뇌과학의 연구는 두뇌에 대한 놀라운 발견을 거듭하고 있다.
은하계 하나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천억개쯤 있다고 한다. 그런데 두뇌에도 신경세포, 즉 뉴런이 천액개쯤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대략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태양과 뉴런은 크기 면에서 비교할 바가 못된다. 하지만 뉴런은 태양이 갖지 못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뉴런은 연결된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면서 생기는 신경회로는 바로 인간의 생각, 상념, 아이디어, 지식이 된다. 은하계의 천억개 별은 이러한 상호 작용을 하지 못한다. 그들은 서로 고립된 채 빛난다. 베텔기우스, 리겔, 벨라트릭스, 사이프는 별자리 오리온을 이루지만, 이것은 오직 인간의 의식 속에서만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오리온의 겨드랑이, 다리, 무릎인 줄을 전혀 모른다.
우리는 상상을 하고 암기를 하고 문제를 풀면서 머리 속에서 수없이 다양한 신경회로들을 평생 만들어간다. 천억개의 뉴런들이 다양하게 모여서 형성되는 회로의 수효는 평균적으로 100조개에 달한다고 한다. 재미있는 농담, 아름다운 시, 감미로운 멜로디, 물리학의 법칙들은 모두 그러한 회로의 결과물이다. 구조물로서 은하는 크기만 엄청나게 클 뿐, 황폐한 곳이다. 먼지보다 작은 인간의 두뇌는 띄엄띄엄 고립된 별들의 세계보다는 훨씬 더 흥미진진하고 풍요로운 곳이다. 바로 그 때문에 두뇌는 은하를 반영하지만, 은하는 두뇌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를 생각하지만. 우주는 인간을 생각하지 못한다.
문숙의 말 대로다. 여성적 감각으로 홀연히 깨달은 그녀의 직관은 결코 순진한 유아론이 아니라 뇌과학에 의하여 뒷받침되는 명제다. 단지 한 가지 부연한다면, 그러한 의식은 인간만의 것이 아니며 모든 동물, 더 나아가 식물에까지도 미친다. 생명체는 거의 대부분 의식을 가지고 있다. 문숙의 깨달음이 인간만이 아닌 다른 생물에 대한 존중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