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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sadan Parker Apr 03. 2022

도시재생을 말하다 6. 돈화문로 2편

쪽방촌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

2016.6.8 작성 



(1편에서 계속)

https://brunch.co.kr/@serikel27/6


 지난 여행기에 이어 운현궁을 구경하고 다시 운니동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번 코스는 운니동에서 피카디리를 지나 돈의동 쪽방촌까지 이어진다. 

  


 운현궁을 지나 사람이 사는 운니동에 진입. 운니동은 래미안갤러리, 운현궁, 덕성여대 종로캠퍼스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그나마 나머지 주거지역도 관광숙소 등 상가가 대다수다. 상가도 주거시설도 한결같이 낡았다는 점이 공통분모. 또한 일제 치하에서 궁궐 문화가 민간으로 흘러나오면서 운니동을 포함한 돈화문로 일대에는 예전부터 고급 요정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대부분 고급 한식점으로 변신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사진이 없어 네이버 로드뷰를 가져왔다. 그다지 생기가 넘치는 지역은 아니었다. 저녁을 먹기 전에 돈의동 쪽방촌을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피맛길을 따라 슬슬 걸었는데, 곳곳에 숨어있는 낡은 한옥들이 눈에 띄었다. 대다수는 겉모습만을 개선하여 작은 공방이나 공장, 음식점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방치되어 쓰러져가는 한옥들도 종종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로드뷰로 본 쪽방촌의 입구. 가운데 회색 길이 쪽방촌 입구다. 그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 아래 지도에 보이듯 복잡하고 좁은 쪽방촌이 나온다. 


피카디리에서 또 다른 피맛길을 지나 돈의동 쪽방촌을 찾아가는데, 동자동 쪽방촌이 그렇듯 이 쪽방촌도 "여기가 길이 맞나?"깊은 곳에 숨어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면적의 길을 따라 들어가니 금세 쪽방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쪽방촌 이미지의 몇몇은 '구본준의 거리 가구 이야기'블로그에서 퍼왔다. 어느 지역이나 쪽방촌은 열악하다. 비위생적이고, 비좁고, 낡았고, 습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이 모든 열악함보다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담이 있어야 할 건물 외벽에 자리에 낡은 미닫이 문이 있고, 그 문 사이로 한 남자가 웅크려 낮잠을 자는 모습이 보인다. 한 평 남짓이나 될까, 이 방이 그가 사는 집의 전부다.



위태위태한 건물들은 2층 건물임에도 길거리에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어 사생활 보호가 전혀 안 된다. 



세탁기와 냉장고는 방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 밖에 내어놓고 쓰는데, 그마저도 모두 자물쇠가 잠겨 있다. 남녀 구분도 안 되어 있는 작디작은 공용 화장실 입구에는 '세면, 샤워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이런 작은 쪽방이 수없이 붙어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낡아 지붕이 내려앉고 있거나 기둥이 뒤틀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쪽방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그나마 이 계단은 상태가 매우 양호한데, 다른 계단들은 경사도 높고 모양이 일정하지 않아 매우 위험하다. 



 이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어떻게 될까, 한여름이 되면 어떻게 될까, 한파가 몰아닥치면 어떻게 될까, 세를 내지 못해 여기에서마저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탑골공원과 종묘 근처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이천오백 원짜리 밥을 먹고 이천 원짜리 티셔츠를 사는 냄새나고 꾀죄죄한 사람들의 속사정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들의 방에는 쉴만한 방도, 밥을 해 먹을 주방도, 작은 가구 하나도 없으니 그저 길가로 다 나와 앉아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일을 안 하니까 가난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라.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먹은 게 없어 힘을 못 쓴다. 씻을 수가 없어 항상 질병을 달고 다닌다. 덥거나 춥거나 불안한 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세를 내지 못하면 그나마도 이 열악한 방에서 쫓겨나 밖에서 자야 하는 사람들이다. 개인의 능력으로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애초에 경쟁 자체가 안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는 경쟁에서 도태됐으니 뭐 어쩌겠냐는 멍청한 생각을 해왔다. 약육강식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와 진화론적 관점 속에서 보면 내가 했던 생각은 그다지 잘못되진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이천만 원이 넘는 학자금이 있고, 2년이 지나면 다른 집을 구해야 하는 전세임대주택에 살고 있으며, 헬조선 최전방에서 백만 원 남짓 받으며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일개미인 내가 누군가를 돕지 못하는 것도 딱히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합리화해봐도 위안이 되지 않는 것은 세상은 돈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음이다. 그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눈빛과 따뜻한 말 한마디,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다. 작은 꽃 한 송이나 조촐한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주 적은 돈으로도 할 수 있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이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실행해보는 것도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내게 없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정면, 철제 펜스를 끼고 들어가면 돈의동 쪽방촌이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서 쪽방촌을 일부러 찾아가거나 길을 잘못 들지 않는 이상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일은 없다. 


쪽방촌 마을이 끝나고 차가 다니고 분주하게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익숙한 도시의 풍경과 마주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다녀온 엘리스가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을 알아차린 순간처럼,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위화감이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들과 내가 사는 세계는 완전히 다를 것이고 당분간은 두 세계가 부딪힐 일은 없겠지만, 오늘 이 사건이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화문로 11길을 건너자 돈의동 갈매기 골목이 나온다.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이곳은 얼마 전에 방문한 기억이 있는데, 밖에서 먹는 고기 맛이 나쁘지 않아서 이번에도 여기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갈매기살 1인분 12,000원. 길가에서 낡은 불판에 먹는 것 고기 치고는 비싼 편인데, 화장실에 가다 오해가 풀렸다. 


알고 보니 가게가 큰데 반은 현대식으로, 반은 옛날식으로 꾸며놓은 것. 쾌적한 환경에서 먹을 사람은 내부에서, 굳이 밖에서 먹을 사람은 밖에서 먹으면 되는 것이다. 즉, 비용을 더 내더라도 옛날 느낌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밖에서 먹으면 되는 것. 나는 전자였는데 잘 몰라서 밖에서 먹은 거였다. 



 고기를 다 먹고 나서 익선동 한옥마을을 쓱 둘러보고 여정을 마쳤다. 이번 봄부터 종종 방문한 적이 있던 익선동은 위치도, 가격도, 분위기도 마음에 드는 곳. 얼마 전부터는 매스컴을 타며 급속도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돈 냄새를 맡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눈독을 들이진 않을까 걱정이다. 




 약간은 찜찜한 기분으로 돈화문로 여행을 마쳤다. 평소에 인사동, 북촌을 가기 위해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곳을 제대로 들여다본 소감은 다음과 같다. 


- 날 것. 이곳에는 인위적인 요소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종로가 있었다. 

- 도시재생적인 측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나는 이곳이 어떤 관광 명소가 되거나 브랜드화되어 화려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이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욱 안정되고 살기 좋은 지역이 되었으면 한다. 

- 잠재력이 많은 지역이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발굴해낸다면 분명 멋진 지역이 될 것이다. 다만 지속 가능하고 거주민 위주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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