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5월 02일 작성
1편에서는 동자동 쪽방촌에 대해 다뤘다면, 이제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에 대해 알아보자.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모여 시작했다. 대다수가 신용불량자인 주민들은 몇 십만 원 수준의 적은 빚에도 당장 방을 빼야 했고, 방을 빼면 즉시 노숙자로 전락하기에 금융문제가 심각했는데, 이를 막기 위한 '우리 스스로의 생활안전망'이 되어줄 무담보 소액대출의 '문턱 없는 은행'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공제협동조합*을 생각했다고 한다.
*공제협동조합 : 구글링을 해도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있지는 않아서 주관적으로 정리해본다. 공제협동조합의 사업내용은 Micro credit(무담보 소액대출)와 비슷하다. 하지만 대출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출자금을 지불하고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점, 연대보증을 세워 높은 상환율을 유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협동조합의 특징을 가진다.
공제은행의 대표 격인 그라민은행이 멋지고 좋아 보이지만, 좋은 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라민은행의 자랑인 98%의 상환율은 소액대출을 받은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상환해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대출을 받을 때 무조건적으로 연대보증을 세움으로써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원금을 상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마을기반 협동조합이 되었지만, 2010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받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기에 의사소통과 신뢰를 쌓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몇 년 동안 시간을 들여 결국 조합을 발족시키고 300명이 넘는 조합원을 모집할 수 있었다.
현재 협동조합의 현황은 아래와 같다(2016년 기준)
설립목적
1. 저축성 함양 : 저축을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운다
2. 삶의 질 향상 : 대출을 통해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한다.
3. 협동 공동체 : 출자 및 소액대출, 교육 및 복지, 공동경제, 연대 및 지역사회기여, 지역문제조직 등
조합원 총회 연 1회, 이사회 월 1회, 임/위원 월례회 1회
조합원 수 : 367명(중간 중간 많은 사람들이 탈퇴, 자격정리되거나 사망)
출자금 : 156,619,915원
대출 건수 : 1,200건 (since 2011).
상환율 : 83%
교육 : 매달 신규 조합원 교육, 기존 조합원들도 연 1회 교육(지루한 교육이 아니라, 퀴즈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통해 교육)
얼핏 봐도 건강한 구조를 가진 협동조합임을 알 수 있다. 비전과 사업모델이 명확하고, 조합원 간의 소통도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법 높은 상환율, 상당한 출자금이 적립되어 있는 것까지.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들이 자생하는 것을 방해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단체들과의 소통
활동을 시작할 당시 쪽방상담센터가 이미 쪽방촌 주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같은 목적이 있음에도 소통이 매우 어려워 애를 먹었다고 한다. 또 봉사단체들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 각자의 목적이 있는 봉사단체(종교단체, 학생단체, 기업 등)들이 각자 다른 목적을 내세우며 서로 반목하고 지역단체와 협력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2. 주민들을 '서비스 대상'으로 규정하고 일방적인 호혜만을 베푸는 봉사 방식
예를 들어보면, 지역 내에서 주민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도배장판 사업, 설비사업 등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타 기관이 "아 그래? 그냥 우리가 해줄게" 하며 쪽방촌 내 도배를 싹 새로 해버리거나 무료로 설비를 해주는 등의 협조가 이어진다고 한다.
"해주면 감사히 받지 무슨 말이 많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화마을 의 벽화가 지워진 사건도 이렇게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시공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볼 때, 이제는 일방적인 봉사는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봉사를 해주기 시작하면 주민들은 스스로 뭘 해결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진다. 호주와 미국 원주민들이 일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되면서 도태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다.
즉, 봉사는 먼저 주민들과 충분한 소통을 나눈 다음 '주민들이 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부분'을 봉사활동으로 채우는 방안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도시재생, 협동조합 모두 관심이 있는 내게 현실적인 통찰들을 줬던 견학이었다. 먼저 도시재생의 경우 활동가의 역량과 진정성, 관련 단체들과의 소통능력, 장기적인 안목이 없이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협동조합의 경우 '정말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 조합원들 간의 신뢰를 이룩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좋게좋게'보다는 '확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공제협동조합은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약 2%의 이자와 조합원들의 월회비만으로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협동조합의 실무자들의 인건비는 전적으로 후원금에 달려 있으며, 재투자를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아무리 좋게좋게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수고하는 실무자들에게 일한 만큼의 급여를 제공하고 새로운 사업을 통해 더욱 삶의 질을 개선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