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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m Park Mar 15. 2021

#28. Backpack Honeymoon

Los Arcos 산티아고 순례길 Day 6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되었을 때, 하고 싶다 라고 생각한 건 순전히 이것 때문이었다.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라니.. 완전 근사하잖아!! 몇 년 전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당시, 걷다 지친 수도자들이 길에서 수도꼭지를 돌려 와인을 콸콸 마시는 상상은 나를 흠뻑 빠져들게 했다. 실제로 내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오늘 아침은 다른 날보다 이른 5시에 시작됐다. 어제 빤스만 입고 다니던 스페인 할아버지는 잘 때도 불편한 존재였다. 코를 어찌나 우렁차게 골던지 내가 들은 것 중 단연 최고다. 두시쯤 이어 플러그를 뚫고 들리는 코골이에 눈을 떴다가 단이랑 눈이 마주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잠들었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이미 그 할아버지는 사라졌고 우리도 조용히 짐을 챙겨 나왔다. 내 밑 침대에서 자던 남자애는 너무 시끄러워 로비에 나와서 선잠을 잤다고 한다. 이어 플러그 만세.
사실 이라체 수도원의 와인은 8시부터 8시까지 개방이 된다고 해서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하고 길을 나섰다. 우리가 머문 에스 델라에서 그곳까지는 불과 2km. 6시 전후에 도착했는데 웬일인지 문이 열려있어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맛은... 한번 맛본 걸로 충분한 맛? 이게 와인인지 식초인지 헷갈리는 맛이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순례자의 길을 인도하는 노란색 화살표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 사람이 많은 시간에는 머리통만 보고 따라가면 됐는데, 일찍 시작하니 재미라고 해야 할지 어려움이라고 해야 할지 유심히 길을 살펴야 한다.
해가 떠오르는 풍경이 아름답다. 우리나라 산이 다이내믹하고 하늘이 높은 반면 스페인은 광활하다. 구름이 만져질 듯 낮다. 평평한 산과 절벽이 하늘을 받치고 있다.
걷는 도중 만난 한국사람과 잠시 동행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네? 보통 같이 시작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데.. 들어보니 우리가 시작한 다음날 시작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빨리 걷고 있다고 한다. 젊은 게 좋구먼. 우리는 힘없어서 못 쫓아가겠다. 먼저 가라 얘야.


일찍 출발한 보람이 있다. 정오쯤 도착해서 마을을 둘러보고 역시 필그림 메뉴(11€)로 점심을 해결했다.


스페인의 교회는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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