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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Aug 03. 2020

2015년 유럽여행.

25살, 지구에 발도장 찍는중

2015년 다니던 대학교를 1년 휴학했다. 

휴학(休學)이란 단어처럼 스스로에게 쉼을 주고 싶어서 한 휴학이었다. 


남들은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을 한다던데, 

스펙을 쌓고 더 많은 공부를 해도 모자랄 시간에 쉬고 싶어서 하는 휴학이라니...

솔직히 스스로도 걱정이 됐다.


휴학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받아야 할 장학금을 못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마쳐 갈 때쯤, 학교에서 기업과 연계하여 인터쉽을 하게 되었다.

무려 서울로.






지방 사람이 서울로 간다는 것은 그리 쉬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말고사 기간, 시간을 쪼개가며 서울로 방을 구하러 다녔고

적당한 고시원 방하나를 구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학교 측에서 장학금을 지원한다는 약속받고 시작한 인턴쉽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서울살이였기에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서울에서 인턴쉽을 시작했다.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식대가 따로 나오지 않아 내가 모아놓은 돈을 써야 했고,

서울에서의 모든 비용을 내가 감당해야 했다.

종종 팀장님은 담배를 태우러 가시는 길에 나를 불러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면서 

이런 말을 건네곤 했다.


"세린 씨 일한 거는 학교에서 주는 거 알고 있지?

요새 열정 페이 난리라던데 우리는 그런 거 아냐.

학교에서 준다며, 그럼 열정 페이가 아닌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니 할 말은 없었지만, 너무도 당당히 하는 말에 어이가 없긴 했다.


당시 열정 페이라는 이슈가 핫했기 때문이었을까 

제 발 저린 팀장은 종종 열정 페이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공감이 되는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한 달이 흐르고 두 달이 지나 다시 학교로 갈 준비를 하게 되었고

장학금 지급 여부가 궁금해서 교수님께 전화를 드렸다.


장학금 지급일이 언제인지, 얼마나 나오는지 확인을 받고 싶어 드린 전화였고

확인 후 연락을 주신다는 교수님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교수님께 전화가 왔다.


"세린이 너 전액 장학생이라 추가 장학금 지원이 어렵다는데?"


분명 인턴쉽에 나가기 전에는 장학금을 받고 있어도 추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지원을 했는데

갑작스레 바뀐 내용에 당황해서 재차 말씀을 드렸다.

나와 상담을 했던 교수님과도 전화를 드렸고, 장학계 담당자 분과도 전화를 드렸다.


결과는 "추가 장학금은 받으실 수 없습니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울살이를 하며 쓴 돈을 분명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 장학금을 들먹이며 열정 페이는 아니다고 말하는 팀장에게서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물론 돈이 모든 걸 대변할 수는 없다.

거기서 얻은 경험이라던가, 짧은 기간이지만 서울에서 살며 보고 배운 것들도 중요했지만

그 당시는 갑작스레 달라졌던 말과 상황들 때문에 힘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일해야 하는 이유가 없어진 인턴쉽을 

팀과 상의하여 일주일 먼저 앞당겨 그만두고 다시 학교를 찾아갔다.

다시 찾아간 학교에서도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고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타격은 입은 나는 결국 1년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휴학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겠다.'라는 계획을 가지고 한 휴학이 아니었다.

스스로 쉬고 싶기도 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미래를 찾아보고 싶기도 했다.

위와 같은 일 덕분에 전공에 대한 회의도 있었고, 그냥 1년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3월이 되고 다른 친구들이 학교를 가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초조했었다.


'너무 홧김에 휴학을 결정한 것은 아닌가?

정말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럼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세워보자'


휴학을 하면 뭐 할 거야?



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나온 답은 "여행"이었다. 


당시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이 유럽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와 다른 풍경들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멋있었고,

친구들의 여행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동생이 다녀온 유럽을 나 역시 가고 싶었다.


2년 전 갔던 인도 여행이 나에게 많은 좋은 기억들로 가득해, 또다시 여행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여행을 통해 내 미래의 방향성이나, 내가 하고 싶은 일 등 거창한 무엇인가의 답을 찾고, 얻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 당연스레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은 다양한, 그리고 철없는 이유를 가진 나의 유럽여행 준비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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